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공연계의 2월은 비수기다. 연말엔 많은 작품이 무대에 올라 어떤 공연을 선택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지만 해가 바뀌는 순간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다. 일반적으로 연초엔 볼 만한 공연을 찾기 어려운 것. 하지만 올해 2월에는 즐거운 함성을 질러도 될 듯하다. 재미와 감동으로 승부하는 작품들이 대거 무대에 오른다. 풍성한 공연 속으로 빠져보자. 

2월 놓치면 후회할 첫 작품은 ‘벽속의 요정’이다. 김성녀의 모노드라마로 16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펼쳐진다. 일본 극작가 후쿠다 요시유키가 스페인 내전 당시 실화를 배경으로 쓴 희곡이 원작이다.
스페인 내전 당시 정권을 잡은 프랑코 장군 체제하에서 30년 동안 벽 속에 몸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남자의 생애를 그의 아내와 딸의 시선으로 그린다. ‘벽속의 요정’은 배삼식 작가를 통해 일제 말기에서 1990년대까지의 시대와 권력에 저항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로 재탄생됐다.
한국 근대사의 가슴 절절한 순간을 그리면서도 아버지와 딸,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 속에 가족애를 담았다. 이념갈등, 투쟁으로 인한 사회분열 등이 전면에 드러나 있는 원작과 달리 평범한 우리네 모습 속에 삶과 죽음에 대한 인류의 보편적 정서를 전한다. 손진책 연출이 아내 김성녀의 데뷔 30주년을 맞아 선물한 무대로 1인32역을 넘나들며 10년간 500회 넘는 공연에서 매번 기립박수를 이끌어낸 전설적인 작품이다. 박동우(무대), 김창기(조명), 안은미(안무) 등 뛰어난 예술가들의 절묘한 결합도 기대할 만하다.
국립창극단은 신작 ‘숙영낭자전’을 오는 19~23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올린다. 없어진 판소리 일곱 바탕을 토대로 창극을 만드는 ‘판소리 일곱 바탕 복원’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조선 후기 부녀자들이 남들 눈을 피해 몰래 읽던 연애소설 ‘숙영낭자전’은 인기가 많아 판소리로도 불렸다. 전생에 못다한 사랑을 이승에서 이루려는 숙영낭자와 선군, 선군을 사랑하지만 수청마저 거절당해 앙심을 품은 노비 매월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현대판 ‘사랑과 전쟁’이다.
극단 모시는사람들을 25년간 공동으로 이끌어온 김정숙 작가와 권호성 연출의 찰떡 호흡은 지난해 연극 ‘숙영낭자전을 읽다’로 이미 인정받았다.
특히 신영희 명창이 처음으로 작창(作唱)을 맡아 더욱 기대된다. 국립창극단의 대표 여배우 김지숙, 박애리씨가 숙영으로 나온다. 선군 역에는 이광복, 김준수씨, 매월 역은 정은혜, 이소연씨, 창극을 이끄는 도창(導唱)으로 관객을 공연으로 인도하는 ‘책 읽는 여인’ 역은 서정금씨가 맡았다.
다음달 2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중인 ‘은밀한 기쁨’은 추상미의 무대 복귀작으로 일찍부터 관심이 집중됐다.
국내에서 ‘에이미’ ‘블루 룸’의 작가로 유명한 데이비드 헤어의 대표작이다. 1988년 영국 런던 로열국립극장에서 초연된 뒤 1993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연인 어윈과 함께 작은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던 이사벨이 아버지의 죽음을 맞으면서 헤어나올 수 없는 인생의 깊은 늪에 빠진다.
사회지도층 인사인 언니 부부, 아버지의 알코올중독자 애인 캐서린, 이사벨에게 상처받은 애인 어윈을 통해 탐욕과 자본주의, 그로 인한 전통적 가치와 인간성의 붕괴를 그린다. 추상미가 이사벨 역을, 이명행이 어윈 역을 맡았다. 연극  ‘은밀한 기쁨’은 원작자, 연출가, 출연진의 면면만으로도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밖에도 ‘나와 할아버지’, ‘바람난 삼대’, ‘가을 반딧불이가 동시에 개막해 관람객을 맞고 있다. 14일(금)부터는 재일교포 천재작가로 불리는 유미리의 ‘정물화’가 , 18일(화)부터는 고 윤영선 작가의 ‘G코드의 탈출’이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무대에 오른다.     

노경아 jsjy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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