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을암으로 가는 길

요새 울산은 암각화가 뜨는 여행 아이템이 됐다. 울산시에는 내로라하는 암각화 단지가 있다. 천전리 각석, 반구대 암각화는 이제 울산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승지다. 이곳과 연계할 여행지는 치술령 고갯길 밑에 있는 치산서원이다. 서원에는 신라시대의 충신 박제상과 그 부인들의 이야기가 서리서리 배어있다.

생생한 역사를 각인…‘반구대 암각화’
여행의 시작은 언양읍이다. 폐교되지 않은 채, 100년의 역사를 지닌 이곳 언양초등학교 교정 안에는 오영수 문학비와 그의 대표작품을 새긴 비가 있다.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 태생인 오영수(1914년~1979년) 작가는 이 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에서 교사가 됐고 나중에는 작가로 등단해 30여년간 창작활동에 전념했다.

1977년, 울주군 웅천면 곡천리로 낙향했다가 71세에 언양읍 송대리 화장산 기슭에 ‘오영수 여기 잠들다’라는 묘비명과 함께 묻혔다. 작가는 살아 생전 총 150여편의 전형적인 단편소설만을 발표했다. 그중 갯마을(1956)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두번이나 영화화됐기 때문이리라.

1965년 고은아 주연으로 영화화했고 1978년에는 장미희가 주연을 맡았다. 갯마을 영화 촬영지로는 일광해수욕장(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이 있다. 오영수는 1940년대 일광면사무소에 근무했었던 적이 있는데 그 바닷가에도 오영수 문학비가 있다. 언양초등학교 앞에는 최근 복원된 언양읍성의 남문인 ‘영화루’가 있다.

언양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 우선 울산암각화박물관을 찾아 설명을 듣는 것이 도움이 된다. 박물관에서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까지 멀지 않다. 가는 길목에는 눈길을 끄는 반고서원이 있다.

이 서원은 숙종 38년(1712)에 정몽주, 이언적, 정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역 유림들이 세운 것으로 멋진 기암이 펼쳐지는 대곡천을 바라보고 있다. 이어 오솔길 따라 반구대 암각화까지 걸어가게 되는데 공룡발자국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암각화까지는 접근이 어렵고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족해야 한다. 강 하구에 저수지가 생기면서 절벽 면이 물에 잠겨 있는 상태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육지동물과 바다고기, 사냥하는 장면 등 대략 200여점의 벽화가 새겨져 있다.

반면 천천리 각석은 가깝게 볼 수 있다. 선사시대 암각화와 신라시대 돛을 단 배, 말과 용 등의 세선화(細線化)와 명문 등 여러 시대에 걸친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멋진 계류가 흘러내리고 기암이 박혀 있는 주변 풍치가 멋지다.

신라인 가슴에 새겨진 박제상의 충정
천천리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신라 눌지왕(재위 417∼458)때의 충신 박제상(363~419)을 기리는 치산서원(울산광역시기념물 제1호,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산30-2)이 있다. 치산서원에는 박제상과 부인 김씨, 그리고 두 딸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박제상은 신라의 5대 왕인 파사왕의 5세손으로 파진찬 물품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신라는 고구려, 백제와는 달리 힘이 미약했다.

신라는 백제를 견제할 목적으로 내물왕은 셋째아들 ‘미사흔’을 일본에 보냈고(402년), 둘째 아들 ‘복호’는 고구려(412년)에 보내 군사원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왜와 고구려는 두 왕자를 인질로 잡고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내물왕의 큰아들인 눌지왕은 볼모로 가 있는 두 동생을 구출하기 위해 박제상을 선택한다.

418년 박제상은 뛰어난 말솜씨로 장수왕을 설득해 왕자 복호를 구해 무사히 돌아왔다. 고국에 돌아오자마자 미사흔을 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게 된다. 일본에서 왕자를 구출해 귀국시켰으나, 일이 탄로나 자신은 붙잡히고 말았다. 왜왕은 자신의 신하가 되면 많은 상을 주겠다고 회유했지만 박제상은 끝내 자신이 신라 신하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계림(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될 수 없고, 계림의 형벌을 받을지언정 왜국의 벼슬과 상은 받지 않겠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심한 고문을 가해도 소용이 없자 박제상을 불에 태워 죽였다.

한편 부인 김씨는 세 딸과 아들 문량을 데리고 매일같이 치술령에 올라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이 참형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부인도 뒤따라 죽으려 하자 딸과 아들도 모두 함께 죽겠다고 한다. 부인은 둘째딸 아영에게 동생 문량을 보살펴 대를 잇도록 하고 두 딸과 함께 죽는다. 그때 부인의 몸은 돌로 변해 망부석(울주군 두동면 월평리 산 156)이 됐고, 영혼은 새가 돼 날아갔다고 한다.

이 새가 날아오른 자리를 비조(飛鳥)라 해 마을 이름이 됐고 새가 숨은 바위는 은을암(隱乙庵)이라 했다. 그 자리에 은을암(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호, 울주군 범서면 척과리)이라는 암자가 있다. 바위에 아스라이 걸린 듯한 은을암은 창건연대 및 중창, 중수의 역사는 미상이다. 그저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고찰이란 것과 창건설화만 전해 내려온다. 대웅전 벽화에는 김씨 부인의 기도하는 모습과 새 그림이 새겨져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여행정보
○찾아가는 길
서울 → 중부고속 → 호법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46.4km) → 여주 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150.3km) → 김천 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145.7km) → 서울산IC로 들어가면 언양읍이 나온다. 언양읍을 기점으로 여행을 즐기면 된다.
○별미집
언양은 ‘언양 불고기’가 유명하다. 언양불고기가 유명해진 것은 1960년대부터다. 일제 강점기부터 이곳에는 도축장과 푸줏간이 있었는데, 이후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모여들었던 근로자들에 의해 소문나기 시작했다. 고깃집들이 장사가 잘되니 하나둘 생기면서 현재는 타운을 이루고 있다.
언양불고기는 쇠고기를 얇게 썬 후 양념해 석쇠에 구워 먹는 게 특징이다.언양기와집불고기(052-262-4884, 울주군 언양읍 서부리 11-1)는 전통한옥에서 깔끔하고 푸짐한 밑반찬, 거기에 친절한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다. 그외  언양전통불고기(052-262-0940), 언양 진미불고기(052-262-4422)도 괜찮다.
○숙박정보
언양읍에는 미다스모텔(052-254-4402, 언양읍 동부리 143-4)이 괜찮다. 그 외 신불산 자연휴양림(055-383-6493)을 이용하거나 석남사 주변에 모텔이 많고, 그 외 등억온천 단지에 있는 50여개의 모텔촌이 형성돼 있다. 울산시내에서는 남구 삼산동이나 무거동 쪽에 모텔촌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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