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림 속 나의 마을 ]

최근 마을 공동체 지원 사업들이 늘고 있다.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주민들이 기획한 축제나 강연 등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마을 공동체를 조명하거나 한 마을이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한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을 소개하는 책자가 나올 만큼 전국이 영화 촬영지이기는 하다.

그러나 지역 명을 영화 제목으로 삼을 만큼 한 지역이나 공간이 주요하게 부각되는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 ‘북촌 방향’ 등을 제외하고는 한 마을을 온전하게 소개하거나 주민이 참여한 영화는 우리 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극도로 착한 순수의 결정체와 같은 순정 드라마를 잘 만드는 일본 영화에선 마을 공동체형 영화를 쉽게 볼 수 있다.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아이들의 성장사를 그린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그림 속 나의 마을’이 대표적이다.

‘그림 속 나의 마을’은 일본의 쌍둥이 그림 작가이자 화가인 다지마 유키히코와 다지마 세이죠 중 동생인 세이죠가 쓴 자전적 에세이에 기초했다. 제목 그대로 수채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전원 마을을 배경으로 장난꾸러기 쌍둥이의 1년을 그리고 있다. 영화 도입부에 40대가 된 쌍둥이 작가의 실제 모습과 그들의 그림을 보여주며, 형제의 뿌리이자 창작의 원천인 1948년 고치현에서 보낸 하루가와 초등학교 2학년 시절로 돌아간다.

히가시 요이치 감독의 1996년 작인 ‘그림 속 나의 마을’은 고치현으로부터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인구 4000명의 산골 마을인 고호쿠에서 촬영했다. 주인공인 세이죠와 유키히코 역을 맡은 마츠야마 쇼고와 다지마 세이죠는 현지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고치현의 초등학교 2학년생 일란성 쌍둥이다. 이들 외에도 마을 주민 100여명이 주민으로 출연했는데, 특히 마을 수호신 역할을 한 신비로운 노파 3명은 따로 분장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림 속 나의 마을’ 참여를 계기로 고호쿠 마을 주민들은 ‘사진 문화의 마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이 영화를 마을 재산으로 남기기로 했다. 영화가 제46회 베를린영화제에서 2등상에 해당하는 은곰상 등을 받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아 고호쿠 마을을 찾는 관광객도 늘어나는 혜택을 누렸다. 

‘그림 속 나의 마을’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전원 풍경 영화나, 어려운 시절을 살아냈던 기성세대의 향수를 자아내는 영화로만 기능하지는 않는다. 문제아 교화학교에서 전학 온 센지를 차별하는 교사, 한겨울에도 맨발로 등교할 정도로 가난한 하쓰미를 놀리는 동급생들, 외지에서 온 쌍둥이 가족에게 텃세를 부리는 양할아버지와 주민들을 통해 차별과 편견 문제를 생각해보게 한다. 

쌍둥이가 그림을 즐길 수 있도록 말없이 격려하는 현명하고 아름다운 어머니(하라다 미에코)의 교육 방식은 요즘의 극성 어머니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쌍둥이를 잘 돌봐주는 착한 누이의 가슴을 훔쳐보며 성에 눈 뜨게된 쌍둥이에게 어머니는 함께 목욕하며 자신의 나체를 보게 한다. “여자에겐 고추가 없지만 아기를 낳는 소중한 주머니가 있단다. 누나도 그런 여자란다”라고 이르는 어머니. 히가시 요이치 감독은 원작에서 이 대목을 읽고 몹시 놀랐다며 “일본의 모든 어머니가 이렇게 현명한 교육을 한다면 성범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을 정도다.     

카타리나 고전음악단의 중세 고전 음악, 물고기가 말을 하거나 도깨비가 등장하는 아이 시점의 상상 표현, 극적 요소가 없는 에피소드 중심의 다큐멘터리 터치, 원거리 촬영과 느린 속도 등도 ‘그림 속 나의 마을’을 동경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 글 : 옥선희 대중문화칼럼니스트(eastok7.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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