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일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세기 후반 한국의 경제성장은 지독하게 가난했던 국민과 정부가 이룩한 세계사적인 사건이었다. 어떻게 그 같은 기적적인 역사가 가능했을까? 경제발전을 앞장서서 이끈 대통령과 정부, 실사구시 정신과 결합한 유교적인 전통, 자식들을 위해 삶을 헌신한 교육열 등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
하지만 가난했던 국민들이 ‘잘 살아보자’는 모토 아래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수출제일주의 하에 기업, 근로자, 정부가 하나가 돼 창출한 부는 비교적 공평하게 분배됐다.
적어도 그 때는 외환위기 이후 확대된 재벌과 영세기업 간의 격차, 확대된 소득 양극화가 훨씬 덜 심각했고, 경제성장의 과실이 국민 간에 비교적 골고루 분배됐다. 노동운동 등 일부 자유가 억제됐지만 모두가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에 국민은 통합됐고, 열심히 경제성장에 동참할 수 있었다.

‘희망공유’에 정부와 시장 손잡아야

그러나 세계적인 기업이 생겨나고, 국부가 증가하면서 기업 간, 개인 간 소득 격차는 오히려 심화됐고 집단 간 갈등과 불신은 확대돼 갔다. 모두가 가난할 때는 한 마음으로 어려움을 이겨냈지만 부가 형성된 이후에는 부를 둘러싼 갈등과 분열이 빈발하게 됐다. 부에 가까이 있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에 소득에 격차가 발생하고, 희망을 공유하는 것이 점점 어렵게 느껴지게 됐다.
실제로 각종 통계는 소수 대기업집단과 그 외의 기업, 부를 축적한 개인과 그렇지 못한 개인 간의 소득 격차가 계속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현상이 비단 우리만이 아니라고 해서 위안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나톨 칼레츠키는 그의 저서 ‘자본주의 4.0’에서 정부와 시장이 협력하는 따듯한 자본주의를 주장한 바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대가(The Price of Inequality)’라는 저서에서 정치권과 정부가 분배의 형평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과 제도를 운영할 것을 강하게 권고했다.
‘21세기 자본론’을 저술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는 최근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본주의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현재 미국 등의 빈부 격차가 심각하다고 본다.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각국 정부와 정치가 불평등하게 왜곡된 시장의 분배를 보다 공평한 방향으로 이끌라는 것에 모아진다.

청춘의 ‘무한도전’에 걸맞은 보상을

한편 우리는 ‘Stay hungry, Stay foolish’라고 외쳤던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마음으로 우직하게 희망을 추구하라는 뜻이다. 이미 있는 것에 기대고, 약삭빠르게 세태를 쫓는데서 벗어나라는 조언이다.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창조경제 등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우리는 올바른 분배의 방향과 룰을 재정립하는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예컨대 청년들이 부모 재산에 의존해 획득하는 각종 ‘스펙’보다는 아르바이트나 인턴 등을 하면서 체득한 경험과 역량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노력하는 것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기회균등의 민주적 가치를 지키고, 기업 현장에 필요한 경험을 존중한다는 점에서도 논리적이다.
기업들은 축적된 부를 활용하는 기존 사업부보다 신제품 부문 등에서 새롭게 도전하는 이들에게 더 높은 보상을 하는 전통을 만들 필요가 있다.
쌓아놓은 부나 세금에 기대 거둔 성과보다는 맨 땅에서 이룩한 성과와 경험을 더 존중하고 크게 보상할 때 우리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고 사회통합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김승일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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