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주식회사에 빗대 표현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싱가폴이야말로 작은 도시국가로 ‘주식회사’라는 표현이 적절한 나라다.
택시 기사들은 모든 말끝에 “Sir,sir”를 붙여가며 외국 승객들에게 붙임성 있게 군다. 싱가폴 호텔의 도어맨만큼이나 다정스레 투숙객을 맞이하고 택시를 잡아주며 유쾌한 농담을 던지는 경우를 다른 나라에서는 본 적이 없다. 길을 묻게 되면 행인들은 친절하게 도움을 준다.
마치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맡은 자리에서 하나의 목표를 두고 일사분란하게 고객의 입맛을 맞춰주는 회사같다. 게다가 엄격한 금연규칙과 잘 청소된 거리하며….
그러나 싱가폴은 지금 흔들리고 있다.
기자들에게 항상 주요 취재원이 되는 택시 기사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흔들어댔다.
“외국 회사들이 줄줄이 나가고 있어요. 지난 1년 새 사무실과 집의 값이 20%는 떨어졌어도 계속 나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물가는 비싸고 벌이는 나빠지고 살기가 힘들어졌어요.”
“실업문제가 말이 아닙니다.”
싱가폴의 유력 영자 신문인 해협신문(The Straits Times)의 1면 머릿기사는 한 여자가 스튜어디스 복장과 간호사 복장으로 일하고 있는 모습을 컬러 사진으로 싣고 ‘두가지 직업을 파트타임으로 갖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정부, 실업자 교육비용 추가 책정’을 헤드라인에 올려놓았다. 경제면 머릿기사는 중국이 홍콩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기로 해서 싱가폴로서는 더 어려워지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경제 위기감 점점 커져
세계 경제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지금 싱가폴은 오히려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몇 안되는 나라다.
싱가폴 주식회사가 흔들리는 이유는 명료하다.
작은 도시국가 싱가폴은 지정학적으로 동남아의 중심이며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중간요지라는 점, 높은 교육수준에다가 영어가 유창한 인력이 자산인 나라다. 그러나 비싼 임금, 엄청나게 비싼 물가와 부동산, 부실한 생필품 생산기반이 지금 결정적인 취약점이 되고 있다.
외국회사들이 줄줄이 떠나 일자리가 줄어드는 마당에 수준 높은 인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두 대양을 연결하는 기항의 역할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보다 훨씬 비싼 물가로는 더 이상 버텨내기가 힘들어졌다. 화물 하역비도 비싸고 물과 음식, 연료를 공급받기 위한 비용 역시 마찬가지다.
싱가폴은 물과 채소 등 대부분의 식료품을 말레이시아로부터 들여오고 있다. 싱가폴은 그동안 말레이시아로부터 식수용 물을 1톤에 2센트씩에 들여와 외국배들에게 50배 이상의 장사를 해왔다. 최근 새롭게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있는 말레이시아가 이를 수수방관할리 없다. 물값을 두고 두 나라는 요즘 티격태격하고 있고, 말레이시아는 싱가폴 부근 조흐르바흐와 말레카항의 부두시설과 하역시설을 대폭 증강하고 있다. 당연히 외국배들은 하역비용과 각종 보급품 값이 싼 말레이시아의 항구들을 찾고 있다.

우리 상황과 너무 닮은 꼴
싱가폴이 겪는 어려움의 반대급부는 이웃 나라인 말레이지아가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정치경제적인 안정을 바탕으로 말레이시아는 지난 5년간 연평균 50억달러의 외자를 제조업분야에서만 유치했다. 최근에는 주요 다국적 기업들이 동남아지역본부를 싱가폴이나 홍콩에서 속속 말레이시아로 옮기고 있다.
교육수준이 높은 우리의 인력과 태평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동북아 요충지라는 점. 그리고 자원이 많지 않은 것과 고임금, 고물가. 우리나라와 싱가폴이 닮아 있지 않은가?
우리가 낫다면, 그나마 농산물과 생필품의 생산기반이 충실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의 무역협상은 농산물의 생산근거를 송두리째 뒤흔들 판이고, 고임금과 고물가 때문에 기업하기 힘들다며 기업가들은 아우성이다. 그리고 이 두 문제는 서로 맞물려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교육수준이 높은 인력은 오히려 그것이 걸림돌이 돼 더 이상 3D업종은 외면한 채 실업의 굴레 속을 몇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정학적 요충이라는 잇점 역시 물가 싼 중국이 하루가 다르게 상하이항 등을 확충하고 있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싱가폴은 여전히 정부와 국민이 하나 돼 ‘주식회사’유지에 열성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리고 있는데 우리의 현재 모습은 어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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