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이었다. 미국 아이다호 선밸리에선 앨런앤코 미디어 컴퍼런스가 열렸다. 앨런앤코 미디어 컨퍼런스는 월스트리트의 IB 앨런앤코컴퍼니가 개최하는 비공개 경제경영 컨퍼런스다. 전세계 기술 리더들이 모여서 미래 산업에 대한 통찰을 나누는 자리다. 정상 회담만큼이나 파괴력이 큰 비정상 회담인 셈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래리 페이지 구글 CEO도 앨런앤코 미디어 컨퍼런스에 초대받았다.

미국 경제지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앨런앤코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래리 페이지 구글 CEO가 논쟁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래리 페이지는 이재용 부회장한테 삼성전자의 탈안드로이드 전략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걸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최근 들어 독자 개발한 OS인 타이젠을 탑재한 신제품을 여럿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특히 웨어러블 신제품에 타이젠을 집중적으로 탑재하고 있다. 기어2, 기어2네오, 기어핏이 모두 타이젠OS가 적용된 웨어러블 기기들이다.

올해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완연한 포화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수요 포화도 문제지만 기술 혁신의 천정도 가까워지고 있다. 지금으로선 스마트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제조업체들에겐 웨어러블 시장이 유일한 숨구멍이다. 구글 글래스라는 웨어러블 기기로 먼저 시장의 관심을 돌려세운 건 구글이었다. 삼성전자도 기어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웨어러블 시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스마트폰 시장에선 단짝이었던 두 회사가 웨어러블 시장에선 동상이몽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각자 서로의 영역을 넘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구글은 모토로라를 인수하고 넥서스폰을 만들면서 직접 하드웨어까지 제조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삼성전자는 인텔과 함께 타이젠OS를 개발하면서 소프트웨어 쪽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구글 동맹 체제의 균열은 점점 더 커지는 추세다. 공식적으로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전략은 투트랙이다. 이미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도 갤럭시기어와 기어라이브를 출시한 상태다. 사실 구글 역시 투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실패로 결론내려진 상태다. 하드웨어 학습에 실패한 구글은 삼성전자의 대체제를 찾았다. 바로 LG전자였다.

올 2분기에 LG전자는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LG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은 6062억원이었다. 2013년 2분기와 비교해서 26%나 늘어났다. 역시 원인은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선전이다.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을 맡고 있는 MC사업본부의 2분기 영업이익은 859억원이었다. MC사업본부는 2013년 2분기 이후 3분기 내리 적자였다. 1년 만에 흑자전환한 셈이다.

특히 2분기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1450만대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LG전자는 2009년 애플발 스마트폰 혁신에서 뒤처졌다. 피처폰 시장에선 라이벌이었던 삼성전자의 속도를 좀처럼 따라잡지 못했다.

LG전자는 구본준 부회장 체제가 시작되고 4년 만에 처음으로 스마트폰 시장의 주도권을 잡은 모양새다. G시리즈 덕분이다. 특히 현존 최강의 스마트폰으로 평가 받는 G3는 3분기부터 미국 시장에서도 본격 판매된다. 웨어러블 시장에서도 G워치를 내놓으면서 삼성전자의 기어 시리즈와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다.

문제는 LG전자의 부활이 일부는 구글 착시 효과 때문일 수도 있단 사실이다. 이제까지 스마트폰 시장은 구글이 어떤 하드웨어 제조업체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 세력 균형이 달라져왔다.
초창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대만의 HTC가 주도권을 잡았던 것도 구글과 먼저 거래를 튼 덕분이었다. 팬택 역시 삼성전자나 LG전자에 비해 한 발 앞서 구글의 안드로이드OS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정작 구글은 필요에 따라 하드웨어 파트너를 계속 바꿔왔다. HTC였다가 팬택이었다가 결국 삼성전자와 전략적 동맹을 맺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겸비한 애플에 맞서려면 삼성전자의 기술과 속도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제 삼성전자와 구글의 갤럭시 안드로이드 동맹은 유통 기한이 다해가고 있다. 삼성과 구글 모두 진작부터 인식하고 있는 내용이다. 정상에 선 삼성전자는 구글 없는 삼성 모바일 생태계를 만드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위험하지만 당연한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타이젠OS에 중국의 바이두와 일본의 소프트뱅크를 참여시키면서 세 불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폰을 제조하면서 구글의 소프트웨어 전략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인 상태다. 구글은 삼성전자보다 LG전자에 한 발 먼저 최신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를 제공해서 견제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와 구글의 동맹에 균열이 생기면서 LG전자한테도 마침내 기회가 왔다. 동시에 위기다. 삼성전자가 타이젠을 포기하고 구글과 다시 동맹을 강화하면 LG전자는 외기러기 신세가 된다. LG전자가 구글의 제조 하청업에 머물면 결국 헌신짝 신세가 된다. 과거의 HTC와 팬택이 그랬듯 말이다. LG전자와 구글의 밀월에도 유통 기한이 있단 얘기다.

게다가 글로벌 스마트폰 산업의 지각 변동이 머지 않았다. 새로운 혁신이 애플 진영에서 일어날지 삼성과 타이젠 진영에서 일어날지 구글과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일어날지 혹은 제3지대에서 일어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LG전자에게 ‘럭키’가 더 필요한 이유다.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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