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리턴 충격파 ‘호텔 꿈 백지화’로 리턴
조현아 부사장은 2007년부터 대한항공에서 기내서비스 부분을 책임져왔다. 오랜 동안 기내서비스 부문은 항공운송사업의 최전선으로 받아들여져왔다. 기내서비스 수준이 곧 항공사의 수준과 동일시됐기 때문이다. 특히 국적기들은 국가의 자존심을 건 경쟁을 벌였다. 국적기 기내서비스가 남기는 인상이 곧 해당 국가의 첫인상일 수 있어서였다. 조현아 부사장은 대한한공 최전선의 야전사령관이었던 셈이다.

조현아 부사장은 코넬대학교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대한항공을 거느린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장녀다. 불과 33세의 나이에 대한항공의 자존심인 기내서비스를 총책임질 수 있었던 두가지 이유다. 기내서비스는 분명 호텔서비스와 닮은 구석이 많다. 호텔경영의 요소를 접목시킬만 했다. 조현아 부사장은 대한항공 기내서비스를 포시즌스 호텔이나 파크하얏트 호텔급으로 격상시키려고 했다. 명문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재벌 3세다운 야심이었다. 조현아 부사장은 자신이 보고 누리고 배운 대로 대한항공을 변화시키고 싶어 했다.

정작 조현아 부사장이 몰랐던 게 한가지가 있었다. 항공업은 호텔업과 닮았을 뿐 호텔업과는 전혀 다른 비즈니스였다. 항공업이나 호텔업이나 객단가로 이윤을 내는 비즈니스인 건 똑같다. 항공업은 객석을 채워야 하고 호텔업은 객실을 채워야 한다. 공석과 공실은 치명적이다. 반면에 항공기는 움직이고 호텔은 안 움직인다. 항공기를 움직이게 하려면 어마어마한 유류비가 든다. 호텔은 안 움직인다. 기름 값이 안 든다. 대신 첫째도 입지, 둘째도 입지, 셋째도 입지인 사업이 된다.

유류비 때문에 항공업은 호텔업과는 전혀 다른 셈법을 따르게 된다. 소모되는 기름값 대비 운송 가능한 승객수가 항공사의 이윤에 직결된다. 아무리 기내서비스를 호텔식으로 해봐야 영업이익은 전적으로 유류비에 달렸다. 호텔업은 서비스 경쟁인 게 맞다. 항공업은 서비스업이 아니다. 서비스는 자존심일 수는 있어도 경쟁의 제1 요소일 수는 없다. 항공사의 경쟁은 돈 되는 노선에 적은 기름으로 많은 승객을 어떻게 수송하느냐에 달려있다.

몰랐던 건 또 있다. 서비스 품질을 혁신시키는 방법이다. 조현아 부사장은 직접 기내서비스를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스튜어디스였던 적도 없다. 기내서비스는 비빔밥을 줄 거냐, 라면을 줄거냐 같은 하드웨어와 얼마나 친절하고 깍듯하냐는 소프트웨어로 나뉜다. 비빔밥이냐, 양고기냐는 승객마다 식성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우위를 만들기가 어렵다. 결국 친절과 미소와 미모 같은 정성적 요소를 혁신해야 한다. 이건 쉽지 않다. 승무원들한테 웃으라고 강요할 순 있어도 진심으로 웃게 만들긴 어렵기 때문이다.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키려면 조직 문화부터 바꿔야 하는 이유다.

조현아 부사장은 기내서비스 품질을 향상시켜서 대한항공을 날아다니는 7성급 호텔로 탈바꿈시키려 했다. 사실 이건 2000년대 후반 이후 항공산업의 흐름에는 역행하는 목표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항공업계는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세계 경기가 침체되자 사우스웨스트나 잿블루나 에어아시아처럼 서비스가 적은 대신 운임이 싼 저가 항공사들이 득세했다. 대형 항공사들도 고유가 시대가 계속되자 이제까지 자존심 대결을 벌이느라 유지돼 온 고비용 저효율의 기내서비스를 대폭 줄였다.

그런데도 조현아 부사장과 대한항공은 ‘럭셔리 인 플라이트’ 구조를 고집스럽게 유지했다. 자연히 대한항공의 이익률이 높아질 수가 없었다. 2013년 대한항공의 순이익률은 마이너스 3.24%다. 2014년 3분기에도 순이익률은 마이너스 12.38%였다. 대한항공이 2014년 4분기에 그나마 선전한건 오직 유가 하락 덕분이었다. 기내서비스 품질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조현아 부사장은 기내서비스 품질을 조금이라도 높이려고 무리를 했다. 승무원들한테서 친절을 쥐어짰다. 당장은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 실제론 속병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대한항공 승무원들은 겉만 멀쩡하지 속으론 온갖 부조리한 조직 문화를 견뎌내야 했다. 밑바닥부터 서비스업을 경험해보지 못한 경영진의 전형적인 실책이었다. 그렇게 잘못된 목표와 잘못된 방법을 앞세운 끝에 결국 땅콩 회항이라는 사단이 났다. 초특급 호텔 서비스를 하늘에서 구현하려다 무리를 했다. 대한항공 기내서비스는 고비용 저효율의 대명사다. 

조현아 부사장의 진짜 목표는 호텔 사업이었다. 대한항공은 이미 그랜드 하얏트 인천, 제주와 서귀포 칼호텔, 하와이 와이키키 리조트 호텔을 소유하고 있다. 칼호텔 네트워크의 대표로서 조현아 부사장은 LA의 월셔 그랜드 호텔 리노베이션과 송현동 호텔 개발 사업에 집중해왔다. 월셔 그랜드 호텔 리노베이션은 12억달러나 투자된 대형 사업이다. 2900억원이나 들여서 부지를 인수한 경복궁 옆 송현동 호텔 개발 사업은 학교보건법에 가로막혀서 중단된 상태다.

조현아 부사장과 대한항공은 재벌 특혜 논란을 무릅쓰고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서 규제를 없애보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하늘의 호텔은 실패했지만 땅 위의 호텔은 성공시키려고 했다. 정작 땅콩 회항 사건이 불거지자 송현동 호텔 개발 사업도 백지화될 위기에 처했다. 가뜩이나 눈치 보이는 특혜인데 여론이 더 악화됐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호텔이 문제였다. 결국 땅콩과 호텔을 맞바꿔 버렸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 「사라진 실패」 의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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