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압박에 정점서 백기투항…‘사교육 공룡’초심 돌아가나

[중소기업뉴스=이권진 기자] 2009년 12월이었다. 메가스터디를 박차고 나온 이근갑은 새로운 인터넷 강의 회사를 막 차릴 참이었다. 이근갑은 메가스터디의 언어영역 대표강사로 활약했다.

메가스터디의 대표강사는 전국구 스타강사를 대변한다. 스타강사가 칠판에 밑줄을 그으면 전국 수십만명의 학생들이 교재에 따라 줄을 친다.

그는 자신했다. “수많은 강사들이 메가스터디의 신화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강사들을 기업시스템의 작은 부품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강사들이 실질적인 주인이 되는 그런 회사를 세울 겁니다.”

이 무렵 메가스터디의 새로운 기업시스템을 요구하며 뛰쳐나온 스타강사는 이근갑만이 아니었다. 메가스터디의 경영 방식에 불만이 많던 일부 강사들이 투자기관과 손잡고 새로운 학원기업을 차려 버렸다.

그런데 막상 학원기업을 세워보니, 내부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돌릴 왕도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메가스터디의 기업시스템을 벤치마킹하기에 바빴다. 시장의 성공모델이기 때문이었다. 아예 메가스터디의 경영 인력 일부도 빼내갔다. 이러면 학원기업의 새로운 모델이라고 할 수 없다. 제2, 제3의 메가스터디가 양산되고 있었던 셈이다.

일부 스타강사의 반기에도 메가스터디는 끄떡없었다. 스타강사가 빠져나간 메가스터디엔 금세 새로운 스타강사가 등장했다. 음악 프로그램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1위 가수가 탄생하는 것과 비슷했다. 음악 프로그램과 다른 점이라면, 메가스터디의 스타강사는 메가스터디가 결정하고 팍팍 밀어줘 완성된다는 점이다.

메가스터디는 성장 가능성이 엿보이는 과목별 강사를 자사 홈페이지 메인에 노출시킨다. 인지도가 높아진 강사는 메가스터디의 간판 스타로 등극한다. 반면 인기가 시들해진 강사나, 경영진과 마찰이 빈번한 부류는 과감없이 하차시킨다. 메가스터디의 냉혹한 강사 관리 시스템이다.

지난 2000년에 설립된 메가스터디는 사교육 시장의 온라인화를 주도하며 폭풍 성장했다. 한때 시가총액이 1조원에 육박했다. 메가스터디의 핵심 추진력은 단연 우수한 강사를 확보하는 데에 있었다. 메가스터디의 창업주인 손주은 대표도 강사 현역시절 ‘손사탐’으로 불리는 사회과목의 스타강사였다.

사업 초창기 손 대표는 과목별 전도유망한 강사를 영입하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며 전국 일대를 돌아다녔다. 입도선매였다. 그렇게 메가스터디가 빠르게 스타강사들을 배출하자, 나중엔 알아서 우수한 강사들이 문을 두드렸다. 나중엔 평범한 강사도 스타강사로 성장하기도 했다. 

사실 우수한 강사들이 1등 기업인 메가스터디를 등지게 된 배경에는 먹고 살만한 사교육 생태계가 구축됐기 때문이다. 메가스터디 출신 강사라면 업계 2, 3등 학원기업에서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독자생존으로 창업을 해도 성공 가능성이 높았다. 변두리 학원의 강사라도 중원에 진출해 하루 아침에 부와 명예를 쟁취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었다.

그러한 르네상스 시기의 절정이 대략 2010년까지였다. 온라인 사교육 시장의 성장곡선은 거의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메가스터디라고 시장의 흐름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메가스터디는 성장의 한계를 타파하기 위해 본업인 중·고등 온라인 강의의 성공을 바탕으로 자회사를 우후죽순 늘려 나갔다. 경찰공무원, 의학전문대학원과 로스쿨 입시를 비롯해 출판, 급식 시장까지 진출했다.

모두 2010년까지 일궈낸 과업이었다. 2011년에는 대학 편입학 시장 1위인 아이비김영을 인수했다. 이로써 메가스터디는 중·고등, 편입, 공무원시험 등 대한민국의 주요 사교육 비즈니스를 수직계열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정말 메가스터디의 바람처럼 제2의 르네상스를 구가할 것만 같았다. 이때 느닺없이 메가스터디에 찬물을 끼얹은 곳은 정부였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2010년 대입 정책을 싹 갈아 엎는다고 발표했다.

특히 과열된 사교육 시장을 억제하려고 대학수학능력시험과 EBS 강의의 연계를 강화했다. 이는 메가스터디 실적에 직격탄을 날린 정책이었다. 특목고 입시 철폐 및 내신강화로 중등온라인 사업부문 매출액도 타격을 입었다. 정부가 메가스터디의 발목을 제대로 걸었다.

어떻게 보면, 지난 15년 동안 한국의 교육생태계는 공공재 시장과 사교육 상품 시장 간의 지난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초창기 메가스터디는 교육을 상품화 시키는 데에 대성공했고, 학생과 학부모는 상품화된 교육 시장에 열렬한 수요자가 돼 버렸다.

메가스터디가 주도한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 때문에 일선 학교와 EBS강의 등 공교육 진영이 삽시간에 시장의 공급자 가운데 한 곳으로 전락했다. 학교가 재미없기 시작했다. 누가 더 유쾌하고 손쉽게 교육 상품을 전달하느냐의 싸움이라면, 딱딱한 학교 책상보다는 인터넷 강의나 마음 맞는 친구들과 공부하는 학원이 더 매력적이었다.

그걸 정부가 혁파하려고 한 것이다. 입시제도를 손보면 사교육 시장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걸 간파한 것이다. 학교 교육시간을 되살리고, 학교 선생님들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했다. 학교에서만 공부해도 대학 가는 길이 손쉽도록 자꾸 입시정책을 손질했다. 메가스터디를 스터디한 것은 학생들만이 아니었던 셈이다.

정부의 정책 견제와 사교육 시장의 위축으로 메가스터디는 막강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 결국 지난 4월 22일 메가스터디가 M&A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이제 다른 학원기업과 사모펀드의 먹잇감 신세가 됐다.

돌이켜보면 국내 온라인 사교육 시장의 탄생과 성장과 몰락이 메가스터디의 업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메가스터디의 지난 행보를 들여다 보는 일은 한국교육을 복기하는 일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정작 손주은 대표는 메가스터디의 위세 하락에도 무덤덤했었다. 그는 2011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목숨 걸고 공부해도 소용 없습니다. … 양극화에 밀리지 않기 위한 발버둥뿐입니다. 공부해서 취업한들 대기업 부속품밖에 더 됩니까. 이제 공부는 구원이 아니라 기득권층 뒷다리만 잡고 살자는 수단이에요.”

손 대표는 대학입시의 사회적 순기능과 중요성마저 부정했다. 사교육 시장에서 입지적 인물에 오른 그의 대답치곤 너무 솔직하면서도 허무하기 짝이 없다.

그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손 대표는 앞서 인터뷰에서 말했다. “가르치는 일을 내가 잘하니깐, 사교육의 현실을 인정하고 차선책을 구하자 싶었죠.”

그래서 그가 달려간 곳은 강남 부잣집 동네가 아니었다. 잘 나가는 노량진 입시학원도 아니었다. 누구나 접근 가능한 대중 강의였고 인터넷 강의였다. 그걸 발명했고 전파했다.

최근 메가스터디는 안산 단원고 재학생 모두에게 전 강좌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어쩌면 손주은 대표는 모두가 쉽게 공부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목표로 끊임없이 노력했는지 모른다. 바로 사교육의 공공재화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 정부와 시장과 힘겹게 싸워야 했다. 그러기 위해 냉혹한 학원기업의 길을 걸어야 했다. 막상 최고 정점에 올라서는 백기투항했다. 손주은 대표는 덧붙였다. “메가스터디가 나쁜 기업일 수도 있습니다.”

손주은의 메가스터디는 곧 사라진다. 이제 메가스터디를 졸업한 사람들이 메가스터디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시험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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