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이유는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기 위해서 입니다.”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한 이장환 박사(이경영)가 휠체어에 앉은 아이들을 배경으로 자신 있게 인터뷰 하는 모습이 언론사 카메라 플래시에 파묻힌다. 

이장환 박사의 연구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PD추적’의 윤민철 PD(박해일)는  이장환 박사와 함께 줄기세포 연구를 했다는 심민호 팀장(유연석)의 전화를 받게 된다. “전 아무런 증거도 없습니다. 그래도 제 말을 믿어주시겠습니까?”라며 어렵게 말을 꺼낸 심민호는 이장환 박사의 논문은 조작됐으며, 처음부터 복제된 줄기 세포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놀라운 증언을 한다.

심민호의 증언을 믿고 차근차근 사건 핵심으로 다가가는 윤민철 PD. 그러나 국민의 스타가 된 이장환 박사를 의심하는 것은 국익에 반하는 것이라는 간부진, 동료 PD들의 취재 내용 불신, 결정적으로는 촛불 시위에 나선 국민 여론에 부딪혀 윤민철의 취재는 방송 불가에 처해진다.

임순례 감독의 <제보자>는 2005년 하반기,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건에 기초했지만, 인물과 사건은 실제와 다르다는 취지의 사전 고지로 시작된다.

<도가니> <변호인> <남영동 1985> <부러진 화살> 등이 그러했듯, 우리는 왜 사건의 본질과 진실을 상업 영화로서 히트해야만 되짚어보게 되는가, 하는 점이 그 첫째다.

SF영화로 상상한 것들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당대에 떳떳하게 밝히지 못한, 해결할 의지가 없던 사건들을 영화라는 픽션 판타지로 대신하는 SF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실화 바탕 고발 영화를 볼 때마다 드는 혼란이다.

스타 박사를 만들고 맹신케 한 국가 권력, 언론, 특히 여론을 질타하는 대사들이 가슴에 와 박힌다.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 국민들이 벌써 믿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라는 언론사 간부의 말이 대표적이다. 줄기세포 연구실 홍보팀이 내놓은 자료와 로비에 휘둘려 의학 윤리나 연구 성과를 점검하지 못한 공정성 잃은 언론, 파헤쳐질 진실이 두려워 은폐하려한 국가 권력, 눈앞에 보이는 것만 믿으며 진실을 쫓는 자들을 마녀사냥하는 데 부화뇌동하는 대중.

<제보자>는 이 삼자가 잘잘못의 경중을 따지기 어려울 만큼 한 통속으로 휘둘렸던 와중에 공적 사적 불이익을 감수한 제보자와 언론 정신을 잃지 않은 PD의 집념이 있어, 진실 밝히기가 가능했다는 영웅론으로 흐르지도 않는다.

오히려 동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언론사 사장의 현장 변덕 에피소드로 언론의 성과주의, 선정성을 비웃는다.
언론사 사장은 국가 권력에 개인 비리가 잡혀, 이장환 박사 의심 방송 불가 협박을 받고 있던 처지. 그러나 퇴근길을 가로막고 언론 윤리를 외치는 윤민섭의 돌출 행동을 접하고, 그 자리에서 방송을 허락한다.

논리나 감동이 결여된 즉흥 뒤집기로 인해, 언론사 사장에게 언론인으로서 양심의 일말이 남아있다든가, 국가 권력으로부터 취재 자율권을 지킨 자랑스러운 사장이라는 느낌은 완전히 배제된다.

언론사 사장이 그리 단순했다면 애초부터 왜곡 보도는 있을 수 없었겠지, 라는 헛웃음을 자아낼 뿐이다. 이 에피소드에 <제보자>가 말하고 싶었던 언론관이 함축돼 있다고 본다. 

-글 : 옥선희 대중문화칼럼니스트(eastok7.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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