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뉴스=중소기업뉴스팀] 2010년 7월이었다. 물가상승압력이 감지되던 시점이었다. 저금리 기조 때문에 가계부채도 소리소문없이 증가하고 있었다. 금리인상의 필요성이 제기되던 시점이었다. 당연히 한국은행으로 이목이 집중됐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0년 하반기부터는 3%대에 진입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2011년에는 필히 3%를 넘는 물가상승률을 갖게 될 겁니다. 대처해야 합니다.” 분명 금리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2010년 9월 정도면 금리가 인상될 거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컨센서스였다.
9월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렸다. 금리는 동결됐다. 다음번엔 올릴 줄 알았다. 10월에도 동결됐다. 시장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김중수 총재가 금리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게 화근이었다. 금리를 방치했다면 직무유기였다. 거짓 신호를 던졌다면 신뢰상실이었다. 결국 김중수 총재는 이렇게 말했다.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 적은 없습니다. 우회전 깜빡이를 켰다고 해도 꼭 첫번째 골목에서 우회전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닙니까. 두 번째 골목이나 세 번째 골목에서 우회전할 수도 있는 겁니다.”
이때부터였다. 김중수 총재와 한국은행은 시장의 의심을 사고 말았다. 한국은행이 우회전 깜빡이를 켜도 우회전할지 의심부터 했다. 실제로도 한국은행은 자꾸만 시장에 모순되는 신호를 던졌다. 깜빡이도 넣었다 바꿨다를 반복했다. 2013년 4월이었다. 한국은행은 2013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시장에 금리인하 신호를 준 셈이었다. 그래놓곤 또 금리를 동결했다. 좌회전 신호라며 좌회전 깜빡이를 넣고도 또 직진을 해버렸다. 이때 시장은 아예 김중수 총재를 버렸다.
김중수 총재는 취임 초기엔 개혁적 인사로 기대를 모았다. 김중수 총재는 KDI 원장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거쳐 OECD대사를 경험했다. 한국은행은 보수적인 분위기 탓에 절간 같다고 한은사로 불린다. 전세계 중앙은행의 진화 방향과는 맞지 않았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나 EU의 유럽중앙은행은 점점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자국 경제에 개입하는 분위기였다. 중앙은행이 물가관리에만 집중하는 기계적 중립성에서 벗어나서 경제 현안에 직접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미국의 금융위기와 유럽의 재정위기는 벤 버냉키 연준의장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의 활약 덕분에 조기 수습된 측면이 있었다. 한국은행도 산사에서 벗어나서 중생 속으로 들어올 필요가 있었다.
김중수 총재는 한국은행의 성골이라고 할 수 있는 조사국과 경제통계국 출신보단 다양한 인사와 외부 인력을 중용했다. 한국은행의 전통적인 연공서열 체제를 흔들었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한은이 연준처럼 시장의 소방수가 되려면 내부 조직부터 개혁할 필요가 있었다. 한은 본연의 역할이 흔들리면서 김중수 개혁도 실패했다.
2010년 7월 김중수 총재가 금리인상을 주저하면서 김중수 개혁의 명분이 무너져버렸다. 당시 김중수 총재가 금리 인상에 실패한 건 청와대와 정부의 압력 탓이 컸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쓴 맛을 보고 7월과 10월 재보선을 앞두고 있던 당시 정부여당은 금리인상을 원하지 않았다. 이때 김중수 총재는 한은의 독립성을 지켜냈어야 했다. 정작 김중수 총재는 한은에 뿌리가 깊지 않았다. 정치권 압력을 이겨낼 보루가 없었다. 결국 김중수 총재는 “한은도 정부”라는 항복 선언을 하고 말았다. 덕분에 시장도 돌아섰다. 김중수 개혁이 불편했어도 명분에는 동의했던 한은 내부의 지지도 잃고 말았다. 이 무렵 이번에 새 한은총재로 내정된 이주열 당시 한은 부총재와도 몹시 불편해지고 말았다.
지금, 한국은행은 진퇴양난에 빠져있다. 금리인상 시기를 놓치면서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올랐다. 이젠 금리를 인상했다간 폭탄이 터질 상황이다. 그렇다고 물가상승률이 높은 것도 아니다. 2013년 물가상승률은 1.3% 정도다. 디플레이션 징후다. 여기서 중앙은행이 한 발만 잘못 내디디면 일본처럼 잃어버린 세월을 보내게 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에선 슬슬 금리 인상 얘기가 나오고 있다. 미국 경기가 살아나고 있어서다. 이미 테이퍼링은 시작됐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김중수 총재처럼 백악관에 굴복할 리가 없다. 미국 금리가 상승했는데 한은이 금리 인상을 머뭇거리면 자본이 빠져나간다. 외환위기다.
이주열 신임 총재 내정자는 정통 한은맨이다. 지금은 한은개혁도 중요하지만 한은 본연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우회전 깜빡이를 넣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첫번째 골목에서 우회전을 해야 한다. 한은도 정부지만 한은은 결코 기재부 소공동 출장소가 아니다.
시장의 신뢰를 얻고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지키면서 소방수 역할까지 해내야 한다. 원래가 중앙은행은 금리라고 하는 한 가지 도구로 물가, 실업률, 부채, 경제성장, 증시와 채권까지 다 잡아야 한다. 일타쌍피는 한국은행의 숙명적 과제란 얘기다. 이젠 이주열 내정자에게 달렸다.

-글 : 신기주(경영전문칼럼니스트 /「사라진 실패」 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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