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연산방

성북동 여행은 한성대 역 6번 출구에서 마을 버스를 타고 시작된다. 일단 최순우 옛집을 둘러보고 선잠단터를 거쳐 잠시 망설인다. 곧추 올라갈 것인지 길상사와 성락원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머뭇거림이다. 일단은 곧추 올라가기로 한다. 수연산방~덕수교회를 차도를 사이에 두고 왔다갔다 해보는 것이다. 걷는 마지막 지점은 한용운 생가인 ‘심우장’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북정마을이다. 특히 심우장과 북정마을 쪽은 부촌의 대명사로 알려진 성북동에 아직까지 남은 달동네 마을이다.

시민문화재 1호…‘혜곡 최순우 기념관’
성북동 여행의 시작은 ‘최순우 옛집(등록문화재 제268호)’부터다.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시민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해 ‘혜곡 최순우 기념관’으로 운영하고 있어 정갈함이 배어 난다. 여전히 사람들이 찾아오고 누군가 설명을 원한다면 기꺼이 해주는 곳. 툇마루에 앉아 작은 마당위로 뚫린 하늘을 보거나, 여느 집에서 보기 드물게 건물 뒤켠에 만들어진 정원을 감상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이 집은 최순우 선생이 1930년대에 지어진 한옥을 1972년에 구입해 1984년 타계할 때까지 살았다.

이어 길을 건너 선잠단 앞에 선다. 그저 몇 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수령 오래된 뽕나무가 넓게 심어져 있다. 선잠단은 조선시대 역대 왕비가 누에를 길러 명주를 생산하기 위해 잠신으로 알려진 서릉씨를 배향하는 단을 쌓고 제사 지내던 곳. 왕은 선농단에서, 왕비는 선잠단에서 기원을 했다. 뽕나무는 고급 비단의 어의를 만들기 위한 용도로 궁궐에는 누에를 기르는 잠실을 두었다. 예전에는 궁궐 곳곳에 뽕나무를 심고 왕비가 직접 누에치기 시범을 보여주는 친잠례를 치렀다.

이어 찾을 곳은 덕수교회 안에 있는 이종석 가옥(서울시 민속자료 10호)이다. 덕성교회가 인수하기 전 대림산업 창업주인 이재준 회장의 소유였기에 ‘성북동 이재준가’로 불리다가 2009년에 ‘이종석 별장’으로 변경됐다. 특히 이 가옥은 담장이 별스럽다. 대부분 주택 담장은 바람을 막기 위해 쌓아올리기 때문에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기 쉽지 않지만 이종석별장은 담장을 회색 전벽돌로 쌓아올리면서 십자(十) 모양으로 바람구멍을 냈다. 이 주택이 여름별장으로 지어졌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근거다.

문인들이 모인 산속 집…‘수연산방’
덕수교회를 나와 길을 건너면 성북 다문화 빌리지 센터와 돈가스 집을 만나게 된다. 그 사잇길로 들어서면 우측에 수연산방이 있다. 그저 찻집으로 볼 수 있지만 이 집은 상허 이태준 선생의 옛집이다. 회색벽돌의 높은 돌담에 일직으로 솟은 나무 문. 안으로 들어서면 나뭇잎이 우거져 있는 마당은 그리 넓지 않다. 우측으로 잘 지어 진 한옥. 왼쪽은 흐릿한 조명을 밝히고 있는 지붕 낮은 현대적인 건물이다. 특히 이 집에서는 자연스러운 한국식 정원의 운치가 아름답다.

한옥의 모양새나 현판의 ‘일관정(一觀亭)’ 글씨체도 예사롭지 않다. 추녀에는 절간처럼 풍경을 달았다. 특히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직접 집자해 팠다는 ‘문향루’가 눈길을 끈다. 이태준이 1933~1946년까지 14년간 거주한 이곳은 어떤 사연이 깃들여 있을까? 이태준 선생은 강원도 철원에서 출생해 휘문고보를 나와 일본 상지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시대일보’에 ‘오몽녀’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구인회에 가담하고, 이후 이화여전 강사,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 등을 역임했다. 일제 강점기때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인정받고 한국 문화예술계를 주도했다. 그러다 한국전쟁 직후 월북했다. 해금조치(1988년)가 내려진 후에야 다시 알려지게 된 문인이다. 이 집에서 단편 ‘달밤’과 ‘돌다리’를 썼고 중편 ‘코스모스 피는 정원’, 장편 ‘황진이’와 ‘왕자호동’을 썼다고 한다. 선생의 집으로 알려져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자 10여 년 전, 지인에 의해 ‘수연산방’이라는 이름의 찻집으로 개방된 것.

잃어버린 나를 찾는 곳…‘심우장’
이어 더 위로 조금만 오르다 길을 건너면 만해 한용운(1879~ 1944) 선생의 동상이 길가에 있고 그 위에 ‘만해 산책공원’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전망대가 있다. 새로 만들어진 공간을 지나 좁고 오래된 골목길로 오르면 ‘심우장’(서울시 기념물 제7호)을 만난다. 만해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서예가 오세창(1864~1953)이 쓴 현판 아래의 툇마루에 앉아 앞마당 오른쪽 구석진 곳에 만해가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성북구 아름다운 나무로 지정)를 바라본다. 올곧게 하늘 향해 올라간 향나무에서는 선생의 향기가 느껴진다.

선생은 이곳에서 1933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살았다. 3·1운동으로 3년 옥고를 치르고 나와 거처 없이 지내다가 지인들이 북장골 골짜기에 이 집을 마련해준다. 만해가 북향집을 선택한데는 이유가 있다. 일제 총독부와 등지고 있었기 때문. 총독부에 등 돌려 앉느라 기꺼이 햇빛까지 포기한 것. 선생은 ‘조선 땅 전체가 감옥’이라며 만해는 생전 불도 때지 않았다고 한다. 평생 일제에 저항하는 삶을 일관했지만 광복을 보지 못하고 생애를 마쳤다.
심우장(尋牛莊)이란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에서 유래한 것. 결국 ‘잃어버린 나 찾는 곳’인 게다.

심우장을 나와 골목길을 따라 오르면 북정달동네 마을과 이어진다. 북정마을의 유래가 재미있다. 조선시대에 궁중에 바치는 메주 쑤는 권리는 지금의 청운동 창의문(일명 자하문) 밖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졌다. 조선 영조 44년부터는 북정 마을 사람들에게도 그 권한의 일부가 주어졌다고 한다.

그 후 온 마을에 콩을 삶는 소리가 ‘보글보글’ 들렸고 분주히 움직이는 마을 사람들이 ‘북적북적’댔다 하여 그 소리를 본 따 이 마을 이름을 ‘북적마을’이라 하다가 ‘북정마을’이 되었단다. 마을에서는 성곽이 한눈에 조망된다. 집은 개발되지 않은채로 남아 있다. 서울시에서 선정한 ‘2013 우수마을공동체’에 뽑혔다는 이 마을이 언제, 어떻게 될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여행정보
○주변 볼거리
길상사와 성락원이 있다. 특히 성락원은 최근에 일반인에게 모습을 드러낸 곳이다.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었으나, 의친왕 이강(1877∼1955)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조선시대 민가의 조원(造苑)으로는 서울에 남은 유일한 것이다. 성락원은 조선시대 서울 도성 안에 위치한 몇 안되는 별서정원의 하나로 가치가 크다. 성북구청에 미리 예약해야 가능하다. 또 성북동은 김광섭 시인이 60년대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에 대해 노래하던 ‘성북동 비둘기’의 배경이 된 곳이다. 가는 곳곳에 싯구를 만나게 된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단어는 ‘쌍다리’다.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성북천이 흘렀던 자리에는 다리 두 개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성북천의 상류에 속하는 성북동은 비만 내리면 물난리를 겪어야 했다고 한다. 수시로 성북천 정비를 했지만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늘어나는 사람과 그만큼 늘어나는 집을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복개되돼 현재 10여 채의 집들이 성북천의 옛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또하나 대사관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호주, 스웨덴, 칠레, 슬로바키아 등 약 37개국 대사의 관저가 있다.  대사들이 모여 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거주환경’ 때문이라고 말한다.

○ 최순우 옛집:성북2동 126-20, 문의:02-3675-3401, www.nt-heritage.org
개방시간:10:00~16:00, 휴관일:매주 월요일, 일요일, 추석 등, 개방기간:4~11월, 특별 개방:매월 4주 일요일(14:00~17:00, 단 9월은 5주 개방), 주차불가
○  선잠단:성북동 64
○  수연산방:성북동 248, 문의:02-764-1736, 영업시간:12:00~22:30, 주차가능
○ 이종철 가옥:성북구 성북동 243-1, 문의:02-741-5161
○  심우장:성북동 222-1, 2, 문의:02-920-3058, 개방 시간:10:00~18:00
○  성락원:성북동 2-22
○  길상사:성북2동, 문의:02-3672-5945-6, www.kilsangsa.or.kr 토, 일요일에 법회가 열리고 6월부터 템플스테이도 가능하다.

○  찾아가는 방법:창덕궁에서 혜화동, 삼선교 방면으로 가다 한성대입구역에서 좌회전하면 성북동
○  대중교통:지하철:4호선 지하철 이용. 한성대입구역에 하차해 5-6번 출구. 지하철역에서부터 천천히 걸어서 이동하면서 찾아다니면 좋을 듯하다. 버스편:마을버스 1111번, 2112번 이용.
○ 별미집:성북동에는 최순우 가옥 앞의 손가네(02-743-8937, 설렁탕, 불고기, 128-16)가 있다. 또 경신고와 성북초등학교 삼거리 사이에는 서울왕돈까스(02-766-9370, 돈가스, 131-85), 금왕돈까스(02-764-2691, 돈까스, 256-2), 성북동메밀수제비(02-764-0707, 성북동 281-1)에서는 누룽지 닭백숙이 유명하다. 또 옛 쌍다리 근처에 있는 기사식당들도 인기를 누린다. 커피는 일상(02-762-3114, 로스팅커피), 드로잉(02-745-9731, 갤러리카페), 키친 등 괜찮은 카페도 여럿 있다. 또 재즈음악홀인 리홀 있다. 자니 브라더스가 운영하고 있는데 LP판이 8만여 장이 넘는다. 또 달롤(02-766-6034, 성북동 60-34)은 쌀로 만든 플레인 롤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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