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익 (주)다인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

미국 출장길에 한국을 떠나 그곳에 자리 잡은 지 14년이 지난 지인을 만났다. 한국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런데, 한국에서는 자장면 값을 정부에서 올리지 못하게 통제한다면서요”라며 신기한 듯이 얘기를 했다.

내가 깜짝 놀라서 “아니, 대한민국은 시장경제를 헌법에 규정하고 있는 나라인데 그게 가능합니까? 한국에 사는 나도 처음 듣는 얘긴데요. 한국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 자장면이라서 물가지수에 민감하게 반영되기는 하지만 중국음식점이 하나 둘이 아닌데 어떻게 정부의 통제가 가능하겠냐?”고 반문했더니,“여기서는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라고 대답한다.

시장경제의 사전적 의미는 “자유경쟁의 원칙에 의해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경제이며 사회주의 경제를 계획경제라고 부르는데 대한 자본주의의 경제를 이렇게 부른다”고 돼 있다.

정부가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개입이 아닌 시장친화적인 정책의 조정으로 해결해야 한다. 시장의 조정자 역할이 아닌 시장 개입자의 역할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시장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를 개선하고 공정하게 유지하는데 힘쓰는 심판 역할이면 족하다.

창업자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같은 맥락이다. 약자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다 지원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비료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토질이 산성화돼 생산성의 한계에 도달하듯이 중소기업의 건전한 생태계를 위해서는 과도한 개입은 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의 홍보물 제작까지 정부가 지원해 줘야 하는가도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정부지원 자금을 받지 않고 자기돈 들여 연구개발하는 기업은 바보가 되고 창업자금 지원 받기 전에는 창업 안 하는 사람도 생긴다. 심지어 정부에서 지원해 주기 전까지 홈페이지를 안 만드는 회사도 있다. 정부가 과도한 지원을 할수록 기업의 의존증은 더 심해진다. 결국 나중에는 문제만 생기면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달라고 큰 목소리를 내게 된다.

오래전에 투자발표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투자사업계획 발표를 마친 한 대표자가 말미에 이런 얘기를 했다. “벤처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저당 잡히고, 그것도 모자라 여기저기서 돈 꿔서 사업하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제대로 된 자금지원을 해주지 않는다.” 자신의 책임을 말하기 전에 정부 탓을 하고 있음에도 행사에 참석한 많은 벤처기업인들은 공감하고 있는 듯했다.

자신의 사업에 필요한 자금은 자신이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자신의 의지로 사업을 하는 것이지 국가에서 사업하라고 떠밀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국가에서 지원받은 돈으로 성공한다면 모두 국가에 갖다 바칠 건가. 그 경영자의 말을 들은 지 10년도 더 지났지만 기업이 정부에 의존하는 태도는 오히려 더 심화돼 가고 있는 느낌이다. 

시장에서 스스로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정책지원으로 생존하려는 기업이 있다면 정책의 노예가 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내기업들이 정부정책에 의존해 혁신의 생태계를 망친다면 외국의 혁신기업들에게 종속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시장을 너무 우습게 본다. 정책과 힘으로, 또는 목소리 크게 내면 시장을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시장은 경제활동 참여자 모두의 것이지 특정 산업이나 집단의 것이 아니다.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은 시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응하는 사람뿐이다. 현 정부가 추구하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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