한바탕 불타오르고 남은
만추(晩秋)의 열기는 아직 뜨겁다.
막바지 단풍 구경을 떠나는데,
왠지 푸른 바다 경치마저 탐난다면,
양양이 정답이다.
양양 곳곳에 쏟아져 내린
만추의 낭만을 즐길 준비만 됐다면,
당신의 가을 축제는 아직 늦지 않았다. 
 

■누구나 가을 삼매경에 빠진다, 구룡령 옛길
앞으로는 ‘양양 단풍 명소 = 설악산’이라는 공식을 깨야 할 듯하다. 이는 구룡령 옛길 때문. 구룡령 옛길은 양양과 홍천을 잇는 옛길로,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4대 명승길 중 하나다.
전국 방방곡곡 고운 단풍길 없는 곳 없다지만, 구룡령의 단풍길은 좀 다르다. 훼손되지 않은 백두대간의 속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은 물론이요, 묵묵히 지나온 시간의 흔적까지 보여준다. 호젓하게 근사하게 걷기에 그만이다. 제일 인기 있는 트레킹 코스는 구룡령 정상에서부터 갈천리 갈천분교까지 약 3km의 내리막길. 드라마틱한 풍광에 눈길을 빼앗기며 걸어도 두어 시간이면 충분하다.
구룡령 정상까지는 차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산등성이 곳곳에 빨갛고 노란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 한 폭의 진경(珍景)을 바라보고 있으면 환호가,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구룡령 정상(1013m)에서 계단으로 10여분만 올라가면 바로 옛길 정상(1089m)이다. 이곳에 오르면 비로소 만추를 실감하게 된다. 휑한 나무가지 사이로 아직 가을의 한복판인 울긋불긋한 산들이 포개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쓸쓸함과 화려함이 겹쳐져 묘한 감동이 느껴진다. 쏟아져 내린 가을 낙엽을 카펫삼아 걷다보면 어느새 산허리에 이른다.
여기서부터는 회반쟁이, 솔반쟁이, 묘반쟁이 등 독특한 지명의 표지석이 길잡이 역할을 한다. 먼저 구룡령의 절반지점을 의미하는 회반쟁이를 지나자, 채도가 다른 가을 잎사귀들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 길이 이어져 눈이 즐거워진다. 발걸음에서도 율동감이 느껴진다. 다음은 솔반쟁이를 만날 차례. 아름다운 소나무가 그득한 솔반쟁이의 풍광은 구룡령 옛길의 백미다.
특히 노송을 두 팔로 감싸 안은 사랑나무와 키 25m, 둘레 2.7m인 금강송만은 놓칠 수 없다. 맨 몸으로 나무를 부둥켜 앉고 자연에 몸을 맡기면, 각지고 날선 마음은 이내 둥글어진다. 솔반쟁이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길을 나서면, 마지막으로 묘반쟁이를 마주하게 된다. 홍천과 양양의 땅 겨루기 시합에서 죽을힘을 다해 뛰었던 청년의 묘는 가던 길을 멈추게 하는 여운을 남긴다.
가을 낙엽을 온 몸으로 담고 흘러내리는 맑은 계곡에 다다르면 옛길 트레킹은 끝. 산불 기간에는 입산이 금지되니, 사전에 일정을 확인하고 가는 게 좋다.
·주   소:강원 양양군 서면 갈천리 산1-1번지
·연락처:양양군청 문화관광 033-670-2621

■퐁당, 체험의 바다 속으로!
짧은 가을날을 오래 추억하고 싶다면, 체험만한 것도 없다. 구룡령 지역 마을에서는 수륙 양용차 타기, 파대 만들기 체험 등 다채로운 체험 거리가 넘쳐난다. 어느 체험을 해도 신나지만, 그중 재미와 의미를 두루 갖춘 알짜배기 체험만은 꼭 즐겨보자.
해담 마을의 수륙양용차 타기 체험은 어른마저 이구동성 ‘악~’소리를 내지르며 탈만큼 짜릿하다. 지상과 수상을 넘나드는 즐거운 비명 소리는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어준다. 물 위에 둥둥 뜨면서, 물길을 헤쳐 나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체험의 꽃은 단연 ‘정글’체험. 늦가을에도 짙은 녹음으로 어둑한 마을 뒷숲 ‘정글’은 그야말로 피톤치드 세상이다. 숲길에 서서 깊은 숨을 들이쉬면, 엉켜버렸던 머리도 마음도 금세 맑아진다.
황룡마을의 파대 만들기 체험도 빠질 수 없다. 논밭의 새를 쫓기 위한 매끼인 파대 만들기는 전통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체험이라는 점이 반갑다. 마을 어르신의 꼼꼼한 설명을 따라 약 20여분 동안 짚으로 새끼를 꼬아 만든 파대. 이를 손에 쥐고 오른쪽 왼쪽으로 ‘휘휘~’ 휘두르면 신기하게도 ‘탕탕~’ 총소리가 난다.
황룡 마을 체험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동네 어르신들의 다듬이질 공연. 다듬이와 조롱박 등을 악기로 삼은 공연은 난타공연보다 구성지고 맛깔 난다. 여기에 공연을 보며 먹는 수제 도토리묵과 막걸리는 공연을 더욱 감칠맛 나게 만든다.
가을 산행과 여러 체험을 두루 즐기다보면 배꼽시계는 계속 울어댈 터. 이때는 마을에서 정성스레 준비한 숯불 바비큐로 허기짐을 채우면 된다. 각종 산나물, 김치 등 밑반찬까지 곁들인 푸근함이 마치 고향집에 놀러온 듯 편안하고 정겹다.
푸근한 정취에 이끌려 하룻밤 머물기로 정했다면 마을에서 운영하는 황토 펜션에서 지내보면 어떨까. 일단 안에서 뜨끈한 방바닥에 몸을 지지면 좋겠다. 그러다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 즈음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바라보자. 현기증이 날만큼 아름다운 별무리를 올려다보며, 짧지만 그래서 귀한 늦가을의 낭만에 푹 빠져보자.체험과 식사는 예약이 필수다.
·주  소:해담마을(강원도 양야군 서면 서림리 112번지)
·연락처:해담마을(033-673-2233)

■푸른 바다를 빼먹을 수는 없지, 낙산사 
양양 여행의 완성은 푸른 바다다. 구룡령에서 차로 20여분만 달리면 만날 수 있는 바다. 만약 이 바다를 빼먹고 발길을 돌린다면, 여행은 앙꼬 없는 찐빵처럼 뭔가 밋밋하고 헛헛하다.
이왕 산도 바다도 욕심낸 여행이니, 올해 아직 이루지 못한 소원까지 빌 수 있는 곳으로 향해 보면 어떨까. 우리나라 3대 기도 명소 중 하나인 낙산사는 여기에 딱 어울리는 장소다. 홍살문에서부터 시작되는 그윽한 흙길은 ‘꿈이 이루어지는 길’로 이어진다.
청초한 바다를 굽어보며 만추의 낙엽이 분분히 흩날리는 장면은 꽤 감동적이다. 길의 끝에 모셔진 16m 높이의 해수관음상은 낙산사의 손꼽히는 명물.
특히 관음상 복전함 밑에 숨겨진 세발 두꺼비 삼족섬(三足蟾)은 많은 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이는 정갈하게 기도를 하고 삼족섬을 만지면 소원을 두 가지나 이뤄주기 때문. 올해가 가기 전 ‘은밀한’ 세발 두꺼비에 다가가 아직 못 다한 소원 두 개를 직접 빌어보면 어떨까. 느슨해진 바람들이 탄탄한 매듭이 되어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 줄지도 모를 일이다.
·주  소: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번지
·연락처:낙산사 종무소 033-672-2447

■글·사진  윤서원 여행작가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