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늘이 내려앉은 듯 ‘청아한 유혹’
우리나라의 높고 푸른 가을 하늘색을 고려청자에 비유할 만큼 우리 도자 기술은 빼어났으며, 귀한 기물로 아끼고 가까이 했다. 이제 여기에 조선의 청화백자도 포함시켜야할 것 같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다음달 16일까지 열리는 ‘조선청화, 푸른빛에 물들다’전 덕분이다. 고려청자가 가을 하늘 바탕을 이른 것이라면, 청화백자는 푸른 하늘을 눈부시게 장식하며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 구름과 같다고 해야 할까.

전시 이름에서부터 맑고 푸른 기상이 느껴지는 ‘조선청화, 푸른빛에 물들다’전은 도자기를 옛 시절의 유물로만 여겨온 이들의 마음까지 활짝 열어 줄 품격 넘치는 전시다. 용도와 감상에 맞춘 갖가지 형태의 단아한 백자 태토(胎土)에 용, 산수, 사군자와 귀한 화초와 새, 글자 문양에서 추상 무늬까지. 도자의 품격을 더해주는 그림이 새겨진 걸작을 무려 500여점이나 만날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호림박물관 등 14개 기관이 자랑하는 조선 청화백자 대표작을 모았고, 일제강점기 이후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의 청화백자 150여점도 포함됐다.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청화백자 전시로 국보, 보물이 10점 포함돼 있을 정도로 귀한 전시다. 

적은 양이나마 중국과 일본의 청화백자도 비교해 볼 수 있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이데미쓰미술관,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의 조선 청화백자 명품과 중국 명대의 청화백자들이 그것이다. 역시 중국 작품은 큰 기형에 빈틈없는 그림으로, 일본 청화백자는 화려한 문양으로 시선을 붙든다.

전시 방식도 칭찬할 만하다. 청화백자의 역사와 제작지를 일별할 수 있는 첫 방을 지나면 문양과 용도, 시대별로 방이 나뉘어져 비교와 감상의 깊이를 더할 수 있게 했다.

마지막 방에는 김환기, 이우환 등의 유화에서부터 현대 도공의 작품까지, 청화백자의 미의식이 현대 작가의 작품에 미친 영향을 확인 할 수 있다. 백자의 태토와 청색 안료의 원료가 되는 암석도 전시돼 있다. 청색 팬으로 도자 문양 종이에 그림을 그려 대형 화면에 비춰볼 수 있게 한 체험관에서는 이제까지 본 문양을 떠올리며 나만의  그림을 남길 수 있다.

공예이자 회화이고 그릇이자 미술품인 청화백자의 아름다움에 빠져, 전시장을 세차례나  오가며 눈시울을 적셨다. 가장 좋아하는 꽃, 매화가 그려진 도자기들 앞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그러나 전시장을 벗어나서까지 마음에 어른거리는 도자기는 일그러진 ‘구름 용무늬 항아리’(1975년 박병래 기증)였다.

어른도 들기 어려울 만큼 큰 항아리를 빚어, 구름 사이로 오르는 용을 그려 넣고, 상하단에까지 기하학 무늬로 정성을 다 했건만, 가마에서 꺼내고 보니 불룩해야할 중앙이 내려앉은 게 아닌가. 그때 도공의 심정은 어땠을까? 영화나 소설 속 명공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도자기, 찌그러진 도자기를 산산이 부수지만, ‘구름 용무늬 항아리’를 만든 도공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이름을 남기는데 연연하지 않고, 귀한 재료와 정성과 시간이 일거에 허물어진 아픔을 곁에 두고 보며, 다시 물레를 돌리고 불을 지피지 않았을까. 주저앉은 ‘구름 용무늬 항아리’는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밑바닥에 황색 태토가 드러난 도자기 등, 사방을 돌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벽하지 않은  도자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게 허물로 보이지 않는다. 이름을 남기지 못한 도공의 손길과 숨결이 거기 머문 듯해서 더 애틋하다. 

- 글 : 옥선희 대중문화칼럼니스트(eastok7.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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