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넘김 개운찮은 ‘진실게임’
T2N 탓이었다. T2N은 맥주향을 내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인체엔 무해하다. T2N의 냄새는 인체에서도 난다. 흔히 할아버지 냄새라고 하는 체취가 T2N 향이다. T2N은 소량일 때는 향긋한 맥주향을 낸다. 100ppt 이상으로 증가하면 민감한 사람은 이상한 냄새라고 느낄 수 있다.

일부 소비자들이 오비맥주의 카스에서 이취가 난다고 느꼈던 건 여름 날씨에 맥주가 산화반응을 일으켜서 T2N이 100ppt 이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지난달 26일이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카스의 이취에 관한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시중 유통 제품에선 대부분 T2N이 100ppt 이하로 검출됐다. 소비자 신고 제품에선 T2N이 134ppt로 나타났다.

일부 소비자들이 소독약 냄새가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던 이취는 과다한 T2N 향취였다. 맥주향이 너무 강해서 소독약 냄새처럼 느껴졌던 셈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오비맥주 3개 공장도 현장 조사했다. 제조 과정에서 소독약이 살포되는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오비맥주 제조 과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확인했다. T2N 탓이었다. 이게, 사실이다.

사실보다, 사실이 아닌데도 사실처럼 퍼져나가 버린 루머가 더 문제였다. 카스에서 이취가 난다는 소비자 신고가 접수되기 시작한 건 지난달 초 부터였다. 그 무렵 누군가 SNS를 통해 이런 얘기를 흘렸다. “업계 불문율이 있어서 자세하게 공개를 못하지만 2014년 6월부터 8월까지 생산된 카스 제품은 진짜 마시면 안됩니다.” 카스에 심각한 유해물질이라도 들어있다는 식이었다.

맥주 사업은 여름 한철 장사나 다름없다. 여름철에 맥주 소비량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2014년 6월부터 8월까지 생산된 카스를 마시지 말라는 건 망하란 얘기와 똑같다. 원래 식품료 시장은 루머에 취약하다. 사람 몸에 들어가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한번 루머가 퍼지면 사실무근이라고 해도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라면 업계 부동의 1위였던 삼양라면이 농심한테 선두 자리를 내줬던 것도 공업용 우지 파동 탓이었다. 사실 공업용이라고 해도 인체에는 무해했다. 문제는 공업용이라는 꼬리표였다. 공장 기름으로 만든 라면을 팔았냐는 비난 여론을 삼양라면도 견뎌내지 못했다.

오비맥주도 루머로 치명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1991년이었다. 낙동강 페놀 사태가 일어났다. 두산전자 구미 공장이 페놀을 낙동강에 무단 방류했다. 대구와 부산의 상수원이 오렴돼 버렸다. 수돗물에선 악취가 났다. 두산그룹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두산 제품 불매 운동으로 확산됐다. 당시 두산그룹의 계열사였던 오비맥주가 직격탄을 맞았다.

그때 오비맥주의 사명은 동양맥주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양맥주는 맥주 시장 부동의 1위였다. 2위는 지금의 하이트인 조선맥주였다. 당시 조선맥주는 하이트 맥주를 팔면서 이렇게 광고했다. “맥주를 끓여드시겠습니까?” 하이트 측도 페놀과 동양맥주가 무관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유관하다고 느끼는 소비자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했다. 소비자들은 동양맥주의 해명을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동양맥주는 1996년 조선맥주한테 정상 자리를 내줬다.

지금도 오비맥주엔 그때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오비맥주 대리점주들은 더하다. 대부분 수십년 동안 맥주 유통을 해온 사장님들이기 때문이다. 오비맥주가 카스 이취 소문이 퍼졌을 때 경찰 수사까지 의뢰한 이유다. 오비맥주는 “특정 세력이 불순한 의도를 갖고 카스에 대한 악의적인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오비맥주가 무리하게 강경 대응하는 걸로 보였다. 연예인이 악성 댓글을 단 네티즌을 고소하는 수준 같았다.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오비맥주에 대한 인터넷 악성 게시글의 IP를 추적했다. 오비맥주의 경쟁사인 하이트진로의 직원이 개입한 정황이 포착됐다. 결국 지난 3일 경찰은 서초동 하이트진로 본사에 지역 대리점을 압수수색 했다. 하이트진로는 “관리직 직원 한 사람이 SNS에 올린 일부 과장된 내용이 담긴 사적인 글”이라는 입장이다. 사실 오비맥주는 하이트진로를 겨냥해서 경찰 수사를 의뢰한 게 아니었다. 우연히 하이트진로 직원의 IP가 발견되면서 분위기가 살벌해지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맥주 냄새가 문제가 아니다. 라이벌 기업간의 악취가 문제다.

2012년 여름 오비맥주가 절치부심 끝에 하이트를 추월할 수 있었던 건 밀어내기를 없앴기 때문이었다. 맥주를 대리점 창고에 쌓아놓았다 밀어내듯 유통시키면 맥주 맛이 없어진다. 맥주는 공장에서 막 출시됐을 때 가장 맛있다. 유통을 개선하자 맥주 맛이 살아났다. 오비맥주는 지난 1월 AB인베브한테 4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에 매각됐다. 성공한 딜이다. 원동력은 유통 혁신이었다. 그래서 일부 제품이긴 하지만 유통 과정에서 냄새가 생겼다는 건 오비맥주한텐 뼈저린 구석이 있다.

하이트는 경찰 압수수색은 회사가 아니라 개인에 대한 조사라고 밝혔다. 어쨌든 먹거리를 생산유통하는 대형 회사의 직원이 스스로 악성 루머를 퍼뜨려서 소비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건 사실이다. 그 행위가 라이벌 기업은 물론이고 업계와 사회를 대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가담했다. 수치다.
사실 요즘 맥주 소비자들의 관심사는 오비와 하이트가 아니다. 중장년층 사이에선 롯데의 클라우드다. 청년층에선 집집마다 맛이 다른 수제 맥주다. 맥주 시장은 21세기로 진화하고 있다. 양대 맥주 회사만 아직도 1991년에 머물러 있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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