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블록딜 무산으로 일단 멈춤… ‘2차 가속페달’시간문제
지난 12일이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글로비스의 블록딜(시간외 대량 매매)을 시도했다. 시티그룹을 통해 기관투자자들을 상대로 시간외 매매 의사를 타진했다. 현대글로비스의 정몽구 회장 지분 180만주와 정의선 부회장 지분 322만주가 매각 대상이었다.

현대글로비스의 지분 13.4%에 해당됐다. 대략 1조5000억원 규모였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전날 종가보다 최고 12%나 할인된 가격에 주식을 내놓았다. 그만큼 매각에 적극적이었단 얘기다.

결과적으로 블록딜은 무산됐다. 분명해진 사실이 하나 있었다. 2015년부터 현대자동차그룹이 정몽구 회장에서 정의선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속도를 낼 거란 점이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로 이뤄져 있다.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차그룹의 경영권을 승계 받기 위해선 현대모비스의 지분 확대가 꼭 필요하다. 정의선 부회장은 상대적으로 현대모비스의 지분이 전혀 없다. 반면에 현대글로비스의 지분은 31.88%나 갖고 있다.

이제까지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는 두가지였다. 현대글로비스의 지분을 매각해서 실탄을 마련한 다음 현대모비스 지분을 인수한다. 이번에 블록딜이 여기에 해당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면서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실탄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일석이조 효과가 있었다. 결국 무산됐다. 차선책은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합병이다. 현대글로비스 지분과 현대모비스 지분을 맞교환해서 정의선 부회장이 갖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여기엔 넘어야할 장애물이 꽤 있다. 일단 현대모비스가 현대글로비스에 비해 너무 잘 나간다. 현대모비스의 시가총액은 26조원 정도다. 현대글로비스는 10조원 정도다. 2.5배다. 이대로 합병을 한다면 현대모비스 주주들이 반대하고 나설 수밖에 없다. 아무리 현대차그룹이라고 해도 시장을 이길 순 없다. 삼성조차 주주들의 반대를 넘지 못하고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을 포기했다.

그렇다면 현대글로비스의 주식 가치를 끌어올리는 방법도 있다. 결국 현대차와 기아차가 지금보다 더 많이 팔아서 더 많은 물동량을 현대글로비스에 몰아주는 수 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연산 800만대 시대를 겨냥하고 있다. 도요타와 폭스바겐이 각각 1000만대다. 이 정도만으로도 최대치다. 당장 생산량을 폭증시키긴 무리다. 게다가 공정위의 규제까지 걸려 있어서 무작정 일감 몰아주기로 현대글로비스 매출만 올려주기도 어렵다.

어렵더라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몽구 회장에서 정의선 부회장으로의 3세 경영권 승계는 더이상 미루기 어려운 현안이 됐다. 시장에선 현대차그룹이 다시 한번 현대글로비스 블록딜을 시도할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현대글로비스의 가치를 높이는 작업은 단시일 내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의선 부회장 입장에서도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현금화해서 현대모비스 지분을 인수하는게 가장 깔끔한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다.

사실 2000년대 초반 정의선 부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갔던 길을 따라 걸어야 하는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 당시 삼성그룹은 1994년부터 이건희 회장에서 외아들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었다. 방법이 문제였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 앞으로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의 CB나 BW를 대거 발행해줬다.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다. 기업에 대한 감시가 지금보단 소홀했던 당시엔 획기적인 승계 방안처럼 인식됐다. 현대차그룹에서도 정의선 부회장이 결심하면 됐다. 결국 정의선 부회장은 거부했다. “그렇게 쉬운 길을 가면 나중에 기업을 이끌어가는 위치에 올랐을 때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는 게 이유였다.

현대차그룹 안에선 의견이 분분했다. 후계자가 야심이 없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정작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 현장 경험을 쌓아야하는 30대를 편법 증여를 둘러싼 법적 다툼으로 흘려보내야 했다.

사실상 삼성의 예비 경영권을 확보한 이재용 부회장은 사실상 무언가를 더 성취하는게 불가능했다. 정의선 부회장은 달랐다. 경영권 승계 작업은 뒤로 미룬 대신 최전선에서 경영 실적을 쌓았다. 마흔살이 되던 해인 2009년 정의선 부회장은 기아자동차 대표에서 현대자동차 부회장으로 영전했다. 대부분 정의선 부회장의 승진에 토를 달지 않았다.

재벌 3세가 경영권을 승계하는 길은 두가지다. 지분 확보와 자격 취득이다. 물론  지분을 한주라도 더 가진 사람이 기업의 주인이다. 대신 자격을 얻을 때까진 지분이 있어도 끊임없이 자격 시비에 시달리게 된다.

실제로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목전에 둔 지금까지도 자격 논란에 휩싸여 있다. 반면에 정의선 부회장은 위험을 감수하고 경영 능력을 입증해온 덕분에 현대차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할 명분을 얻는데 성공했다.

현실적 관문이 아직 남아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미 삼성을 가졌지만 정의선 부회장은 아직 현대차를 가질 자격만 가졌다. 현대글로비스 블록딜 무산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14년은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재편으로 숨가쁜 한 해였다. 이래저래 2015년은 현대차그룹이 속도를 내는 해가 될 수밖에 없다. 시작됐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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