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제규모·높은 고도화 설비 한몫  
최근 속속 발표되는 국내 정유사들의 경영실적이 충격을 주고 있다. 몇해 전만 해도 호황을 누리던 정유사들이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한 재고평가 손실 등으로 사상 최악의 경영실적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65조8757억원의 매출에 2241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37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이같은 여파로 지난 1980년 무배당 이후 34년 만에 결산배당금은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S-OIL 역시 지난해 매출액 28조5576억원, 영업손실 2589억원을 기록하면서 34년만에 적자를 냈다. GS칼텍스 역시 최악의 실적으로 경영성과급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돌고 있다.

그런데 현대오일뱅크는 10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지금 현대오일뱅크의 행보에 관련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국제유가 폭락 사태를 겪었던 지난해 4분기에도 흑자를 거뒀으며 그 결과 2000억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유사들이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것에 비하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다만 이같은 현대오일뱅크의 실적을 놓고 두가지의 상반된 시각이 존재하고 있다.

먼저 유가급락에 따른 재고 평가손실이 타사 대비 적게 발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재 정유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내수판매량의 40일분 이상의 원유와 제품을 보유해야 한다. 최근처럼 국제유가가 급락할 경우 정유사들은 제품 재고에 대한 손실, 원유수송 시차에 따른 마진손실이 불가피해진다.

때문에 경쟁사보다 상대적으로 정제규모가 적은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타사에 비해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실제 하루 평균 정제 가능량은 SK이노베이션이 약 111만5000배럴, GS칼텍스는 약 77만5000배럴, S-OIL은 약 66만9000배럴을 각각 생산할 수 있는 반면 현대오일뱅크는 39만배럴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와 더불어 지난 2013년부터 원가절감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남미 아프리카 원유 도입 등 유종 다변화에 나섰고 고도화 비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펼쳐 왔다. 고도화란 상대적으로 저가인 중질유를 정제해 고부가가치 경질유로 전환하는 설비로 현대오일뱅크의 고도화 비율은 36.7%다. 이와 관련 SK이노베이션의 SK에너지 고도화 비율은 17.2%, GS칼텍스 34.6%, 에쓰오일 22.1% 수준이다.

이밖에 몇년전 신입사원을 대거 채용하면서 조직 전체가 젊어져 역동성이 높아졌고 대주주가 바뀌면서 직원들의 애사심이 강해지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도 발생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일부에서는 기업공개(IPO)를 추진해 온 현대오일뱅크가 회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흑자에 상당부분 신경을 쓰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모기업인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사상 최악의 실적을 거두자 현대오일뱅크 상장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

현대중공업이 어려움에 처한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지난 2010년 현대중공업이 아부다비국영석유투자회사(IPIC)로부터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할 당시 지불했던 주당 1만5000원에 차입 인수 금융 비용도 어느 정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같은 사실에 대해 현대오일뱅크 측은 강력히 부정하고 있다. 어쨌거나 현대오일뱅크는 국내 정유사들의 실적이 곤두박질치는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를 달성하며 주위의 시셈을 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적은 정제규모와 높은 고도화 비율, 유연한 대처 등이 맞물리면서 불황을 이겨낸 현대오일뱅크의 앞길에 관련 업계의 이목이 당분간 집중될 전망이다.

- 글·김규민 기업전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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