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찾은 유럽이야기 ①]‘폼페이 최후의 날’ 용산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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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찾은 유럽이야기 ①]‘폼페이 최후의 날’ 용산에서 만나다
  • 이신화 자유기고가
  • 호수 2012
  • 승인 2015.02.13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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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폼페이 유적지 전경

한국인들이 꼽은 여행 희망지역 부동의 1위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유럽. 유럽의 역사는 정신문화의 출발인 그리스를 거쳐 세계 최고의 복지를 이룬 북유럽까지 오늘날의 인류사를 보여줍니다. 중소기업뉴스가 유럽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 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화산 폭발로 하루 아침에 멸망한 도시가 있다. 바로 이탈리아 폼페이다. 나폴리 남동부에 자리잡고 있던 폼페이. 79년 8월24일 정오, 마을은 온통 아수라장이 됐다. 인근 베수비오산의 화산이 돌연 폭발한 것. 화산은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화산암을 뿜어내면서 인근 도시로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그 도시는 오랫동안 잊혀졌다. 그러다 다시 잠에서 깨어났다. 폼페이 유적지로 되살아나 많은 관광객들이 이탈리아를 찾는다. 이 역사적인 유적을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1500년간 잠들었던 도시 ‘폼페이’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고 모두들 한번쯤 들어봤음직하다. 폼페이의 화산 폭발에 관한 기록은 플리니우스2세가 역사학자 타키투스에게 보낸 2통의 편지에 의해 알려지게 됐다. 이에 따르면 서기 79년 8월24일, 베수비오산에는 이른 아침부터 역삼각형 모양의 거대한 구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플리니우스는 베수비오 화산에서 40km 정도 떨어진 나폴리만 입구 미네눔에 머물고 있었다. 폭발 당일 플리니우스의 어머니가 베수비오산 상공에 이상한 모양의 거대한 구름이 떠 있는 것을 목격하고 플리니우스에게 알려줬다.

플리니우스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재빨리 어머니와 함께 먼 곳으로 피난을 떠났다. 후에 그는 편지 속에서 그때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그의 숙부는 당시 함대의 선장으로 배를 타고 나가 구조 활동을 펼쳤지만 독성이 강한 화산 가스에 질식해 그만 죽고 말았다. 운 좋게 도망친 사람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늦은 사람들은 지상을 뒤덮은 고온 가스와 열구름에 질식하거나 뜨거운 열에 타 죽었다. 이 폭발로 당시 폼페이 인구의 약 10%인 약 2000명이 도시와 운명을 함께 했다고 한다.

당시 로마 황제 티투스는 폼페이 참극에 대해 보고를 받고 곧바로 구제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피해가 너무나 커서 화산 분출물에 의해 도시는 완전히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폼페이는 그렇게 긴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러다 1592년 폼페이 위를 지나는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물과 회화 작품들이 발견됐고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부터 확실한 발굴이 시작됐다. 현재는 도시의 약 80%가 모습을 드러낸 상태다. 화산 폭발로 시간의 흐름이 멈춰버린 도시는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폼페이가 옛 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두께로 쌓여 있던 화산재 덕분. 화산재는 장소에 따라 1m가 조금 넘는 곳부터 7m가 넘게 쌓인 곳까지 있었는데 평균 높이가 6m나 됐다고 한다.

당시 폼페이는 고대 로마 사람의 휴양지였다. 로마인들이 즐겨 찾았던 대표적인 휴양지로는 폼페이를 비롯해 프랑스 님, 터키 파묵칼레와 키프로스 등을 손꼽는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다양한 휴양 문화를 즐겼는데 휴양지에는 휴식과 문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한곳에 목욕탕, 극장, 경기장을 함께 마련해놨다.

폼페이 유적지에서는 목욕탕, 원형경기장 등은 물론, 고대 로마 사람들의 세련되고 아름다운 주택과 벽화 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폼페이는 일부 귀족들이 쾌락적이고 향락적인 삶을 추구했던 곳. 폼페이에서 가장 큰 도로인 델라본단차 거리는 많은 여인숙과 술집들이 있던 곳이다. 이 거리는 당시 로마인들이 얼마나 방탕한 생활을 했는지 잘 보여 주고 있다.

또 시장이었던 마첼룸은 도시에서 가장 활기가 넘쳤던 곳으로 화산 폭발이 일어나기 전까지 올리브기름과 포도가 이곳을 통해서 여러 지역으로 거래됐다. 용산 전시관에서는 ‘팔레르모산이 최고’라는 낙서도 볼 수 있다.


폼페이의 ‘낭만과 비극’이 서울로
하지만 현실에 들어가면 무엇을 주안점으로 봐야 할지 난감하기 이를데 없다. 한변이 약 2km에 이르는 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는 유적지는 규모가 상당히 크다. 유적지를 돌아보려면 발품도 많이 팔아야 한다. 거기 흙과 먼지 모래 그리고 지붕이 사라진 채 터만 남아있는 집들의 흔적들. 대부분의 건물이 기둥과 벽만 남았다. 거의 엇비슷해서 마치 미로 속을 헤매는 것만 같다. 거리의 모습도 비슷비슷해 길 잃기 십상이다. 누군가의 설명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다면 미리 자료를 읽고 가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폼페이의 실상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전시관에서는 폼페이에서 출토된 조각품, 벽화, 장신구, 캐스트(화산재 속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당시 죽은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을 재현한 석고상) 등 약 300여점이 선보이고 있다. 특히 관심을 끄는 에로틱 전시관도 마련돼 있다. 전시는 오는 4월5일까지다. 비록 현지에 여행을 가지 못한다해도 미리 알고 가면 훨씬 여행이 편리해질 것이다.

■여행정보
○주소
용산구 서빙고로 135, 문의:02-2077-9000, www.museum.go.kr
○개관시간
화, 목, 금요일:09:00~18:00, 수요일, 토요일:09:00~21:00, 일요일, 공휴일:09:00~19:00/휴관일:매주 월요일, 매년 1월1일 / 관람료 : 특별전시관은 유료/해설시간(10시, 11시, 13:30분, 15시, 16:30분)에 맞춰 가야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대중교통
지선버스:0211, 광역버스:9502. 국립중앙박물관 앞 하차 / 지하철:4호선, 중앙선 이촌(국립중앙박물관)역 2번 출구, 용산가족공원 방향 150m
○별미집
박물관 내에 스넥코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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