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일이었다. 서울 중구 청계로 동양그룹 본사 앞은 아비규환이었다.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와서 절규하고 있었다. 모두가 동양 사태의 피해자들이었다. 동양증권을 통해 동양그룹CP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었다. 피해자들은 “이번 사태는 불완전판매를 넘어서 사기”라고 주장했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이혜경 부회장, 정진석 동양증권 사장을 전원 구속해야 한다”고 외쳤다. 동양그룹은 한때 재계 순위 5위의 정상급 기업이었다. 지금은 공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동양그룹이 이 지경이 된 건 뿌리부터 썩어 들어서였다. 동양그룹은 1957년 이양구 창업주가 세운 동양시멘트공업이 뿌리다. 외환위기로 경기가 침체되면서 그룹의 뿌리인 동양시멘트가 어려워졌다. 동양그룹은 동양시멘트에 다른 건설 부문까지 접붙여서 뿌리를 보강했다. 그게 동양메이저다. 그렇게 접붙여서 만든 뿌리 동양메이저도 제대로 양분과 수분을 빨아들이지 못했다. 2004년 말엔 부채비율이 1200%를 넘어선다. 시멘트 사업은 자산 규모 7조원의 동양그룹의 뿌리 역할을 하기엔 허약했다.
그런데도 동양그룹은 동양메이저라는 뿌리에 집착했다. 2005년엔 아예 동양메이저를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 체제로 그룹을 재편한다. 동양메이저는 우선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서 보유하고 있던 동양시멘트의 지분 49.9%를 사모펀드 PK2에 매각한다. 그렇게 급한 불부터 끈 다음 2005년 5월 대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한다. 이때 동양메이저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회사가 동양레저였다. 골프장 몇 개를 부동산으로 보유하고 있다지만 동양레저도 현금이 풍부한 회사는 아니었다. 그런데 동양레저는 동양메이저 앞에 495억원을 선뜻 내놓는다.
동양레저는 골프장을 동양그룹의 금융계열사인 동양생명에 600억원에 매각해서 자금을 마련했다. 대신 동양생명한테서 골프장을 재임대한다. 매년 임대료만 160억원씩 나간다.
동양메이저의 유상증자는 겉으론 성공한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뿌리의 염증을 다른 계열사까지 확산시킨 것에 불과했다. 결국 동양메이저라는 썩은 뿌리를 보강하기 위해 동양레저의 부동산을 매각해서 동양생명의 돈까지 끌어들인 셈이었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고 이양구 창업주의 사위다. 원래는 지분은 별로 없는 사위 경영인일 뿐이었다. 동양메이저가 지주 회사가 되고 동양레저가 동양메이저의 최대 주주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현 회장은 동양레저의 지분 30%를 갖고 있다. 한때는 80%에 달했다.
현재현-동양레저-동양메이저-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 구조가 만들어진다. 게다가 동양레저는 동양그룹의 또 다른 뿌리인 동양증권의 대주주다.
이제 현재현 회장은 더 이상 동양그룹의 100년 손님이 아니었다. 실질적인 오너가 됐다. 동양그룹이 동양메이저라는 썩은 뿌리를 고집한 데는 어쩌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2007년 고 이양구 창업주의 장녀이자 현재현 회장의 아내인 이혜경 씨가 갑자기 동양메이저 부회장으로 경영일선에 등장한다. 이때부터 동양그룹은 사실상 부부 경영인의 2인3각 체제가 된다. 기형적 구조였다.
이때 위기가 닥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2010년 유럽발 재정 위기다. 연약한 뿌리였던 동양메이저가 버텨낼 리가 없었다. 동양그룹은 동양메이저에 동양매직을 합병해서 ㈜동양으로 만든다. 또 다시 썩은 뿌리에 가지를 접붙인 셈이다. 동양그룹은 일찍이 사모펀드 PK2에 매각했던 헌 뿌리 동양시멘트의 지분 49.9%를 되사오는데 몰두한다. 동양시멘트가 코스닥에 우회상장되면 증시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엄청난 금융비용이 문제였다. 동양그룹은 급전을 구하느라 동양생명을 보고펀드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금융 뿌리의 큰 가지가 잘려나간 셈이다. 남은 건 동양증권 뿐이었다. 결국 동양그룹은 동양증권을 통해 개인들한테 동양시멘트의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를 판매해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처지가 된다. 동양증권의 핵심 자산인 소매 금융 네트워크까지 부실화시킨 셈이다. 뿌리가 썩고 가지가 잘리더니 모세혈관까지 썩어버린 꼴이다. 동양매직, 동양레미콘, 한일합섬 같은 자산을 매각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2인3각 경영체제의 폐해였다. 어쩌면 뿌리를 살리는 것보다 누구의 뿌리냐가 더 중요했다.
애초부터 동양그룹은 시멘트라는 원래 뿌리와 금융이라는 새 뿌리가 모두 시들했다. 시멘트 쪽에선 아예 썩은 뿌리 자체를 도려내야 했다. 오히려 뿌리에서 자라난 건강한 가지를 뿌리에 접붙였다. 병증이 가지까지 확산됐고 모세혈관까지 파열됐다. 금융 뿌리 쪽에선 회사를 키우기보단 기존 회사를 유동화시키기에 바빴다. 그러다 동양그룹은 뿌리가 뽑혔다.

신기주(경영전문칼럼리스트 · 「사라진 실패」 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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