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매체 편집팀장인 김수연(42)씨는 고교 친구들과의 여행을 계획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문제는 돈. 똑같은 수입, 고정된 지출로 갑자기 결정된 여행경비를 모으는 건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김씨는 오랜 고민 끝에 비자금을 모으기로 결심했다. 우선 점심식사 후 들르던 유명 커피전문점 대신 원두커피 팩을 사서 직접 타 마시기로 했다.
그리고 자가용 운전 대신 근처에 사는 동료와 카풀을 하기로 했다. 커피값과 자동차 유지비만 줄이니 한 달에 20만원 정도가 절약됐다. 김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비자금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며 “앞으로 계속 비자금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치인 혹은 대기업 회장의 재산 은닉 수단, 로비·세금 포탈 수단 등으로만 치부되던 비자금.
하지만 일반 시민에게 있어 비자금은 기본 생활 외에 품위 유지, 취미, 여행 등을 위한 재원이다. 그런 까닭에 일반인이 보유한 비자금은 검은돈이 아닌 희망의 돈인 셈이다.
회사원 정재석(45)씨는 “비자금이 없으면 회사 동료나 후배들에게 술 한잔도 못 사는 ‘모양 빠지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며 “비자금은 품위 유지를 위한 마지막 보루”라고 아내의 눈을 피해 비자금을 모으는 이유를 밝혔다.

부부 절반 "우리집 경제권은 아내가"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달 21일부터 25일까지 5일간 전국 기혼남녀 158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4년도 제2차 저출산 인식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3.8%가 배우자 몰래 비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의 경우 44.8%가 비자금을 운용한다고 답해 남성(37.7%)보다 비율이 높았다. 전업주부와 워킹맘의 비자금 운영 비율은 각각 45.5%, 44.1%로 많은 기혼 여성들이 직업 유무와 관계없이 비자금을 갖고 있었다.
비자금을 모으는 이유로는 64%가 ‘배우자 모르게 돈 쓸 일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서’라고 답했고 ‘그냥 불안한 마음에 모은다’(20.9%)가 그 뒤를 이었다.
이번 설문에서 우리나라 부부의 대부분은 아내가 ‘경제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47.3%가 ‘돈 관리는 아내가 한다’고 밝힌 것. ‘남편이 관리한다‘는 응답은 13.0%에 그쳤다. 이외 공동관리 29.2%, 각자 관리는 10.5%로 조사됐다. 경제권이 아내에게 있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당연히 돈 관리는 여자가 해야 한다’는 응답이 58%로 가장 많았다.
한편 가사 분담 문항에서는 ‘아내가 거의 다 한다’는 응답이 48.5%로 가장 많았다. ‘남편·아내가 반반씩 한다’는 응답도 40.6%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 연상 부부의 경우 절반씩 나눠 한다는 응답이 50.6%로 가장 많아 남성 연상 부부(39.3%)보다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었다.
부부생활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서는 ‘사랑해서 산다’가 56.2%로 가장 많았다. ‘정(의리) 때문에 산다’는 답변도 24.5%를 차지하는 등 연령대가 높을수록 사랑보다는 정 때문에 산다고 답했다.
이외 부부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로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42.9%) △가족 간 대화, 여행(40.0%) △경제적 안정(10.8%) 순으로 나타났다.
손숙미 인구협회장은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경제권, 가사분담 등 부부 생활에서 기존의 가부장적 관계가 많이 무너졌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노경아 jsjy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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