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HJC는 망할 뻔 했다. 2008년 키코한테 덜미가 잡혔다. 홍진HJC은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하는 기업이다. 홍진HJC은 세계 오토바이 헬멧시장 점유율 1위다. 시장점유율이 15%에 달한다. 업계 2위인 이탈리아의 놀란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매출의 97% 가까이를 해외에서 기록한다. 외환 거래가 많은 만큼 당연히 환헤지상품인 키코에 가입해 둘 수밖에 없었다.

2008년 갑자기 환율이 급등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탓이었다. 홍진HJC도 직격탄을 맞았다. 2008년 홍진HJC의 매출은 923억원이었다. 영업이익은 67억원이었다. 키코 탓에 132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홍진HJC로서는 감당 못할 액수였다.

홍진HJC는 1992년부터 단 한 차례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빼앗긴 적이 없었다. 홍진HJC은 대표적인 중소기업 히든 챔피언이었다. 한국의 대다수 히든 챔피언들은 대기업의 부품 업체다.
수출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해서 동반 해외 진출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홍진HJC은 독자 브랜드로 세계 1위를 달성했다. 그냥 우량한 중소기업이 아니었다. 초우량 강소기업이었다.

홍완기 홍진HJC 회장은 1971년 오토바이용 의류 제조업체 홍진크라운을 창업했다. 처음엔 헬멧 안쪽 내피를 제조했다. 1974년 서울헬멧을 인수하면서 오토바이 헬멧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1978년 한국 오토바이 헬멧 시장 1위에 올랐다. 한국 오토바이 헬멧 시장은 크지가 않았다. 한국에선 오토바이가 짐차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헬멧 시장도 다양해지기 어려웠다. 홍완기 회장은 미국 시장 진출을 시도했다. 미국 연방교통성의 기준을 맞춘다는 건 쉽지가 않았다. 디자인면에서도 따라잡아야 했다. 홍진HJC은 가볍고 튼튼하면서도 저렴한 오토바이 헬멧을 생산했다. 결국 미국 시장을 석권했다.

게다가 홍진HJC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거의 자금을 빌리거나 지분을 매각하지 않았다. 상장도 안 했다. 알짜 경영을 했다. 기사회생의 기회가 여기에 있었다. 은행이 홍진HJC한테 받아야 할 돈은 1200억원에 달했다. 홍완기 회장은 은행들이 이 돈을 출자 전환하도록 설득했다.

은행 입장에서도 시장 점유율 1위에다 현금 흐름까지 좋은 홍진HJC의 지분을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결국 은행들은 홍진HJC의 지분 23%를 가진 2대 주주가 됐다. 출자전환을 통해 홍진HJC의 신용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홍진HJC는 기사회생했다. 홍진HJC가 미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고집 덕분이었다.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 OEM방식을 활용하면 훨씬 쉬웠다. 물건만 넘기면 그쪽 나라에서 알아서 브랜드를 붙여서 판매했다. 관리 비용도 줄일 수 있었다. 실제로 미국의 헬멧 회사가 무려 50만달러 어치의 OEM 계약을 제안해온 적이 있었다. 미국 진출 초창기였던 1980년대였다. 당시 홍진HJC로선 거절하기 어려운 거액이었다. 홍완기 회장은 거절했다. 자기 브랜드로 미국 시장에 진출해보고 싶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그렇게 홍진HJC는 직접 진출을 선택했다. 해외에선 HJC라는 이름으로 헬멧을 판매했다. 특히 홍진HJC는 미국에서 개별 도매상들을 상대로 물건을 판매했다. 소비자들한테 평판이 좋은 중소규모 도매상을 선정한 다음 그들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었다.

중소규모 도매상들도 홍진HJC의 물건이 좋기 때문에 선뜻 응했다. 이렇게 윈윈 구조를 만든 게 주효했다. 좋은 물건과 성실한 중간 판매자가 소비자한테까지 혜택을 나눠주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홍진HJC는 어느새 미국 시장 점유율 1위의 오토바이 헬멧 업체가 됐다. 그래도 홍진HJC는 중소 도매업자들을 버리지 않았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중간 판매자가 찾아와도 거들떠 보이도 않았다. 의리였다. 덕분에 홍진HJC는 한국의 중소기업인데도 미국 안에 웬만한 대기업 못지 않은 탄탄한 유통망을 갖출 수 있었다.
키코로 죽다 살아난 홍진HJC는 오히려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았다. 홍진HJC는 미국에선 인기가 있었다. 유럽에선 아직이었다. 유럽의 오토바이족들은 헬멧에서 패션을 기대했다. 미국 소비자들에 비해 훨씬 까다로웠다. 홍진HJC의 실용적인 헬멧은 유럽 소비자들한텐 잘 통하지가 않았다. 홍진HJC는 유럽에 도전했다. 고급화 전략을 쓰기 시작했다. 고급스런 디자인의 새로운 헬멧 ‘알파’를 선보였다. 개당 70만원이 넘는 고가 제품이다. 유럽 모토그랑프리 대회도 후원하기 시작했다.

오토바이 경주 대회의 슈마허라고 불리는 스페인의 호르헤 로렌소와 전속 계약도 맺었다. 바야흐로 홍진HJC가 세계 모터 스포츠의 후원자로 나선 셈이었다. 현대자동차도 선뜻 나서지 못한 일이다. 유럽에서 모토그랑프리 대회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200개국에서 2억 가구 이상이 시청하는 월드컵 못지 않은 인기 스포츠다.

특히 홍진HJC는 이른바 변신 헬멧으로 유럽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헬멧으로 스피드용과 레저용의 필요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헬멧이다. 디자인과 실용성으로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선 셈이다. 홍진HJC는 한때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살아돌아온 홍진HJC는 더 강해졌다. 이젠 히든 챔피언이 아니다. 글로벌 챔피언이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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