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외면한 ‘연환계’ 전략 고집
조선과 해운업 양대 기둥 동반 침몰

청해진이 무너졌다. 장보고도 쓰러졌다. 지난 9월이었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이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선업계에선 장탄식이 터져나왔다. 강덕수 회장은 조선업계에선 청해진의 장보고와도 같은 산증인이었다. 맨 손으로 STX그룹을 일구다시피 했다. 강덕수 회장은 STX조선해양의 대표직에서도 사임했다.
STX조선해양은 조선과 해운으로 일어선 STX그룹의 양대 기둥 가운데 하나다. 이미 STX그룹은 해운 주력사인 STX팬오션을 버렸다. 기둥 하나가 뽑혔는데 나머지 기둥마저 주춧돌이 빠진 격이었다. STX 채권단은 강덕수 회장을 STX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배제했다. 그렇게 STX그룹은 공중분해됐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12월로 접어들자 STX 채권단은 강덕수 회장을 배임죄로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오키나와 주일 미군 기지의 괌 이전을 염두에 두고 STX건설이 공격적인 투자를 한 게 발단이었다. STX건설는 군인공제회로부터 1000억원을 빌려서 공사를 시작했다. 문제는 미군 기지의 괌 이전이 나중에 오리무중이 돼 버렸다는데 있었다. 군인공제회는 지급보증을 요구했다. STX중공업이 나서서 STX건설을 보증해줬다. STX 채권단은 강덕수 회장이 STX중공업에 손실을 끼쳤다고 보고 있다. 그룹 해체 작업은 사실상 끝이 났다. 이제부턴 추궁 국면인 셈이다. 
강덕수 회장은 2000년대 들어 신출귀몰한 인수합병 전략으로 중공업 기업집단을 만든 기적의 기업인으로 칭송 받았다. 기적이 가능했던 건 조선업과 해운업의 업황이 성황이었기 때문이었다. 2001년 STX조선을 인수했을 때는 조선업이 호황이었다. 2004년 STX팬오션을 인수했을 때는 해운업이 호황이었다. 당연히 인수합병에 들어간 자금을 인수한 기업의 매출로 금세 메울 수 있었다. 당시엔 분명 해류도 바람도 STX그룹과 강덕수 회장의 편이었다.
바람과 해류가 바뀌자 문제가 일어났다. 조선업황과 해운업황이 동시에 나빠졌다. 첫번째 태풍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였다. 세계 경기가 침체되면서 선박 발주량이 급감했다. 두번째 태풍은 2010년 유럽발 재정 위기였다. 해운 물동량까지 바닥을 쳤다. 단순히 운이 나빠졌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STX그룹은 태풍이 올 때를 대비하지 않았다. 바다를 항해하면서도 언제든 바람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잊었다. STX팬오션을 인수한 뒤에도 강덕수 회장은 공격적인 인수 합병과 외형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2006년 중국 다롄에 15억달러를 들여서 대규모 조선소를 짓기 시작했다. 2008년엔 유럽의 초호화 크루즈 선박 건조 업체 아커야즈까지 8억달러에 인수했다. 정작 다롄 조선소가 완공되고 아커야즈를 인수하던 무렵 조선업은 극심한 불황기에 빠져들었다.
STX그룹은 해도만 보고 전방을 주시하지 않았다. 사실 STX그룹이 쌍용중공업에서 출발해서 대동조선과 범양상선 인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바람과 해류가 도와줬기 때문이었다. 조선업황과 해운업황이 좋았기 때문에 강덕수 회장의 신출귀몰한 자금동원도 가능했다. 물론 다롄 조선소를 세우고 아커야즈를 인수할 때도 바람과 해류만 도와줬다면 엄청난 도약을 이룰 수도 있었다.
문제는 바람과 해류의 방향은 불확실성의 영역에 속한다는 점이다. 이번에 자기 편이었다고 해서 다음에도 자기 편이란 법은 없다. 그래서 경험 많은 뱃사람과 경륜 있는 경영자들은 함부로 확신하지 않는다. 늘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고 대비한다.
게다가 정작 STX그룹의 연환계(連環計)는 STX그룹을 침몰시킨 주된 요인이 됐다. 조선업과 해운업은 경기가 좋을 때는 시너지를 내지만 경기가 나쁠 때는 서로를 보완해주는 게 아니라 서로를 더 깊은 수렁에 빠뜨리는 관계였다. STX그룹을 고속 항진시킨 연환계가 한쪽 배에 불이 붙었을 때는 삽시간에 그룹 전체를 침몰시키는 원인이 됐다.
STX그룹도 모르지는 않았다.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 투자하면서 조선업 이외의 중공업 분야 진출을 도모했다.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신재생 에너지 분야 자체도 조선업처럼 글로벌 경기 침체로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다각화가 불황 때 도움이 되기는커녕 무거운 짐이 된 셈이다.
STX 채권단은 사실상 STX그룹을 해체시켰다. STX그룹은 이제 사라졌다. 과거 대우그룹처럼 대우란 로고를 단 개별 회사들이 각자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지난 10년 동안 강덕수 회장은 곧 STX였다. 결국 신화는 좌초되고 말았다. 외환 위기라는 위기에서 기회를 발견해서 태어났지만 정작 자신에게도 그런 위기가 다가올 거란 사실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위기는 분명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위기의 본질은 언제나 위기 자체에 있다.

신기주(경영전문칼럼니스트 / 「사라진 실패」 의 저자)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