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서원 골목 벽화

섬유산업의 메카였던 대구시가 근대문화유산거리로 탈바꿈을 했다. 대구시는 ‘근대거리골목투어’로 특허까지 낼 정도로 열정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대구 중구청에서는 도심 골목을 돌며 근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근대골목투어’를 만들었다. 테마별로 꾸민 관광코스를 소개한다.

대구근대문화 역사관
근대골목투어에는 약전골목, 진골목, 뽕나무골목 등 수백 개의 골목이 실핏줄처럼 뻗어 있다. 이 지역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대구시내에 흩어져 있는 근대문화유산을 찾아내는 일만도 여러 날을 필요로 한다. 이럴때 첫 번째로 찾아야 할 곳이 대구근대문화 역사관(대구시유형문화재 제49호)이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조형미가 뛰어난, 예사롭지 않은 역사관 건물이다.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됐다. 일제강점기에 경상감영 관아가 해체되면서 도청을 비롯해 많은 공공기관 건물들이 옛 관아건물터에 들어설 때 세워졌던 건물 중 하나다. 현재까지 원형이 잘 보존돼있는 지상 2층, 지하 1층 건물로 2011년 1월 대구근대역사관으로 개관했다. 이곳에서 대구여행의 대충 그림을 그려내고 지도 한 장을 받아들고 역사관을 나와 경상감영공원으로 나서면 된다.

경상 감영 공원
경상감영공원은 대표적인 대구시민들의 휴식처다. 경상감영은 경상도를 다스리는 관찰사(감사)가 근무했던 곳이다. 선조 34년(1601)에 경상좌도, 우도가 통합되면서 관찰사 김신원이 경상감영을 대구로 옮겼다. 당시 대구는 경상도 일대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 경상감영 자리는 원래 명나라 장수 두사충의 집터였다. 동쪽에 경상감영을 두고 서쪽에 대구 관아와 객사를 뒀다. 주요 건물로는 감영과 중영을 비롯해 객사, 누각, 향청, 진영이 있었다. 고종 33년(1896) 지방 행정을 13도제로 개편한 이후에도 경상감영은 경상북도의 중심지 역할을 이어갔다. 1601년부터 310년간 253명의 관찰사가 대구에서 근무를 한 덕분에 대구는 영남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됐다. 현재 공원 안에는 선화당(대구유형문화재 제1호)과 징청각(대구유형문화재 제2호)만이 남아 있다. 또 관찰사와 대구판관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총 29기의 선정비가 있다. 2008년부터 동성로축제 개막일에 맞춰 경상감사도임순력행차가 매년 열리고 있다.

향촌동 옛 문화예술인의 거리
감영공원 안내팻말에서 도로를 건너면 향촌동 골목길이다. 이곳은 6·25전쟁 때 서울의 문인, 예술가가 대구로 내려와 예술혼을 불태웠다. 오상순, 김팔봉, 마해송, 박두진, 조지훈, 이호우, 박목월, 유치환 등 셀 수 없을 정도였단다. 화가 이중섭도 이곳으로 피난왔다.
시인 구상(1919∼2004)이 시집 ‘초토의 시’를 발표했던 ‘꽃자리 다방’과 음악가 권태호(1903∼72)가 ‘나리 나리 개나리…’라는 가사의 동요 ‘봄나들이’를 작곡한 곳이 ‘백조다방’이었다. 백조다방, 꽃자리다방, 화월여관, 백록다방, 경복여관 등은 이제 옛 건물과 팻말로만 남아 있다. 세월 지난 현재 이 지역은 카바레 일색이다. 예나 지금이나 유흥가로 그 명맥을 잇고 있는 듯하다.
또 근처의 인교동의 삼성상회는 현 삼성그룹의 발상지다.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1910∼1987) 회장이 28세이던 1938년 세운 첫 사업장이다. 호암은 지하 1층, 지상 4층의 목조건물인 이곳에서 별표국수를 생산하고 청과물, 건어물 등을 중국, 만주 등지까지 수출했다.

진골목과 약전거리
대구시 진골목에는 유명한 약전거리가 있다. 진골목은 ‘긴 골목’이란 말의 경상도 사투리다. 폭 2m에 길이 200여m인 진골목에는 대구 최초의 2층 양옥과 옛 부호들의 저택이 늘어서 있다. 소설가 김원일이 쓴 ‘마당 깊은 집’의 배경이 이 골목이다. 현재 개발이 한창이다. 떡집골목을 지나면 ‘약전골목’이 이어진다. 대구는 ‘약령시’로 불릴 만큼 큰 한약재시장이 열리던 곳이다. 조선 효종 6년(1658)부터 대구감영 객사 부근에서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한약재를 거래했다. 우리나라는 물론, 만주, 중국, 골골, 아라비아, 일본, 베트남 등 여러 나라로 한약재를 거래해 국제시장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현재의 약전거리는 겉으로 보기엔 그저 약재를 파는 상점이 늘어서 있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세월의 깊이를 느끼기에는 역부족인 거리에 약령시 한의학문화관(지하1층, 지상3층)이 있다. 한옥 형태 건물에 현판을 달고 정원을 만들어 두었다. 족욕을 즐길 수 있게, 한약재 물을 달여 놓았다. 문화관에는 유창하게 설명해주는 해설사가 있다. 이것저것 볼거리, 배울꺼리, 체험꺼리가 많은 문화관이다. 1978년부터 약전골목에서는 매년 봄, ‘약령시 한방문화축제’가 열린다.

계산 성당
계산성당은 전주의 전동성당과 함께 우뚝 솟은 쌍탑이 아름다운 성당으로 유명한데, 원래는 1899년에 지금의 강화도 성공회성당과 유사하게 십자가 형태의 2층 구조에 기와를 올린 한식 건물로 지었다. 하지만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불이 나서 무너지고 1902년, 그 자리에 지금의 모습으로 새로 지었다. 이곳 성당의 주임이자 대구대교구의 주교로 임명된 파리외방선교회 소속의 로베르 신부가 설계하고 공사를 지휘했다. 서울(명동성당), 평양(관후리성당)에 이어 국내에서 세번째로 지어진 고딕양식의 성당으로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상화 시인은 이 성당에서 영감을 얻어 관능의 미를 표현한 ‘나의 침실로’를 지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이 성당에서 혼례를 치뤘다. 성당 밖 등나무 벤치 옆으로 이인성 나무라 이름 붙은 감나무가 있다. 일제 강점기 ‘천재 화가’로 불린 대구 출신 이인성(1912∼50)이 1930년대 그린 ‘계산동 성당’ 그림에 나오는 나무다. 일제 때 활동했던 화가로 자신의 작업실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구암서원
북구 산격동은 달성 서씨의 세거지였다. 종가 일대에는 아직도 서씨 집이 200여 가구가 몰려 있어 여전히 서씨 마을로 통하고 있다. 이 골목에는 달성 서씨 문중서원인 구암서원이 숨어 있다. 구암서원은 현종6년(1665)에 서침 선생의 덕을 기리기 위해 연구산에 숭현사를 세우고 제향했다. 숙종44년(1718)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서거정을 추가 배향했고, 1741년에 서성, 1757년에 서해를 추가 배향했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었다. 그 뒤 1924년 유림에 의해 복원됐으며, 1943년에 숭현사와 강당을 중수하고 1974년에 보수했다. 그러다 1996년에 경내의 숭현사(대구문화재자료 제3호), 묘정비, 비각은 연암공원으로 옮겨 갔다. 현재는 출입문인 경앙문, 강당, 제수청 건물이 남아 체험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사진은 구암서원 골목 벽화.

■여행정보
○ 근대 역사박물관 : 포정동 33(문의: 053-606-6430)
○ 감영공원 : 포정동 21(문의: 053-254-9404)
○ 한의약박물관 : 남성로 51-1(문의: 053-253-4729, dgom.daegu.go.kr)
○ 계산성당 : 계산동2가 71-1(문의: 053-254-2300)
○ 구암서원 : 북구 산격동 산79-1
○ 골목투어 포인트 : 중구청에서는 따로 해설사를 동반한 골목투어를 진행 중이다. 중구청 문화관광과(053-661-2194)나 홈페이지(gu.jun g.daegu.kr)에서 신청할 수 있다.
○ 찾아가는 방법 : KTX 동대구역에서 내려 승용차로 10분 가량 달리면 중구의 명소를 두루 만날 수 있다. 동대구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해 반월당역을 기점으로 찾아다녀도 된다.
○ 별미 즐기기 : 대구는 막창이 유명하다. 북구 복현동과 남구 대명동에 밀집되어 있다. 또 동인동 찜갈비 골목도 유명하다. 그 외 골목에는 식당들이 다수 있다.
○ 기타 볼거리 :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에는 ‘김광석 길’이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그는 32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장 옆 골목길엔 기타를 치는 형상과 벽화 등 그를 기리는 조형물이 많다. 으레 김광석 노래가 흘러나오는 시장통 막걸리집들이 있다.

■글·사진 : 이신화‘on the camino’ 저자  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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