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9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적합업종 관련 긴급 합동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태종 외식업중앙회 부회장, 인보식 자전거판매업조합 이사장, 김서중 제과협회장, 최선윤 연식품연합회장, 은희문 LED조명조합 이사장, 김복덕 소룩스 대표이사, 김민수 전등기구 LED조합 전무, 윤희진 조명조합 전무. <중소기업뉴스 자료사진>

재지정 앞둔 中企 적합업종제도
[중소기업뉴스=이권진 기자] ‘규제개혁’의 여파가 자칫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덮치려는 위기상황으로 불거지고 있다. 피해 대상은 다름 아닌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이며,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이 죽는 암덩어리”라며 합리적인 규제혁파를 강조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개혁 대상의 하나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지목되면서 때 아닌 홍역을 치르는 분위기다. 적합업종 지정에 따라 외국계 기업의 이익만 불렸다는 정체불명의 괴소문도 나돌아 관련 업계가 시름에 빠지기도 했다.
올해는 적합업종제도의 신규지정 34개 품목, 재지정 82개 품목 등 총 116개 품목이 지정 대상에 올라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이 제도를 통해 회생과 성장의 발판을 간신히 되찾은 수많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지만, 규제개혁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자칫 하루아침에 수몰될지도 모를 걱정에 빠졌다.
그동안 동반성장위원회의 적합업종제도를 비롯해 중소기업중앙회가 추진한 ‘손톱 밑 가시 뽑기’ 등 공정한 시장거래를 유도하는 경제 정책에 반발해 온 대기업 집단과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가 되레 힘을 받고 있다. 손톱 밑 가시가 아니라 아예 손톱을 뽑아버리려는 왜곡된 시도들도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는 건전한 기업 생태계를 위협하고 파괴하는 나쁜 규제일까.  

적합업종제도의 값진 결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지난 3년간 건강한 시장 생태계와 신규 일자리 창출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들이 우후죽순 난립하던 순대 시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11년 9월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지정된 순대 시장에서 중소기업들이 마음 놓고 투자를 확대하면서 양질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
동반성장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위생관리 투자를 위해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을 취득하거나 진행하는 중소업체가 15곳 정도이며 앞으로 20개사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적합업종제도의 우수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골판지 상자와 판지상자 및 용기 시장은 적합업종 지정 이전에는 업계 평균 매출액이 25억원에 불과한 영세기업들이 대다수였다. 최근 이 업계에서 매출 100억원을 상회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적합업종제도의 효과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대기업이라는 큰 손이 사라진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공정경쟁을 통해 성장 활로를 개척할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자동차 재제조부품, LED, 맞춤양복, 기타인쇄물, 떡, 생석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합업종제도의 순기능이 매출 증대와 일자리 창출 그리고 자립기반 마련 등의 큰 결실을 맺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 업계 “지속적인 적용” 열망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적합업종 재지정 중소기업계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65%가 넘는 응답기업이 “적합업종 지정에 따라 대기업의 진입자제와 이에 따른 심리적 안정감을 느꼈다”고 할 정도로 이 제도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든든한 보호막이 됐다는 평가다.
이처럼 지난 3년 동안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82개 품목의 영세 사업자들은 이 제도의 긍정적인 효과가 지속적으로 적용되기를 열망하고 있다. 오는 9월 중소기업 적합업종 재지정 계획과 함께 신규지정에 대한 중소기업계의 호소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최근 동반위에 따르면 화장품소매업, 애완동물소매업, 전세버스, 문구도매업, 슈퍼마켓 등 34개의 신규품목에 대한 업종 신규지정이 조정중이거나 추진예정인 상황이다. 따라서 올해 동반위가 추진하고 있는 적합업종 신규지정과 재지정 일정과 심의 과정에 중소기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적합업종에 지정된 한 중소업체의 관계자는 “대기업의 횡포가 없는 지난 3년간 간신히 자생력을 마련했다”며 “3년이라는 적합업종제도 기간이 짧은 현실에서 대기업이 다시 진입하면 그간 쌓은 결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며 올해 반드시 재지정을 통해 제도가 지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켜야할 제도” 中企기관장들 한 목소리
“풀어야 할 규제는 풀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필요한 규제는 지키자.”
중소기업 관련 기관장들도 적합업종제도의 중요성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은 지난달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규제완화를 적합업종과 연관 지으면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의 포커스가 흐려질 수 있다”며 정부의 고강도 규제개혁 흐름 속에서도 중소기업 적합업종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가 있다면 적합업종 제도 자체보다는 운영 방식의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한다는 게 한정화 청장의 지론이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도 지난 1일 ‘공정거래의 날’ 기념식에서 “최근 일각에서 민간 자율 합의로 이뤄진 제도와 공정거래 정착을 위해 추진되었던 정책들을 나쁜 규제로 치부하고 그 취지를 폄하하려는 시도가 있다”라며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역설했다. 적합업종제도가 건강한 사회적 합의라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적합업종제도를 이끌고 있는 유장희 동반위원장도 최근 “적합업종은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민간 중심으로 지정해 건강한 시장 생태계를 조성하는 제도”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꾸준히 대화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한 후 지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적합업종 ‘특별법’ 제정 가속도
국회도 적합업종이 건강한 기업생태계를 조성한다는 인식을 함께 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적합업종의 강제성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가 적합업종을 지정하는 ‘적합업종 특별법’을 2012년부터 지속적으로 입법 발의하고 있다.
법적 근거도 있다. 헌법 제119조 2항에 따르면 경제민주화를 위해 경제주체간 조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에 국회는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2012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를 ‘대·중소기업상생협력추진에관한법률’에 신설했다. 무엇보다 적합업종제도는 초법적 조치가 아니라 법률 근거에 따른 민간 자율 합의로 운영된 제도라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개혁 국정비전에 따라 폐지하고 혁파해야 할 나쁜 규제는 완화하거나 없애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에 의한 중소기업·소상공인 골목상권 침탈을 막는 제도와 규범은 지켜야 한다.
중기중앙회의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 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황을문 회장은 “과거 중소기업계가 힘들었던 시장의 독점화 문제를 이제라도 바로잡고 대·중소기업이 균형 있는 성장을 함께 해나갈 기틀을 마련했다는 게 중소기업 가족들의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충분한 검토와 원칙 없이 기업생태계의 규제를 완화한다면 의도치 않게 균형이 깨져 생태계 전체가 심각한 병에 시달릴 수 있다. 적합업종제도야말로 발전적인 기업생태계를 살리는 건강한 세포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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