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이었다. 올해 82세인 운전기사가 손님을 태우기 위해 신라호텔 현관 앞으로 택시를 주차하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차가 호텔 현관 쪽으로 돌진해버렸다. 운전기사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운전했는데 갑자기 차가 앞으로 튀어나갔다고 주장했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회전문 앞에 있던 직원 한명과 호텔 손님 두명이 다쳤다. 손님 한명은 다리가 골절됐다.
일단 신라호텔의 물적 피해액은 줄잡아 4억원 정도다. 무형의 피해도 크다. 현관 회전문과 자동문은 주문 제작을 해야 한다. 수 개월이 걸린다. 그 기간 동안 손님들은 로비 옆문으로 드나들어야 한다. 호텔 로비는 호텔의 얼굴이다. 정문 현관이 망가지면서 신라 호텔의 인상도 구겨졌다. 신라호텔은 지난해 8월 재개관했다. 리노베이션을 하는데만 7개월이 걸렸다. 그렇게 애써 고쳐서 문을 활짝 열어놨는데 불과 반년여만에 문짝이 망가졌다.
그런데, 신라호텔은 80대 운전기사에게는 배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배상 책임을 지게 되면 운전기사는 사실상 길바닥으로 나앉게 된다. 운전기사는 형편이 빠듯한 걸로 알려졌다. 게다가 경찰은 80대 기사의 운전 부주의가 실수의 원인이었다고 결론내렸다. 급발진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기사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친 사람이 있어서 자칫 형사 처벌을 받게 될 수도 있었다. 분명 신라호텔이 사람 하나를 살렸다.
지난 20일 이 뉴스는 하루 종일 화제였다. 처음 보도되자마자 인터넷이 댓글로 도배가 됐다. 그런데 신라호텔이나 택시사고가 검색어가 아니었다. 이부진과 삼성이 검색어였다.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이 운전기사의 사정을 파악하고 4억원의 배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결정한 당사자로 알려져서였다. 이부진 사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녀다. 자연히 삼성과 이건희가 연관 검색어로 떠올랐다.
왈가왈부도 이어졌다. 한편에선 이부진 사장과 신라호텔이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 운전기사를 면책해줬다는 논리를 폈다. 다른 한 편에선 세계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갑부인 이건희 회장의 장녀 이부진 사장한텐 4억원 정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억만 장자가 몇 억원을 희사했다고 박수쳐줄 일이 아니란 논리였다. 이부진 사장이 포기한 4억원은 따지고보면 이부진 사장의 돈이 아니라 신라호텔의 비용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삼성은 비판받아 마땅한 기업인 만큼 이런 일로 기만당해선 안 된다는 얘기도 이어졌다.
분명, 이부진 사장과 신라호텔은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기업은 착한 일을 하고 싶다고 착하게 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기업은 구성원 개개인이 사익을 추구하도록 조직돼 있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이번 사건만 해도 그렇다. 회사가 4억원이라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연말 결산에서 감사를 했을 때 CEO가 독단적으로 4억원을 포기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큰 일이 난다. 배임이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가 기업에서 선행을 한다는 건 생각보단 위험천만한 일이란 얘기다. 기업에선 선한 일이 벌 받을 일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부진 사장과 신라호텔은 80대 운전기사를 두둔했다.
삼성가의 권능이 있어서 가능했다. 고용사장이라거나 일반 임원은 그런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가장 이기적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양심을 따르고 싶으면 책임도 져야 한다. 사실 오너의 권능으로도 쉽지만은 않다. 오너라도 법적인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않다. 오너한테 권력이 있는 건 맞지만 따라야할 규칙도 있다. 명분이 필요하다. 대외에 알리는 수밖에 없다. 4억원을 포기하는 대신 회사의 이미지를 높였다는 핑계거리라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론 설왕설래만 낳을 것도 안다. 도리가 없다.
삼성은 한국의 숙제다. 이제까지 한국이 창조한 가장 최선의 기업 조직이면서 동시에 가장 이기적인 기업 조직이다. 삼성은 삼성을 위해서만 움직여서 때론 한국 사회와 마찰을 빚는다. 그런 삼성에 대해 한국인들은 양면적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삼성은 뛰어나지만 그래서 불편하다. 최강자에 대해 느끼는 이중적 감정의 전형이다.
강자는 견제돼야 마땅하다. 견제되지 않은 권력은 부패하고 타락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삼성을 둘러싼 논란은 강한 삼성과 공생하기 위해 한국 사회의 견제와 균형이 작동한 결과들이었다. 어쩌면 이부진 사장과 신라호텔의 이번 판단은 삼성에 대한 사회적 견제가 빚어낸 결과일 수도 있다. 기업의 생리에 순응해서 4억원을 받는 것보단 삼성과 한국 사회의 화합을 도모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 걸 삼성도 깨달아가고 있단 얘기다.
이번 일은 분명 이부진 사장이 슬기롭게 판단한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몇몇 언론처럼 이부진 개인을 신화화해서도 안 된다. 분명한 건 이번 일이 충분히 박수받아야 한단 사실이다. 삼성은 한국에서 견제돼야 마땅한 힘이다. 삼성은 한국에 필요한 힘이다. 
 
-글 : 신기주(경영전문칼럼니스트 / 「사라진 실패」 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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