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대명절 설이 눈앞이다. 오랜만에 가족, 친지들과 모이는 자리에 술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아이템. 가벼운 술 한 잔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살리고 소중한 이들과 정을 나누는 데 가장 효과적인 소통의 매개체가 된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설날 ‘세주불온(歲酒不溫·설술은 데우지 않는다)’이라고 해 찬 술을 한 잔씩 마셨다. 정초부터 봄이 든다고 여겨 봄을 맞으며 일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생긴 풍습이다.
이날 마시던 술은 오랜 옛날부터 전해온 도소주(屠蘇酒)로 육계, 산초, 흰삽주뿌리, 도라지, 방풍 등 다양한 약재를 넣어 만든 약술이었다. 조상들은 이 술을 마시면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여겼다.
차례상에 올리는 술은 음식 못지않게 정성을 기울였다. 조선시대에는 쌀을 이용한 100% 순수 발효주를 차례상에 올렸다. 당시 가양주(家釀酒·가정에서 직접 빚은 술) 문화가 발달해 지방별, 가문별로 특색 있는 술이 상에 올랐다. 이 시대에 원료와 제조법에 따라 다양한 술이 만들어지며 지방 명주들이 등장했다.
요즘엔 가정에서 제주(祭酒)로 정종을 많이 쓰고 있다. 정종은 일본의 청주 브랜드 ‘마사무네(正宗)’를 우리 식으로 읽은 것으로 우리 술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 술의 가장 큰 특징은 몸을 생각한다는 것. 그래서 예부터 우리나라 술은 약주라고 불렸다. 몸을 해하는 술이 아니라 몸을 보하는 술을 만들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나는 좋은 재료들로 술에 담근 것이다.
고두밥에 누룩과 물을 섞어 만든 술에 향이 좋은 국화를 넣으면 국화주, 몸을 보하는 인삼을 넣으면 인삼주, 혈액 순환에 좋은 연잎을 넣으면 연엽주가 된다.
올 설엔 우리 술을 만들어 조상께 올리는 건 어떨까? 때마침 농촌진흥청이 설을 맞아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빌며 가정에서 손쉽게 담가 마실 수 있는 우리 옛술 ‘벽향주(碧香酒)’ 제조법을 소개했다.
벽향주는 서울의 약산춘, 여산의 호산춘, 충청 노산춘, 김천의 청명주 등과 더불어 명주로 꼽히는 대표적 전통주로 예를 올릴 때 주로 사용됐다.
2010년 우리 술 복원 프로젝트에 따라 세상에 다시 선보였으며 조선시대 양반사회에서 즐기던 청주로 전해지고 있다. 깔끔한 맛에 향긋함을 더해 목 넘김이 부드러우며 단맛이 덜하고 알코올 도수는 13∼15% 정도다. 선비의 지조가 서려 있는 술로 ‘산가요록’ ‘수운잡방’ ‘증보산림경제’ 등 여러 고문헌에 기록돼 있다.
제조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밑술을 빚는다. 멥쌀과 찹쌀을 각각 800g씩 섞어 깨끗이 씻어 물에 담갔다가 곱게 가루를 낸다. 끓는 물 2.3ℓ로 죽을 쑤어 식혀서 누룩가루 200g, 밀가루 50g을 섞어 항아리에 넣고 7일(봄가을엔 5일, 여름엔 3일) 정도 밑술 발효를 한다.
밑술이 만들어지면 멥쌀 4.2kg에 끓는 물 5.7ℓ로 죽을 쑤어 식히고, 누룩가루 40g과 먼저 만든 밑술을 섞어 발효시킨다. 2∼3일 후에 멥쌀 2.1kg를 가루로 만들어 끓는 물 3.4ℓ로 죽처럼 쑤어 식혀서 앞서 발효 중인 술덧과 섞어 항아리에서 3주 동안 발효시키면 깨끗하고 향긋한 벽향주가 완성된다.
정석태 농촌진흥청 발효식품과 연구관은 “설을 맞아 온 가족이 모여 우리 민족의 발효기술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우리술 벽향주를 빚으면 함께하는 기쁨과 더불어 마시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들어지고, 가장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는 술. 그래서 술은 가장 복잡한 맛을 지니며 한 집안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올 설엔 온 가족의 정성과 사랑이 깃든 술을 맛보자.

노경아 jsjy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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