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사회·경제시스템에 효과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개인과 기업, 국가 등의 경제주체들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능력을 배양하고 조직을 재정비하며 성공적인 생존의 열쇠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급류 속에서 협동조합의 전통적 정신인 비영리, 상호부조는 퇴색한 사회운동의 공상적 개념처럼 느껴질 정도다. 협동조합의 선구자들로부터 지금까지 계승되어 모든 협동조합인들의 윤리적 신념으로 자리잡은 정직, 공개주의, 사회적 책임 및 타인에 대한 배려는 경쟁에서의 승리와 이익추구를 위해 돌진하는 현대 경제조직에서는 버려야 할 덕목처럼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협동조합 전문화 이익단체 변질우려
그러나 이 같은 협동조합정신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자리잡은 현재에도 여전히 건재하며 오히려 협동조합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1844년 영국의 로치데일에서 조직화된 협동조합운동은 시작된지 150여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 기계대신 지식과 정보라는 요소가 새롭게 자본을 축적하고 있다.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된 많은 새로운 경제적 약자들이 출현하고 있으며 자본의 이동속도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빨라졌다.
여전히 경제적으로 약소한 위치에 있는 계층의 사람들은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단합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조직이나 단체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협동조합 또한 다른 모든 경제주체들처럼 새로운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와 이에 따른 시대적 요구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협동조합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신념을 유지하면서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조직을 갖추기 위해 구조적 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것을 많은 협동조합 구성원들이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 협동조합의 근간을 이루는 역사적 전통과 기본적인 가치관, 그리고 윤리적 신념들을 배제한 채 조합의 전문성만이 협동조합이 추구해야할 시대적 흐름으로 오인하고 업종별 전문협동조합의 분할·설립을 주장하며 기존 조합의 분할을 총회의 의결 없이 가능하게 하자는 극단적인 목소리까지 내고 있다.
협동조합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총회’는 조합원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결정하기 위한 기구이며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직 특성의 산물이다. 기존 조합의 일부 업종이나 이해관계인들의 필요에 의해 조합의 분할이 요구된다면 그 결정 역시 모든 조합원들의 민주적이고 공평한 의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공동이익 실현위한 연대 모색을
만약 총회의결 없이 일부 이해관계인에 의해 무분별하게 조합을 분할할 수 있게 될 경우 협동조합 전체 조직체계의 와해는 물론 분할조합이 승계 해야 할 권리와 의무의 범위가 불분명하게 되어 커다란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또한 조합의 분할에 반대하는 조합원에게는 기존 조합에서 강제 법정탈퇴되는 결과가 초래되어 자유로운 가입과 탈퇴의 보장이라는 협동조합의 기본정신에도 어긋나게 된다. 조합원의 자유로운 가입과 탈퇴의 보장이 가져다 준 자발적 참여와 그로 인해 형성된 협동조합의 전통적 조직특성이 무너져 내리게 되는 것이다.
협동조합의 기본 정신을 위배하며 양산된 부실 조합들이 과연 협동조합의 미래상을 정립하며 변화의 물결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협동조합은 자주, 자조, 협동을 기초로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전통적 가치관과 정직하고 공개적인 의사결정 및 활동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고 책임을 다하는 윤리적 신념으로 오늘날까지 조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일반기업은 이윤추구가 목적인 조직특성상 전문화가 필요하지만 협동조합은 인적구성체로서 협동·단결화가 중요하며 일부 이해관계인의 주도로 조합전문화가 진행될 경우 특정구성원의 영리추구를 위한 협동조합이 출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경제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중소기업이 구성원인 협동조합이 공동이익 실현을 위해서는 조합의 분할이 아닌 다양한 협동조합간 기능통합 또는 연합이 오히려 효과적이다. 지역 및 인접국가, 그리고 국제적인 협동조합 네트워크의 구축으로 시너지 효과가 촉발되어 개별적인 협동조합 차원에서는 불가능했던 사업과 조합원을 위한 활동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는 협동조합 연대에 참여하는 조합간 효과적인 역할분담과 상호 기능의 대체로 비용이 감소하게 돼 이른바 규모의 경제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새로운 단계로 진화하는 과정에 있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전세계 협동조합이 따라야 할 7가지 원칙을 채택한 바 있다. 이 원칙은 협동조합의 가치관과 신념을 표현하고 있으며 협동조합의 탄생과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전통을 그대로 담고 있다.
협동조합의 과거와 현재가 여기에 있으며 미래의 모습 또한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배 영 기(한국기계공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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