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희건 회장

남북합작 패션 ‘민족브랜드’…“명품지향해 만리장성 공략”
[중소기업뉴스= 이권진 기자] 전화를 받은 이희건 나인 JIT 회장은 초조해졌다. 탈북자 단체가 대북 전단(삐라) 살포를 강행한다고 떠들썩하던 지난달 중순이었다. 개성공단에서 파주 오두산 남북출입사무소로 입경하기로 한 직원이 다급하게 전했다. “30분 가까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입경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인 오후 2시30분을 훌쩍 넘어선 때였다.

지난달 22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사무실에서 직접 만난 이희건 회장은 말한다.
“그 순간에 악몽처럼 작년 일이 떠올랐어요. 개성공단 중단 사태 말이죠. 전화를 받고 노심초사했습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입경이 진행돼 가슴을 쓸어내렸죠.”
개성공단 입주기업협회 부회장이기도 한 이희건 회장은 공단에서 속옷 봉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업체인 나인JIT를 이끌고 있다.

사실 개성공단에 입주한 125개 중소기업들은 지난해 4월 사상 초유의 공단 폐쇄 사태를 겪으면서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5개월 넘게 공장이 멈춰 손실만 수천억원에 달했으며, 현재까지도 거래처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정치적 정세 변화가 생길 때마다 개성공단 가동 여부가 출렁거린다. 직원 전화 한통에 이희건 회장이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희건 회장은 말한다. “입주기업의 90% 가까이가 OEM 업체입니다. 남북 관계가 악화되기라도 하면 원청 업체가 주문을 줄일 수밖에 없어 입주기업의 생산량이 뚝 떨어집니다. 그땐 정말 살길이 막막하죠.”
올해가 개성공단 가동 10년째인데도 정치적 리스크를 탈탈 털어내기엔 역부족이다. 풀어야 할 숙제는 또 있다. 개성공단의 국제화도 제자리걸음이긴 마찬가지다.

해외 기업 수십 곳이 꾸준히 개성공단에 방문하지만 실제 투자로 이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군사분계선에서 약 10㎞ 떨어진 개성공단은 내수와 수출 어디든 전시 상황이고 최전선이다.

민족브랜드의 탄생
하지만 최근 정부와 재계에선 개성공단의 혁신에 주목하고 있다. 바로 이희건 회장이 추진위원장으로 공을 들이는 개성공단 공동브랜드 ‘시스브로’다.
시스브로는 지난 4월 개성공단 입주기업 7곳이 합작해 론칭한 공동 패션브랜드다. 남녀 속옷, 드레스셔츠, 남성 자켓, 청바지, 양말, 레저용 신발, 골프 웨어 등 아이템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총 14개 업체가 참여하면서 몸집도 커지고 있다.

이희건 회장은 설명한다. “공단에 입주한 기업의 70% 이상이 의류 관련 업체입니다. 대부분 제조·생산 능력에선 국가대표를 자처하는 곳들이죠. 다만 OEM업체라는 한계 때문에 자체 브랜드가 없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명품 브랜드로 키울 계획입니다.” 이 회장은 덧붙인다. “시스브로의 제품은 가격, 소재, 디자인 면에서 백화점의 고가브랜드 부럽지 않습니다.”

시스브로는 단순한 패션브랜드에 멈추지 않는다. 브랜드 이상의 가치를 이야기 한다. 지난 8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면서 새삼 화제가 된 옷이 있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형형색색의 반팔티를 입었는데 그 제품을 모두 시스브로에서 제공한 것이었다.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북한 응원단 단체복으로 만날 수 있었지만, 미녀 응원단의 불참으로 아쉽게 무산되기도 했다. 시스브로라는 이름은 ‘시스터(sister)’와 ‘브라더(brother)’의 합성어다. 바로 형제·자매인 남남북녀를 내포한 ‘민족브랜드’란 뜻이다.

냉혹한 시장과 한판 승부
아무리 시스브로가 남북한의 민족브랜드를 표방한다고 해도 단일 패션브랜드로 시장에 우뚝 서는 일은 만만치 않다.
국내 패션시장은 여러 글로벌 명품과 유니클로, 자라 같은 글로벌 SPA 그리고 대기업 패션브랜드가 주름을 잡고 있다. 거기에 값싼 동대문표 의류가 난립 중이다. 좌우, 상하를 뒤져도 파고들만한 틈새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이희건 회장은 자신한다. “시스브로의 슬로건이 있습니다. 바로 ‘좋은 품질을 착한 가격에 팔겠다’는 겁니다. 개성공단이기에 가능한 목표입니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 있는 어느 공장보다 개성공단은 생산성, 인건비, 이직률, 불량률 등 모든 면에서 우월하죠. 유럽의 명품 장인 부럽지 않아요. 시스브로는 제품이 아니라 명품에 가깝다고 자부합니다.”     

시스브로의 관계자들은 국내 공동브랜드의 실패사례를 열심히 공부한다. 역설이다. 공동브랜드는 여러 기업이 참여하기 때문에 이해관계로 인해 쉽게 망하기 쉬운 협업이기 때문이다. 해외까지 나가지 않아도 국내에 이런 실패사례는 널렸다.
이희건 회장은 말한다. “아무래도 저희 업체들은 브랜드 마케팅에 약하죠.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전문가들과 함께 손을 잡고 브랜드 파워를 길러내고 있습니다.”

시스브로는 경기도섬유산업연합회 등과 손잡고 좋은 소재를 발굴하는 한편 최근에는 패션디자이너 이상봉 씨와 협력해 시스브로만의 독특한 제품을 개발하려고 노력 중이다. 브랜드로서의 체력을 키우는 일말고도 이미 시스브로는 내수는 물론 해외시장 진출까지 판로개척에 공력을 기울인다.
이희건 회장은 “곧 국내 대형마트 진출과 함께 중국 상해에 시스브로 테스트 마켓을 열 것”이라며 “특히 한류 상품으로 중국인의 마음을 뺏을  아이템을 준비 중”이라고 말한다.

홈앤쇼핑 전파탄다
시스브로를 지원사격하는 숨은  조력자들도 많다. 우선 중소기업 전문 홈쇼핑 채널인 홈앤쇼핑을 통해 시스브로 브랜드 의류가 10월초부터 전파를 탄다.
서울시에서는 시장 집무실에 시스브로 제품 몇 점을 전시하고 브랜드 스토리를 내거는 파격적인 홍보지원도 마다하지  않는다.
인천시에서도 아시안게임을 찾은 관광객들과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시스브로 제품을 판매·전시 중이다.

이희건 회장은 “공동브랜드는 관리가 생명이라고 생각해 공동법인 ‘케이즈원(Korea Is One)’을 설립하고 품질, 유통, 이미지 마케팅 등을 주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어쩌면 시스브로는 누가 특별히 발명한 브랜드가 아니다. 개성공단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면서 빠르게 진화를 거치고 있다.

시스브로에는 5만명에 달하는 북한 노동자의 땀과 우리 중소기업인들의 도전이 한데 담겼다. 난세에 태어난 영웅의 이야기처럼 역경 속에서 론칭한 시스브로의 미래가 더 궁금한 까닭이다.
 
사진 : 오명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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