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룩시장으로 잘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지역 예술가들의 톡톡 튀는 디자인 의류를 파는 곳으로 더 유명해진 영국 런던 브릭레인 마켓 모습.

매주 일요일이면 영국 런던 북동쪽 이스트엔드 지역에는 런던 최고의 벼룩시장이 열린다. 원래 이 동네는 빈민층과 유색 인종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범죄와 가난이 들끓던 곳이었다. 그런데 문을 닫은 양조장 트루먼 브루어리를 중심으로 1990년대부터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오늘날의 세련된 빈티지 마켓을 형성하게 됐다. 런던의 유행이 이곳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곳은 다른 시장과 달리 자기 물건을 들고 나온 진짜 아마추어가 모여 장사를 한다. 손님들을 손위에 놓고 쥐락펴락하는 노련한 장사꾼들이 아닌 장사를 처음 시작해보는 아마추어 상인들의 풋풋하고 순수한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들면서 브릭레인 마켓은 런더너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장이 되었다.

길거리 노점상에선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직접 자신이 만든 옷을 판매한다.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볼 겸, 자신의 작품도 팔 겸 이곳으로 몰려든다고 한다. 개중에는 전문적으로 물건을 파는 상인도 있지만 시장은 아마추어 상인과 젊은 예술가들이 만들어 내는 기운으로 자유롭게 에너지가 넘쳤다.

낡은 창고처럼 생긴 마켓 내부로 들어가 보니 다양한 가판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사를 하고 있었다.
저마다 종류는 달랐지만 자신의 개성을 살린 빈티지 물건을 판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중 남성 셔츠의 앞뒤를 바꾼 옷을 만드는 매장에 들어갔다. 버려진 옷이나 재고를 활용해 새로운 옷을 만들어 파는 매장이었다. 고객들이 각자 추억이 담긴 옷을 가져다주면 이것도 해체해 완전히 새로운 옷을 만들어 주는 ‘옷장 수술(wardrobe surgery)’ 서비스도 인기라고 한다.

실험적인 젊은 디자이너나 의욕 넘치는 풋내기 상인들까지, 진입장벽이 낮아 누구나 이곳에 와서 쉽게 장사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재미있고 독특하고 도저히 입고 다닐 수 없을 것 같은 요상한 물건들이 가득해, 쇼핑이라면 질색인 사람도 재미를 느끼게 하는 마성의 시장이 바로 브릭레인 마켓이다.

한국의 전통시장 활성화는 당장 눈에 보이는 무엇을 ‘세울’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무엇을 ‘채울’ 것인가가 더 중요한데 말이다. 브릭레인 마켓에선 현대적이고 번듯한 건물을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 내부는 독특하고 개성 강한 상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젊은이들이 열정과 창조적인 아이디어들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만 마련해도 하나의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번듯한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는 창조적 콘텐츠가 중요하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의 창조력을 규제하지 않는 것이다.

-글 : 이랑주 한국VMD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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