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전반에 걸쳐 경제적 발목을 잡고 있는 문제들이 갈수록 더 가속화되고 있다. 국가경제의 위기를 예고하던 싸인(sign)은 완전히 적신호로 바뀌고 모두들 방향을 잃은 채 건널목에 서 있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우려의 목소리는 위험수위를 지나 하나, 둘 씩 이 땅을 서둘러 떠나게 하고 있다. 경제 중심이 모두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탈출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도 썩 좋았던 기업 환경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열매를 맺으리라 조금은 막연한 뚝심으로 견뎌왔던 중소기업. 대부분의 중소기업 대표자들은 이젠 마지막 희망마저도 잃어버렸다.
중소기업 이젠 버틸 힘 없어
국·내외의 복합적이고 불안정한 위기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랫동안 갈등을 겪으면서도 강행된 주5일근무제는 중소기업 중심의 제도라기보다는 노동인력 중심의 제도로 여러 가지 국내 경영환경에 영향을 줄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주5일근무제로 더 많은 고용창출이 약속돼 마치 중소기업 노사간에 새로운 장이 열릴 것 같은 장황한 핑크빛 청사진을 제시하지만 오랜 인력난으로 고질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게 작업시간 단축은 납기조차 맞추기 어려운 상황으로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업체의 경우는 그나마 나은 형편이다.
생산공장의 해외이전을 서둘러 순차적으로 공장을 이전시키고 제조의 힘을 옮기면서 나름대로의 대안을 가지고 움직이는 업체들은 또 다른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해외이전은 커녕 현상유지도 어려운 다수의 영세 기업들은 생명이 끝나는 날만 기다리는 시한부 환자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이런 중소기업의 현실에 주5일근무제는 얼마나 황당한 처방인가.
본격적인 시행 시기는 남겨뒀다고는 하지만 이미 경제의 흐름은 주5일근무에 잡혀 있고 지금껏 그래왔듯 중소기업의 대부분은 대기업 흐름에 좌우되고 있다.
대기업에서부터 주5일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중소기업이 시행해야하는 시기가 멀리 잡혀있다고 해도 그 파급효과는 중소기업 구석구석에 생생하게 전해질 것이다. 그나마 중소기업에서 일하던 많은 인력들이 작업조건이나 근무조건이 좋은 대기업으로 몰릴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에 따른 인건비 상승은 지금까지 중소기업이 감당하던 부담들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제조업 붕괴는 한국경제의 붕괴
또 난제중의 난제인 인력난 외에 노사관계나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국내에서 더 이상 설 땅이 없는 중소기업에게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오히려 중소기업의 등을 떠밀고 있는 실정이다.
재건의 마음으로 초심을 확인하고 다시 시작해야하는 현실에서 주5일 근무제가 어떤 활력을 낼 수 있는지 처음 의도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두려움마저 앞선다.
지금 우리나라는 또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또 하나의 재건 부흥을 가져올 강한 힘이 필요한 때다. 근로자와 국민 복지 차원의 선진국을 향한 진일보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국가발전의 기반이 되고 저력이 되는 국가 제조업이 이탈하는 우리의 경제는 사상누각의 결과로 다가올 것이다.
더 좋은 근로조건이나 작업환경을 만들고 싶은 것은 기업인 모두의 절실한 바람이다. 더욱이 가족처럼 일하는 소규모 기업에서 열악한 근로조건에 대한 안타까움과 근로자 처우에 대한 속 깊은 마음은 영세한 중소기업일수록 더욱 간절하다.
그러나 24시간 열심히 일해도 크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은 중소기업의 한계이고 어쩔 수 없이 붙잡아야 하는 최후의 보루인 것을 어쩌란 말인지. 기업환경이 나빠져 해외로 탈출한 중소기업 역시 오죽하면 그런 결단을 하겠는가. 노동단체의 요구에 밀려 중소기업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숙제를 안고 가야 한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줘진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태풍 ‘매미’로 물질적인 피해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상실감으로 하늘을 쳐다볼 수 없는 중소기업인과 절망의 끝에 서 있는 중소기업 현실에 새로운 희망이 절실하다. 수많은 역사의 수레가 말해주듯이 새날이 오기 전엔 칠흑 같은 어둠이 있었음을, 희망은 절망의 끝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허리띠를 졸라맸던 국가 재건의 뚝심을 다시 한 번 기대하며 모든 중소기업인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이소영(폴리프러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