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 법칙’, 공룡기업에도 통할까
KT는 2013년 르완다 정부와 합작법인 올레르완다네트웍스를 설립했다. 르완다 정부는 25년 동안 KT가 올레르완다네트웍스를 통해 LTE통신망을 독점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줬다. 언뜻 보면 노다지다. 뜯어보면 지뢰밭이다. 르완다는 2세대 무선통신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나라다. 르완다는 아프리카에서도 최빈국이다. KT는 르완다에서 직접 LTE사업을 할 수 없다. 망 인프라를 세워주고 사업자한테 대여해줄 수 있는 권리를 얻었을 뿐이다. 르완다 정정은 아직은 불안하다. 1994년 제노사이드의 상처가 생생하다.
KT의 르완다 프로젝트는 사업이 아니라 모험에 가깝다. 그렇다고 르완다가 자원의 보고인 것도 아니다.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이 한국의 IT중심 경제 발전 모델을 배우려고 애쓰는 이유다. 폴 카가메 대통령은 수차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어서 이석채 회장이 KT의 르완다 진출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KT 내부에서도 르완다 진출에 대한 이견이 많았다. 묵살됐다.
르완다 프로젝트는 지금 KT의 난맥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KT는 지난 몇 년 동안 탈(脫)통신을 빠르게 추진해왔다. 한국의 유무선 통신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진단은 옳았다. 이석채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애플의 아이폰을 들여왔다. 아이폰으로 상징되는 무선 데이터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올레라는 광고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덕분에 KT는 한국통신 시절의 공기업 이미지를 벗고 대외적으론 빠르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갖게 됐다.
겉모습만 달라졌다는 게 문제였다. 내부적으론 여전히 직원 6만명에 계열사 54개의 공룡 공기업이었다. 손놀림은 좀 빨라졌을지 몰라도 몸놀림은 여전히 굼떴다. 결국 이석채 회장은 내부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낙하산 인사들을 요소요소에 심고 회장 중심의 탑다운 경영을 강화했다. 다급하게 스카이라이프 같은 비통신 사업에 진출했다. 르완다 프로젝트 같은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섰다.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통신 분야에 주력하는 사이에 정작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주도권을 놓치고 말았다. LTE로의 기술 패러다임 변화에서 뒤쳐졌다. 제때 주파수를 확보하지 못한 탓이었다. 2013년 3분기부턴 만년 3위 LGT한테 맹추격을 당하는 처지가 됐다. 실적이 악화되자 억눌러왔던 내부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선 이석채 회장의 이너서클 경영 방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른바 올레KT와 원래KT의 갈등이 표면화됐다. 올레KT 인사들은 이석채 회장 주변 인사들을 일컫는다. 원래KT는 소외된 인사들이다. 결국 KT는 두 파벌로 갈라져버리고 말았다. KT 안에선 최고경영자와 이너서클이 하는 일에 제동을 걸 수도 없고 걸지도 않는 왜곡된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추진된 대표적인 사업이 르완다 프로젝트였다. 내부 토론과 의견 수렴도 없이 탑다운으로 결정되고 추진된 대표적인 사업이었다. 이석채 회장의 KT개혁은 너무 빨리 가려다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황창규 신임 KT 회장에게 이석채 회장은 반면교사다. 황창규 회장한테도 이석채 회장처럼 KT를 개혁하고 혁신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우선 올레KT와 원래 KT로 분열된 KT 조직부터 추슬러야 한다. 싫든 좋든 대대적인 인사 쇄신은 피할 길이 없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개혁은 없다.
더 큰 문제는 KT가 진단은 나왔는데 수술을 거부하고 있는 환자라는 사실이다. 지금 통신 시장은 겉보기엔 LTE다 LTE-A다 떠들며 속도 경쟁을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론 통신사별 기술 변별력이 줄어들어서 벌어진 마케팅 전쟁일 뿐이다. 소비자들의 눈을 속이고 있단 얘기다. 정작 통신시장의 경쟁은 이미 원가 인하 경쟁으로 접어든지 오래다. KT는 경쟁사에 비해 인건비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 그렇다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밀어붙일 경우 황창규 체제는 뿌리조차 못 내릴 수 있다.
그나마 황창규 회장이 삼성 출신이라는 게 장점일 수 있다. 통신사 경쟁의 차별성 가운데 하나가 단말기다. 문제는 KT가 국내 최대 단말기 회사인 삼성전자와 데면데면하다는 점이다. 아이폰을 앞장서 들여올 때부터 예견된 결과였다. 이것도 풀어야 한다. 정권 교체와 함께 어김없이 경영진이 흔들리는 고질적인 CEO리스크도 넘어서야 한다. 임기 안에 부정할 수 없는 성과를 내주는 수밖에 없다.
KT는 어쩌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다. 사분오열과 내우외환이 겹쳐 있다. 황창규 회장이 삼성전자 시절 같은 ‘황의 법칙’을 만들어 주리라 기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황창규 회장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통신업은 기술이 아니라 서비스다. 고객 만족은 법칙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황의 숙제가 시작됐다. 

■글 : 신기주(경영전문칼럼니스트· 「사라진 실패」 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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