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회사 L사 부장 김성옥(45·여)씨는 올해 회사 송년회 기획을 맡았다. 고민 끝에 삼겹살집과 맥주집을 빌려 1, 2차 술만 마셔대던 지난해 송년회와 달리 올해 송년회는 임직원이 함께 영화를 관람한 후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인 저녁식사로 마무리 지었다. 식사 중 진행한 작은 상품이 걸린 게임도 큰 인기를 끌었다. 김 부장은 “일부 임원들 사이에서 ‘술 빠진 송년회가 어디 있냐’며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참석자 대부분이 만족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올해 기업 송년회에 숫자를 내세운 캠페인 바람이 불고 있다. ‘119’를 ‘119에 실려 갈 정도로 마시고 죽자’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한 가지 술로, 한 장소에서(1차만), 오후 9시 이전에 끝내자’라는 의미다. 1110은 술자리 끝내는 시간이 10시로 119보다 한 시간 더 여유가 있다. 112는 ‘한 종류의 술로 1차만, 2시간 이내에 모임을 끝내자’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그렇다면 222는 뭘까? ‘반 잔(1/2)만 채우고, 두 잔 이상 권하지 않고, 2시간 이내 술자리를 마무리하자’는 캠페인이다.
모두 음주로 얼룩진 모임 대신 의미 있고 훈훈한 송년회를 보내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복지시설 등 소외이웃을 찾아가 월동용품, 생필품을 전달하고, 봉사활동을 펼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임직원들이 공연을 준비해 동료, 가족들과 함께하는 곳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윤리경영임원협의회 소속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60%가 건전한 송년회 문화 조성을 위해 다양한 사내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캠페인 미실시 기업 대부분은 이미 사내에 건전한 회식 문화가 정착됐다고 밝혔다.
내용 면에서도 기업들의 송년회는 술을 적당히 마시거나 문화공연 관람, 봉사활동, 가족 동반 행사 등 의미 있는 활동으로 바꿔 가는 추세다. 설문 결과 절주 및 간소한 송년회를 권장하는 캠페인이 80.6%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단순한 음주 송년회 대신 봉사활동을 권장하는 캠페인이 8.3%, 뮤지컬·영화·연극 등 공연을 관람하거나 스포츠를 즐기는 문화·스포츠 송년회, 송년회 대신 가족들과 시간을 가질 것을 권장하는 캠페인도 각각 5.6%로 조사됐다.
이달 초 송년회가 시작된 삼성그룹의 경우 ‘다음 날 아침에도 상쾌한 송년회’ 캠페인을 진행, 건강과 업무효율을 해치는 과음을 막고 있다. 캠페인의 골자는 3대 음주 악습으로 꼽히는 △벌주 △원샷 △사발주를 하지 말자는 것. 아울러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지나친 ‘건배사’ 제의도 하지 않기로 했다.
삼성 관계자는 “과거엔 ‘술 잘 마시고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문화가 팽배해 모임 자체가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요즘엔 부서별로 모임을 갖더라도 술은 분위기를 띄울 정도만 마시고, 공연, 영화 관람 등 ‘문화 송년회’로 대체하는 등 큰 변화가 일고 있다” 고 말했다.
송년회 대신 봉사활동이나 기부활동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업들도 있다. 아시아나에어포트, 두산중공업 등이 대표적이다. 부서별로 자율적, 능동적 참여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LG생활건강은 ‘일등품격 캠페인’을 통해 문화활동 중심의 송년 모임이나 가벼운 점심 회식으로 송년회를 대체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삼부토건 역시 음주보다는 뮤지컬 등 문화공연을 관람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문화회식’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LG 관계자는 “술을 못 마시다 보니 송년회를 한다 하면 겁부터 났는데 올해 송년회는 뮤지컬을 본 후 간단히 맥주 한잔 할 것 같아 기대된다”며 “강요하는 음주 문화가 아니라 다함께 즐기는 송년회 문화가 정착돼 가는 것 같아 기분 좋다”고 전했다.
연말 건전한 송년회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기업들의 노력이 건전한 기업윤리 문화로 이어지는 듯해 2014년 우리 경제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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