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영화배우 유덕화와 주윤발이 술잔 두 개를 놓고 독이 든 술잔을 누가 마시느냐를 가리는 내기를 한다. 먼저 술잔을 골라 마신 유덕화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다리를 휘청거린다. 그러자 주윤발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이때 유덕화가 한마디 한다. “누가 삐삐 쳤어. 진동 때문에 혀 깨물었잖아!”

고등학교 교실. 수업 도중 한 학생의 허리춤에서 삐삐가 계속 울려대자 화가 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말한다. “삐삐 찬 녀석, 복도로 나가 있어!” 그러자 학생들이 우루루 복도로 나간다.
그런데 유독 두 녀석만 복도를 지나 운동장까지 나가는 게 아닌가. 선생님이 소리 친다. “야, 너희 둘은 뭐야?” “예, 저희는 휴대폰입니다.”
1990년대 유행하던 삐삐에 얽힌 개그다. 삐삐는 서태지와아이들, 농구대잔치와 더불어 당시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기기의 호출 알림음 때문에 ‘삐삐’라 불린 무선호출기는 1983년 우리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등장 초기 삐삐는 언론사, 의사, 변호사, 금융, 영업사원 등을 중심으로 사용됐지만 무선 호출의 효용성이 알려지면서 사용자 범위는 빠르게 확대됐다.
1997년엔 이용자 수 1500만명을 기록하면서 필수품으로 등극했다. 당시 대부분의 성인들은 주머니 속이나 허리춤에 무선 호출기를 지니고 있었다. 어느 순간 호출기에서 부르르 진동이 느껴지면 호출기를 꺼내 작은 액정에 찍힌 숫자들에 집중했다.
특히 연인들에겐 지금의 휴대전화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둘만의 은밀하고 짜릿한 아날로그식 교감의 매개체로 떠올랐다. ‘8282 1004(빨리빨리 천사)’란 숫자가 뜨면 설레는 마음으로 공중전화 부스를 향해 달렸다. 때론 공중전화 부스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속을 태우기도 했다.
이와 달리 주어진 실적을 채우지 못한 말단 영업사원의 경우 액정에 사무실 전화번호와 8282가 뜰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지금 30~50대들에겐 낯익은 추억의 모습이다.
‘8282 1004’처럼 숫자로 의미를 전하는 약어도 많았다. ‘0024(영원히 사랑해)’, ‘1010235(열렬히 사모)’, ‘8255(빨리 오오)’, ‘1200(지금 바빠요, 일이빵빵)’ ‘0179(영원한 친구)’ 등등. 이 같은 숫자 암호는 연인, 친구 사이에 공공연하게 사용되며 삐삐는 통신수단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문화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패션 등에 부는 복고 열풍이 통신분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추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삐삐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변신, 2014년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는 이동통신 3사가 내년 1월부터 사물 인터넷(생활 속 사물들을 유무선 네트워크로 연결해 정보를 공유하는 환경)에 예전 삐삐에서 사용되던 012 번호를 부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즉 택시의 무선 결제처럼 사물에 삐삐 번호를 부여해 사물과 사물이 서로 통신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현재 이 같은 기술은 ‘택시 카드 결제기’나 ‘버스 위치정보’ 등 실생활 곳곳에서 쓰이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움직이는 물체와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이 기기들에 삐삐 번호 ‘012’가 부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삐삐의 응용 분야가 상당히 다양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윤종록 미래부2차관은 “지난 10년간은 사람이 직접 이용하는 인터넷 시대였다면 향후 10년은 사람뿐 아니라 사물까지도 인터넷과 연결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삐삐 번호 012 부활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삐삐 번호 012 부활, 추억이 생각난다. 엄청 반갑다”, “삐삐 번호 012 부활, 요즘 애들은 이걸 왜 쓰나 하겠지”, “012 추억이 새록새록”, “삐삐 번호 012 부활 느낌 아니까~”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노경아 jsjy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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