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보다 찬란한 유리의 무한도전

다음달 2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무료로 전시돼는 <빛의 예술, 보헤미아 유리>전은 유리 공예의 정수를 보여주는 수준 높은 전시로 칭찬하고 싶다.

유럽의 유리 공예라면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무라노 글라스가 전부인줄 알았는데, 체코의 보헤미아 지역 유리 공예가 이토록 오랜 역사에다, 단순한 생활용기를 넘어선 다양한 응용, 예술 작품으로 현대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쥬얼리 브랜드인 ‘스와로브스키’의 창업주도 보헤미아 지역 유리 공예가였단다.

한국과 체코 간 국교 수립 25주년을 맞이해 기획된 <빛의 예술, 보헤미아 유리>전에는 체코국립박물관과 프라하장식미술관이 소장한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보헤미아 지역 유리 공예품과 체코의 역사와 문화 관련 유물 340여점이 소개된다.

전시장 한편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상물에서도 알 수 있듯, 유리 공예품 제작은 엄청난 열을 견디며 대롱에 숨을 불어넣는 장인의 노력으로 탄생한다. 재료 수급에서 성형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하는 유리 공예품을 탄생시키기 위한 노력과 기술 개발 과정은 시기, 용도, 기독교 관련, 현대 작품 등으로 분류 전시돼있어 흐름을 읽어내기 좋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요세프 융만에게 헌정된 잔’(1836·사진)은 투명한 크리스털을 단순하고 대담하게 깎아내 남성미를 풍긴다. 요세프 융만은 체코어 사전을 발간하는 등 19세기 민족문화 부흥운동을 이끈 인물이라고 한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 지배로 체코어를 빼앗기고 독일어를 써야 했던 300여년 동안 꿋꿋이 지켜온 문화적 자존심을 이 잔에 함축했음을 알 수 있다.

중세 때 본격적으로 발전한 유리 공예는 기독교 문화와 만나 스테인드글라스를 탄생시켰다.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스테인드글라스 세점을 볼 수 있는데, 15세기 종교개혁 분쟁으로 대부분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훼손돼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유물이라고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아래 애도하는 성모 마리아, 세례 요한 등을 그려 넣은 모자이크와 함께 중세 제의복과 십자가, 성배, 성모자상, 왕관을 쓴 아기 예수상 등에 접목시킨 유리 공예는 미(美)로 승화시킨 신앙심을 읽게 한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여러 색의 에나멜 장식 유리 공예가 인기였다. 연회에 사용된 거대한 술잔 ‘훔펜’은 3000cc 피처 크기인데, 귀족들이 돌려 마셨다고 한다. ‘독수리와 문장이 있는 훔펜’(1587)에는 많은 국가 깃발 가운데 체코 깃발이 신성로마제국의 상징인 머리 두개 독수리 문장 밑에 그려져, 신성로마제국의 통일성과 체코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보석 세공법을 질 좋은 유리에 적용한 크리스털은 17~18세기 바로크, 로코코 양식 공예품을 낳았다. 유리 표면에 초상·사냥·문장 등을 새기거나 색깔 있는 유리 섬유, 2중벽 유리를 만들어 안쪽에 금박 장식을 넣는 등 다양한 장식 기법을 볼 수 있다. 18세기 중반에는 프랑스 궁중미술 따라잡기가 문화코드여서, 우윳빛 유리로 당시 귀했던 백자를 모사하고 에나멜로 부셰나 프라고나르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그려 티세트를 만들기도 했다.

유리로 만들어진 조각품인 덩치 큰 모던한 오브제가 자리한 현대 작가 작품들까지, 유리의 한계를 실험하는 다양한 예술 작품으로 안복을 누릴 수 있는 전시. 아름다운 풍광과 오래된 건축으로 유명한 체코를 여행한다 해도 유리 공예품까지 꼼꼼히 보기는 쉽지 않을 터. <빛의 예술, 보헤미아 유리>전에 만족했다면 KF 갤러리에서 열리는 <튀니지 모자이크 및 공예품 전시회>(이달 12일까지)도 찾아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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