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예일대 심리학과에서 ‘노년의 자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재연해 보자면 이런 식이다.

노인과 젊은이로 구성된 팀에게 영화 ‘스타워즈’를 보여주면서 중간중간 ‘노년’에 관련된 단어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 단어들이 노출되는 시간은 피실험자들이 인식하지 못할 만큼 짧은 찰나이며, 한 쪽에는 ‘지혜’ ‘연륜’ ‘온화함’과 같은 긍정적인 단어들을, 다른 쪽에는 ‘노쇠’ ‘노후’ ‘낡음’ 등과 같은 부정적 단어들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어떤 결과가 생길까?

우선, 간단한 암기력 테스트 결과부터 보자. 노년에 대한 부정적 단어에 노출됐던 노인들은 같은 팀 젊은이, 또한 긍정적인 단어에 노출되어 있었던 노인들에 비해 점수가 현저히 낮았다.

또한 부정적 단어들은 ‘손글씨 쓰기’와 ‘걷기’처럼 자연스러운 신체적 행동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영화 보기 전후의 필적과 걷는 속도를 비교한 결과, 부정적 단어에 노출된 노인들의 경우, 수행능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글씨는 흔들렸고, 걷는 속도는 느려졌다. 생리적 기능은 어떨까. 혈관 기능 역시 영화를 보기 전과 후 차이를 보였다. 부정적 단어의 노출 후, 특히 노출 후 특정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혈압은 크게 상승했다.

왜 이런 결과가 생긴 걸까?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노년에 대한 부정적 단어들이 노인들 머리속에 내재돼 있던 노년에 대한 인식을 자극했고, 무의식적으로 ‘부정적 노년=노인인 나의 모습’이라는 등식이 성립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심리적인 위축이 생겨나고, 인지적, 신체적, 또한 의지적인 기능이 저하되는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도 실험을 하나 해보자. ‘노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리 속에 어떤 것들이 떠오르는가? ‘늙은이처럼 사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느낌은? 아마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익숙해져 있던 ‘결핍’과 ‘결함’의 이미지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나이 들어가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닐까. 대부분의 경우, 그 생각들은 내가 만들어 낸 것도, 내 경험에 의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인생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길고 비중있는 시기임에도 노년에 대한 연구나 성찰, 객관적 조명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사회적 편견을 기초로 거칠게, 어쩌면 잘못 그려진 지도를 들고 노년을 헤매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내 머릿 속 ‘노년의 이미지’가 훗날 내 자아를 형성하고, 삶의 질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만연해 있는 노인의 부정적 이미지들을 스스로 걸러내고 맞서야 할 이유는 충분해진다. 우리의 인식은 변화가 가능하다. 우리도 스스로 노년을 즐길 준비를 해보자. 노년에 대한 이미지를 치우치지 않게, 또한 긍정적으로 잡아가는 노력은 우리가 소홀히 해서는 안될 중요한 노후 준비가 될 것이다.

- 글 : 오은미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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