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서재] 에디톨로지

‘에디톨로지’는 낯선 개념의 말이다. 문화심리학자이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인 김정운이 만들어낸 신조어로서 (edit+ology) 편집학이란 의미를 갖는다. 세상에는 통섭, 학제 간 연구, 크로스오버, 융합 등 에디톨로지와 유사한 개념들이 많다.

그런데 왜 통섭이나 융합이 아니고 에디톨로지인가? 통섭이나 융합은 너무 어깨에 힘이 들어간 개념이기 때문이란다.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가 그저 마주 보며 폼 잡고 앉아 있다고 통섭과 융합이 되는 게 아니다.

<에디톨로지>(21세기북스, 2014년 10월)는 우선 재미있다.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생각하며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꽤 두툼한 책인데 한나절이면 다 읽힌다.

저자는 이 책에서 거침없고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그는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 다른 편집이다!”라고 주장한다. 세상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구성되고,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이제 아는 것이 힘인 시대는 지났다. 가장 창조적인 인물로 손꼽히는 스티브 잡스의 탁월한 능력도 따지고 보면 ‘편집 능력’에서 나온 것이었다. 예컨대 마우스는 최초 발명자가 따로 있지만 마우스의 가능성을 알아차리고 진가를 발휘하게 만든 것은 스티브 잡스다.

창조적 인간은 남들이 그냥 지나치는 결정적 자극을 잡아채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 보통 사람들은 그저 바라보기는 하지만 그것을 새롭게 짜맞추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모든 창조적 행위는 유희이며 놀이다. 창조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것도 아니다. 창조란 기존에 있던 것을 구성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한 것의 결과물이다. 이 창조의 구체적 방법이 에디톨로지다.

저자는 에디톨로지를 ‘노트와 카드’의 비교를 통해 설명한다. 독일 유학 시절 그는 도서관에서 독일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독일 학생들은 모은 카드를 자신의 생각에 따라 다시 편집한다. 편집할 수 있기 때문에 카드를 쓰는 것이다. (…) 이때 정리는 그저 알파벳순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설정한 ‘내적 일관성’을 가지고 카드를 편집하는 것이다. 이렇게 편집된 카드가 바로 자신의 이론이 된다.”

과거 어느 때보다 편집자가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10년 가까이 최고의 시청률을 놓치지 않고 있는 MBC의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자. 저자는 <무한도전>의 인기 비결이 화려한 자막을 통해 시청자가 자막이 없을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정서적 경험을 체험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무한도전>이 그토록 오랫동안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자막의 힘에 있다. 자막은 PD의 영역이다. 물론 작가의 도움이 필요하긴 하지만, 영상의 편집과 맞물려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영역에 자막을 넣는 것은 전적으로 PD의 책임이다.

수십대의 카메라가 녹화한 화면을 오직 하나의 화면으로 편집해내야 하는 PD나 영화감독은 이 시대 최고의 편집자다. 뛰어난 에디톨로지적 능력을 발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제7의 멤버’로 불리는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만드는 자막은 이제까지 우리가 봐왔던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토록 인기가 있는 거다.” 

- 글 이채윤 / 삽화 이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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