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돈에 ‘부도 도미노’
올해 일흔일곱 살이다. 희수의 나이에 구자원 LIG그룹 회장은 차가운 감옥에 있다. 지난 9월13일 3년형을 언도받고 법정구속됐다. 희자축을 받을 처지가 못됐다. 투옥되고 며칠 뒤인 9월16일에는 친누이가 세상을 떴지만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다. 함께 구속된 장남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은 8년형을 받았다. 구본상 부회장은 올해 마흔 두 살이다. 출소하면 50대다. LIG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지난 11월21일 구자원 회장은 LIG그룹 임직원들에게 긴 글을 남겼다. “인생은 흐르는 강물과도 같다고 합니다. 순리대로 흐르던 제 인생의 강물이 바다에 다다르는 마지막 길목에서 예기치 않게 큰 웅덩이를 만났습니다. 결코 비켜 흐를 수도 없고 이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서는 앞으로 더 흘러갈 수도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며칠 전 LIG그룹은 LIG손해보험의 매각 계획을 언론에 발표했다. LIG손해보험 매각은 구자원 회장한텐 큰 웅덩이를 채우기 위한 방편이었다.
구자원 회장과 구본상 부회장은 LIG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을 계획하고서도 일반 투자자들한테 기업어음을 팔았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기업어음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된다. 검찰은 구자원 회장과 구본상 부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기소했다. 피해 규모만 3400억원이 넘는다. LIG손해보험을 팔면 물론 갚을 수 있다. 그런데 LIG손해보험의 매출은 10조원이 넘는다. 자산규모만 18조원이다. 조 단위 회사를 팔아서 억 단위 빚을 갚는 셈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됐다.
LIG그룹의 전체 매출은 12조원 정도다. 금융과 방위산업이 주력이다. LIG손해보험이 LIG투자증권을 거느린 금융지주회사 노릇을 한다. ㈜LIG가 LIG넥스원을 거느린 방위사업 부분을 지배한다. LIG손배보험이 빠지면 사실상 LIG그룹은 LIG넥스원그룹으로 쪼그라든다. 그런데도 구자원 회장은 그룹의 몸통을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이 웅덩이라도 메우면 어쩌면 2심에선 장남은 선처 받을지도 모른다.
사실 구자원 회장과 LIG그룹이 큰 웅덩이에 빠진 건 단순히 사기성 기업어음을 발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웅덩이에서 빠져나오려고 허우적대다 남까지 웅덩이까지 빠뜨린 짓일 뿐이다. 구덩이의 이름은 건영이었다. LIG그룹은 2006년 법정관리 되고 있던 주택건설사 건영을 4100억원에 인수했다. 2010년엔 토목건설사 한보건설까지 인수해서 건영과 합병했다. 그게 LIG건설이다. 문제는 건설 경기 침체라는 깊은 웅덩이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로 주택과 토목 건설 경기가 빠르게 나빠졌다.
그러자 진짜 웅덩이가 아가리를 드러냈다. 구자원 회장과 LIG그룹이 빠진 진짜 웅덩이는 건영 인수가 아니라 건영을 인수한 방식에 있었다. 구자원 회장과 구본상 부회장을 비롯한 LIG오너 일가는 ㈜TAS라는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 TAS가 유상증자를 통해 3000억원 정도를 금융권에서 빌려왔다. 이 돈으로 건영을 샀다. 여기까진 스마트 금융 같았다. LIG오너 일가는 자기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금융권에서 돈을 융통해놓고도 이자도 물지 않았다. 이자는 고스란히 건영이, 나중엔 LIG건설이 감당했다.
문제는 TAS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외국계 사모펀드 넥스젠캐피탈이었다. 넥스젠캐피탈은 대신 LIG오너 일가의 LIG손해보험 지분을 담보로 잡았다. 동시에 풋옵션 계약도 맺었다. LIG건설의 주가가 기준치 이하로 떨어지거나 부도가 나면 넥스젠캐피탈이 가진 TAS의 지분을 오너 일가가 모두 되사와야 한다. 실제로 2012년 넥스젠캐피탈은 풋옵션을 요구했다. LIG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니 당연했다. 게다가 넥스젠캐피탈은 LIG그룹의 생명줄인 LIG손배보험의 대주주 지분도 담보로 잡고 있었다.
결국 구자원 회장은 넥스젠캐피탈의 돈부터 차환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그룹 경영권이 붕 뜰 판이었다. 다른 금융권에서 돈을 끌어와서 돌려 막았지만 사실상 LIG손해보험은 빚더미에 앉은 오너 일가의 손을 이미 떠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LIG손해보험을 팔아서 LIG넥스원만 남은 게 아니다. LIG손해보험을 팔고 LIG넥스원이라도 건진 꼴이다.
감옥에서 구자원 회장은 “큰 웅덩이를 만났다”고 말했다. 원래부터 웅덩이가 거기에 있었거나 글로벌 금융 위기로 갑자기 웅덩이가 생겨난 게 아니었다. 넥스젠캐피탈 같은 능수능란한 외국계 사모펀드가 설계한 인조 웅덩이였다. 그래서 웅덩이는 늘 기회처럼 생겼다. 탐욕에 눈이 먼 자한텐 눈먼 돈처럼도 보일 수도 있다. 실수로 웅덩이에 빠지는 자는 없다. 스스로 웅덩이에 들어가는 것이다. 구자원 회장과 LIG가 그랬다.

신기주(경영전문칼럼리스트 / 「사라진 실패」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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