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채운(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대·중소기업 간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소상공인의 안정적 생업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로 3년 전에 도입된 적합업종 제도가 올해에 재지정 시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쟁논리를 옹호하는 시장론자들은 적합업종 제도가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약하고 경제성장 동력을 저하시키며 소비자의 선택권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시장실패를 주목하는 규제론자들은 대기업이 기존의 사업기반을 이용해 손쉽게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에 침범해 규모를 확장하는 것은 불공정한 경쟁이며, 중소기업들이 도태돼 소수 대기업이 시장을 독과점화하면 산업생태계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며 소비자들의 권익도 손상될 수밖에 없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이와 같은 찬반논쟁은 지극히 건강하고 건전하다. 객관적 사실과 타당한 통계를 가지고 누구의 주장이 맞는가를 검증하는 것은 학문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매우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순수하지 못한 의도를 가지고 적합업종 제도를 흔들거나 부정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진실을 왜곡하거나 호도해 여론몰이에 나서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  

진실 왜곡·여론 호도 세력 존재
적합업종 제도를 무력화시키려는 세력들이 자주 애용하는 단골 메뉴는 외국계 기업과의 역차별이다. 국내 대기업이 나간 자리를 외국 기업이 들어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적합업종 때문에 대기업 제품의 수요가 위축돼 영세 생산자가 피해를 본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무엇보다 적합업종을 실시해도 중소기업의 매출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한다. 국내 중소기업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외국계 기업만 반사이익을 본다는 것이 반대논리의 핵심요지이다.
적합업종 무용론을 주장하는 세력에 대한 반작용으로 적합업종을 강제화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국회에서는 정부가 적합업종을 지정하고 강제적으로 적용하는 ‘적합업종 특별법’이 지속적으로 입법 발의되고 있다. 중소기업들도 일부 대기업이 적합업종을 준수하지 않고 있으며 한시적으로 종료될 경우 다시 대기업의 무차별적 확장이 예상되기 때문에 적합업종의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적합업종 제도가 법제화돼 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시행될 경우 과거 고유업종 제도가 가져온 폐해가 재발할 것이며, 더 나아가 국제통상 분쟁을 야기할 소지가 크다.

양보·합의 기반한 아름다운 관행
현재의 적합업종 제도는 민간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재 하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자율적으로 협의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이해관계자 당사자들이 서로 양보하고 합의하는 것은 아름다운 관행이다. 하지만 조급증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는 이런 중립적인 제도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느 한쪽에 편향되지 않고 자율적으로 합의안을 도출하는 현행 적합업종 제도에서는 당연히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절충안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적합업종이 시행된 지 3년도 안되는 시점에 성과가 없다고 단정하거나 성과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무리이다. 적합업종을 시행한다고 중소기업이 당장 살아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아니다. 
적합업종 제도에 의해 대기업의 활동이 억제되는 것과 상응해 중소기업들에게는 자구노력의 책임이 부과된다. 단지 규모가 영세하니까 보호만 해달라는 것은 더 이상 국민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 적합업종 제도는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도록 만드는 여건을 제공할 뿐이다.
적합업종 제도를 이용해 자생력을 키우는 것은 누구도 대신해 주지 못하는 중소기업 고유의 몫이다. 중소기업이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정부에게 부족한 부분을 정당하게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고, 국민들도 이해와 성원을 보내주게 된 것이다. 적합업종 제도는 언제가 사라진다. 그 때를 대비해 준비하는 중소기업만이 승자가 될 것이다.

임채운(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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