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금융의 기원은 시장경제의 출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 이후, 수천년간 해상 이동을 책임지던 범선을 증기선이 대체하고, 국부의 축적에 기업의 생산성이 중요해지는 변화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기술은 토지, 노동, 자본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면서 경제발전 함수의 상수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축적된 자본은 다시 기술 혁신의 밑거름이 됐다. 자본을 형성하는 금융과 혁신적 기술은 자연스럽게 공생하게 됐다.
우리나라도 기술금융은 생소하지 않다. 불과 50년의 짧은 산업화 역사 속에서 기술의 역할은 컸다. 우리나라 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가 OECD 1위라는 사실은 단적인 지표이다.
문제는 R&D 성과의 낮은 사업화 성공률이다.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뿌리인 기술만 보고도 가지와 열매를 가늠하고 사업화 자금을 공급하는 기술금융이 필요해졌다. 이를 위해 정부와 R&D 관련 기관, 금융기관 등이 표준 기술평가모형을 수립하는 등 초기의 노력이 있었다.
본격화는 2005년 이후이다. 기술보증기금이 생존을 위해 기술평가에 집중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당시 P-CBO 부실과 보증기관 통폐합 논의 가운데 조직의 명운을 건 절박함이 있었다. 정부와 시장도 기술금융의 중요성은 인정했지만, 활성화 가능성은 반신반의했다.
금융-혁신기술은 공생관계
역설적으로 이러한 메마른 환경에서 비롯된 위기감이 조직문화와 체질을 혁신하는 동력이 됐다. 서류절차나 보증료 우대에 그치던 과거 접근과 달랐다. 기술평가 결과를 자금지원과 연계한다는 기술금융의 개념이 정립되고, 이를 위해 통계 기반의 기술평가시스템이 마련됐다. 기술금융의 실체가 생겨난 것이다. 이후 9년간의 검증과 개선이 뒤따랐다.
아쉽게도 그동안 정부에게 기술금융은 중요하지만 시급하지 않은 과제였다. 이제는 금융당국의 기술금융 활성화에 대한 절박함과 결기가 느껴진다. 창조경제 패러다임 때문이다.
인센티브와 실적관리 등 당근과 채찍을 모두 동원한 전방위적인 활성화 대책만 봐도 알 수 있다. 은행도 외형적으로는 정부의 리더십에 부응하고 있다. 문제는 은행 내부의 장기적이고 질적인 변화이다.
금융권 질적 변화가 열쇠
건전성이 생명인 은행에 기술금융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우선, 경험과 노하우가 부족한 데다 초고령화, 인구감소 등 구조적 문제와 내수부진, 엔저 공포 등 다양한 악재가 겹쳐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시중은행 중소기업 담보대출 비중은 금융위기 때인 2009년보다 오히려 6% 증가했다. 담보부족으로 대출받지 못한 경우까지 고려하면 대출 접근성 악화는 더욱 심각하다.
게다가 트라우마도 있다. 과거 대규모 기업대출부실과 카드 부실사태의 학습효과이다. 그 결과, 정부가 기술평가서를 활용한 신용대출을 강조하면 은행은 시늉만 했다. 기술평가서가 이미 검증된 우량기업에 대한 대출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현장의 우려도 있었다.
보완책으로 마련된 기술정보 인프라가 도움은 되겠지만, 궁극적인 대안은 은행의 자체적인 조직과 시스템 구축을 통한 기술금융역량의 내부화이다. 금융권 관행상 외부의 기술평가결과로 담보부족과 자체 신용평가결과를 뒤집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은행이 근본적으로 전략과 조직문화를 혁신할지, 아니면 현재의 소나기만 피할지가 관전의 포인트다.
이제 은행은 두려움보다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기술금융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봐야 한다. 부동산 담보대출에 의존하는 은행은 자산시장 저성장으로 고전하고 있다. 대안은 고성장 기업 생태계를 통한 수익구조 다변화 전략이다. 기술혁신의 동력이 약해지면 금융의 동력도 장담할 수 없다는 공생의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 글 : 홍재근(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