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불리 손댔다간‘기업 엑소더스’후폭풍
딱 1년전이었다. 삼성전자는 그야말로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2013년 매출은 228조원을 돌파했다. 세전이익은 39조원 가까이나 됐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2013년에 납부한 법인세는 7조8895억원이었다. 8조원에 육박했다. 2013년 전체 법인세 총액의 10%를 삼성전자가 납부한 꼴이었다. 1년만에 상황이 반전됐다. 삼성전자의 실적은 바닥을 치고 있다. 모바일 부문은 정말 최악이다. 버는 돈이 줄었으니 납부하는 법인세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의 2014년 법인세 납부액은 4조4800억원 정도일 걸로 추정된다. 2013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원래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고 했다. 피할 수 없는 세금을 피했으니 죽을 만큼 기분 좋아야 맞다. 거꾸로 삼성전자는 죽을 맛이다. 삼성전자 내외부엔 위기의식이 팽배해있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죽어서 세금을 못 내는 것보다 살아서 세금을 더 많이 냈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진짜 요즘 대기업들의 분위기다. 세금이 무서운 게 아니다. 죽음이 더 두렵다. LG전자는 2014년에 법인세를 한 푼도 안냈다. 세전순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세금을 안 낸 것만 따지면 환호해야 마땅하다. LG전자 분위기는 초상집이다. 일단 돈을 버는 게 생존 이유인 법인이 세금을 못냈다는 건 죽음을 의미한다. LG전자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법인세를 안 낸 게 아니라 못 낸 겁니다.”

이런 기업이 한 둘이 아니다. 현대차도 법인세 납부액이 4000억원 넘게 줄었다. 기아차는 2000억원 가까이 줄었다. SK이노베이션은 3000억원 넘게 줄었다. 무려 86.2%나 감소했다. 삼성중공업은 1500억원 가까이 줄었다. 그나마 엄청난 적자 탓에 LG전자처럼 법인세를 못낸 현대중공업보단 낫다. LG그룹에선 그나마 LG디스플레이가 법인세를 867억원 납부했다. 그나마 지난해보다 20%가 넘게 줄어든 액수다.

2014년 세수 결손이 10조9000억원이나 되는 상황이다. 3년 연속 결손이다. 나라 곳간에 펑크가 났단 얘기다. 세출은 많은데 세입은 줄어든 결과다. 가장 손쉬운 해법은 증세다. 세금은 납세주체가 죽지 않을만큼 쥐어짜는 기술이란 옛말이 있다. 증세와 경제의 고차방정식을 풀어내야 한단 얘기다.

경제 주체는 가계와 기업과 정부다. 세금은 정부가 가계와 기업을 상대로 걷는다. 가계를 상대로 걷는 세금이 소득세다. 기업을 대상으로 걷는 세금이 법인세다. 소득세를 올리면 가계의 경제 활동이 위축된다. 근로소득세를 올리면, 열심히 일해도 세금으로 다 뜯긴다는 말이 나온다. 양도소득세를 올리면, 부동산 같은 개인간 자산 거래가 줄어든다. 이자소득세를 올리면, 주식시장이 위축되고 자산투자도 미진해진다. 종합소득세를 올리면, 자영업자들이 장사를 내팽개치게 된다.

남은 증세 대상은 기업일 수밖에 없다. 결국 소득세 대신 법인세다. 이미 소득세는 2013년에 비해 2014년에 11.5%를 올린 상황이다. 반면에 법인세는 오히려 2.7% 줄어들었다. 이대로라면 증세 논란의 종착역은 법인세 인상이 될 수 밖에 없는 흐름이다.

이미 한국의 법인세율이 OECD 국가들에 비해 낮느냐 높느냐를 놓고 수년째 갑론을박이 이어져왔다. 분명 명목 법인세율은 낮은 편이다. 실효 법인세율은 대기업과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이 들쭉날쭉이다. 한편에선 GDP 대비 법인세율을 비교하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고 주장한다. 반대편에선 통계의 장난일 뿐이라며 법인세율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이때 법인세 인상의 대상은 주로 대기업들이다.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쪽도 중소기업 이하를 논의하지 않는다. 사정이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엄청난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있으니 세금이라도 내라는 논리다. 실제로 대기업들에 대한 과세와 감면 혜택은 손을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본질은 따로 있다. 역설적으로 대기업들은 법인세를 납부하고 싶어한다. 요즘은 세무조사로 불명예스럽게 추징당하는게 싫어서 오히려 탈세도 기피하는 분위기다. 내고 싶어도 번 돈이 없다는 게 문제다. 법인세를 인상한다고 하더라도 2015년 역시 2014년처럼 세금을 못 내는 대기업들이 속출할 공산이 크다. 그만큼 경기 전망이 어둡다.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가계는 세금을 올려도 죽지 못해서 산다. 억울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기업은 수익도 안 나는데 세금까지 오르면 이민 가버리거나 사업을 포기하고 아예 죽어버린다. 그게 개인인 가계와 법인인 기업의 차이다. 그게 통계로 나타나는게 오프쇼어링이나 법인수 감소다. 소득세를 올리면 이민 가겠다고 나서는 개인들처럼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들이 해외로 이전하는 오프쇼어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각국들이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인하하는 진짜 이유다. 더 큰 문제는 법인의 사망이다. 사업 의욕이 위축되면서 법인의 생로병사가 위축된다. 문제는 한국에선 이미 경쟁에서 탈락해서 죽을 위기에 처한 대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단 사실이다. 법인세 인상이 조세정의라거나 전가의 보도가 아닌 이유다.

개인과 달리 법인은 오히려 세금을 내고 싶다. 세금을 많이 낸다고 해도 경제 전망만 밝으면 사업 규모를 더 키우는 게 법인의 속성이다. 올해처럼 세금을 못내는 법인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건 증세 요인이 아니다. 진짜 위기의 징후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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