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전국경제인연합회

여름 전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는 매년 여름 정기 하계 포럼을 진행한다. 하계 포럼은 두 단체의 가장 큰 연례 행사다. 재계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라 뉴스의 중심이었다. 전경련의 하계 포럼은 대체로 대다수 대기업들의 휴가 기간이 몰리는 7월 마지막 주에 열렸다.

대한상의는 그 동안은 전경련과 하계 포럼 일정을 조율해왔다. 보통 전경련보다 일주일 먼저 하계 포럼을 개최하는 게 관례였다. 이번엔 다르다. 대한상의가 전경련과 일정 조율을 거부했다. 결국 대한상의와 전경련의 하계 포럼은 같은 시기에 열리게 됐다. 전대미문이다.

예민한 시기다.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 적합 업종 품목 재지정을 놓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계가 치열한 힘겨루기를 벌이는 와중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동반성장위원회에 50개에 달하는 품목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해제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동반위의 적합업종 품목은 모두 82개다. 50개면 61%에 달한다. 사실상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규모다.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2011년 민간 자율합의로 시작됐다. 대기업의 내수 시장 잠식을 견제하고 중소기업의 성장권과 생존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최장 3년 기간의 일몰제다. 일단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더라도 올해  말이면 해제 혹은 재지정의 과정을 거쳐야 한단 의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올해 하반기부터 치열한 공방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들은 전체 82개 가운데 77개 품목의 재지정을 신청한 상태다. 대기업들이 해제를 신청한 품목들과 대부분 겹친다. 동반위는 이달 말부터 실태 조사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과 공익위원까지 15명 내외로 구성된 조정협의체에서 자율합의를 진행한다. 합의가 실패하면 동반위가 직접 나서서 적합업종 여부를 결정한다. 대다수 품목이 자율합의가 어렵다는 게 난제다. 입장 차이가 크고 분명하다.

사실 동반위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해당 기업들의 성장권과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면서 정치적으로도 예민한 사항이다. 적합업종 제도를 시작한 건 이명박 정부였지만 경제민주화를 표방하며 집권한 박근혜 정부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전경련보다 중소기업중앙회를 먼저 찾았다. 중기 대통령을 표방하는 상징적인 행보였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재지정 과정에서 대기업의 입김이 거세게 작용할 경우 비난 여론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다. 해당 업종에 대한 동반위의 실태 조사나 자율 협의뿐만 아니라 적합업종 제도 자체에 대한 국민 여론과 정치권의 태도가 주요 변수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전경련은 경제계 전체를 대표하는 단체로 대접 받아왔다. 대기업 위주로 압축 성장해온 한국 경제 구조 덕분이었다. 대기업의 이익이 곧 경제계 전체의 이익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지금은 아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중기중앙회의 입지가 올라간 이유기도 하다.

대기업 위주의 국가 경제 성장이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의 매출과 이익은 매 분기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는데도 국내 고용률과 설비 투자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이미 10대 대기업의 사내 현금 보유액은 104조원을 넘어섰다. 최근 3년 동안 2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런데도 전경련은 여전히 전체 재계나 국가 경제보단 대기업 위주의 논리를 개발하는 데에만 주력하고 있다. 경제계를 대표해서 국가 경제 전체를 고민하는 선도 단체에서 대기업의 이익 단체로 스스로를 격하시키고 말았다.

전경련과 대한상의의 대기업 하계 포럼이 새삼 주목 받고 있는 이유다. 대한상의가 전경련의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어서다. 전경련은 소수 대기업 회장단으로만 구성된 임의단체지만 대한상의는 상공회의소법에 따른 법정 단체다. 실제로 대한상의 회장을 맡고 있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대기업을 넘어 경제계 전체를 통찰하는 발언을 해서 박수를 받아왔다. 이젠 대기업들조차 회장들의 출석률조차 저조한 전경련보단 재계 안팎의 여론을 능동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대한상의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하반기 중소기업 적합업종 재선정 과정은 대한상의와 전경련의 위상을 역전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전경련이 50개나 되는 품목의 해제를 요구한 건 무리수다. 회비를 내는 회원사의 이익을 지켜준다는 모습을 대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꼼수다. 그것도 삼성이나 현대차 같은 글로벌 대기업을 위해서도 아니다. 규모에선 대기업이지만 업종에선 구멍가게인 일부 대기업들의 콩알만한 이익을 지켜주기 위해서다.

반면에 대한상의는 보수와 중도와 진보를 아우르는 정책자문단을 꾸려서 대기업의 소통폭을 넓히고 있다. 그저 이익만 추구하면 된다던 기업의 시대는 지나갔다. 공동체와 상호 발전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면 기업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지 못한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전경련식 좁은 기업 논리가 자꾸만 설자리를 잃고 있는 이유다. 하반기 중소기업 적합 업종 선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전쟁이다. 전경련과 대한상의 또한 전쟁 중이다. 여름 전쟁이 시작됐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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