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이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아남반도체 인수를 놓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었다. 모두가 아남반도체 인수에 부정적이었다. 아남반도체는 1990년대 말 비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파운드리는 반도체를 설계만 하는 회사를 뜻하는 팹리스한테서 하청을 받아서 제조만 하는 기업을 뜻한다. 아직 설계 기술이 없는 신생 기업이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 그렇게 하청 생산을 하면서 차차 설계 기술력을 키워보는 것도 꿈꿔볼 수 있었다.
1998년 외환위기가 복병이었다. 아남반도체는 좌초됐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아남반도체가 운이 없었을진 몰라도 전략 자체만큼은 틀리지 않았다고 봤다. 아남반도체의 반도체 설비를 싼 값에 인수할 적기였다.

사실 김준기 회장도 진작부터 반도체 시장 진출을 도모해왔다. 1997년 동부전자를 세우면서 마침내 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동부전자의 사업 모델도 아남반도체와 같았다. 비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 생산이었다. 동부그룹이,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고 작정했다면, 아남반도체 인수가 정답이었다. 단시간내에 선발 주자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아남반도체 인수를 반대하는 동부그룹 임원진 앞에서 김준기 회장은 말했다. “반도체 사업을 7년 이상 앞당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동부그룹은 아남반도체를 인수했다.

동부그룹은 일단 아남반도체를 인수해서 비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의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김준기 회장은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4학년 때 직원 2명과 함께 창업했다. 김준기 회장은 평생을 비즈니스의 전장에서 보낸 사업가였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단 얘기다. 반도체 분야는 초기 생산 설비를 완공하는데만 1조원이 넘게 든다. 매년 매출의 50% 이상씩을 설비에 재투자해야 한다. 치킨 게임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김준기 회장은 우선 삼성전자에서 최고급 인재를 대거 영입했다.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은 성공해본 사람이 알고 있다. 최창식, 구교형, 김택수, 송재인, 김갑용, 유광동, 김범석, 이진수까지 삼성전자 반도체 분야를 이끌어온 최고급 두뇌들이 동부그룹에 차례로 합류했다. 모두 김준기 회장이 직접 비싼 몸값을 주고 영입한 인재들이었다.
김준기 회장은 인재뿐만 아니라 자본도 끈질기게 투입했다. 동부그룹은 2004년 아남반도체와 동부전자를 합병했다. 동부아남반도체를 설립한다. 규모부터 키웠다.

2006년엔 동부일렉트로닉스로 간판도 바꿨다. 동부일렉트로닉스의 부채 규모는 한때 2조4000억원까지 불어났다. 모두 동부그룹이 지급 보증을 해준 자금이었다. 그걸로도 부족했다. 동부그룹은 2007년 동부일렉트로닉스와 동부한농화학을 합병해서 지금의 동부하이텍을 만들었다. 동부한농화학은 농약과 비료를 만드는 알짜 회사였다. 두 회사를 섞어서 재무재표를 개선시켰다. 동부하이텍이 고비를 넘을 때마다 임원들은 불안해했고 투자자들은 불평했다. 김준기 회장은 그때마다 더 고집스럽게 밀어붙였다. 맨 손으로 동부그룹을 창업한 김준기 회장은 실패를 두려워하면 성공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동부그룹의 체력이었다. 동부하이텍이 턴어라운드될 때까지 동부그룹이 뒷받침을 해줄 수 있느냐였다. 동부하이텍은 거의 매년 엄청난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은행권에서 6000억원에 가까운 신디케이트론까지 있었다. 꽁짓돈까지 빌려왔단 얘기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치며 전세계 철강 수요가 줄어들었다. 중국 업체들의 도전도 거셌다. 덕분에 동부그룹한테 주어진 시간이 더욱 줄어들고 말았다.

결국 2013년 12월 김준기 회장과 동부그룹은 동부하이텍 매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실패 선언이었다. 너무 늦었다. 동부하이텍은 동부그룹 전체를 부실화시킨지 오래였다. 10여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성장 동력을 발진시키지 못한 대신 구성장 동력의 화로는 식어버린 탓이었다.

2014년 6월 김준기 회장과 동부그룹은 동부철강과 동부하이텍이라는 철강과 반도체 주력 계열사를 모두 매각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됐다. 그나마도 인수자가 좀처럼 나서지 않는 궁색한 처지로 전락했다. 동부그룹은 동부화재를 중심으로 한 금융그룹으로 쪼그라드는 걸 피할 수 없다. 채권단은 금융 계열사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자칫 동부그룹 전체가 동양그룹처럼 해체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다.

김준기 회장이 처음부터 틀렸던 건 아니다. 자신이 일군 동부그룹의 체력을 과신했던 게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어느 지점에선가부턴 매몰비용 때문에 손절매를 못했던 건 실책이었다. 파운드리의 생사여탈권이 팹리스한테 있다는 것도 숨은 패인이었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1위는 대만의 TSMC다. 애플이 TSMC한테 물량을 몰아줬기 때문이다. 팹리스의 비위를 맞춰가며 하루하루 생존 투쟁을 벌여야 했던 동부하이텍한텐 기술을 축적할 여력은 없었다.
2002년 7월 김준기 회장은 반도체에 도전했다. 잘못된 결정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결정이었다.

-글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0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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