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꿈꾸는 사라들] 삼해상사㈜

▲ 김광중 창업주(왼쪽)와 김덕술 대표.

‘명가김’은 삼해상사㈜의 대표 브랜드다. 창업주 김광중 회장과 2대 사업주 김덕술 대표이사가 회사를 맡고 있다.

삼해상사는 1968년 직원 5명으로 남대문시장에 둥지를 틀고 건해산물 위탁상을 시작했다. 그 옛날 김 시장은 습기가 많은 절기를 피해 시장이 형성되고 있었는데, 언제라도 지속적으로 김을 팔 수 있는 방법을 연구, 1차 상품으로는 국내 최초로 포장을 시도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삼해상사는 1981년에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의 개최지가 각각 서울로 결정될 당시 김 도매업을 경영하고 있었다. 전무후무한 특수경기에 김을 변화시키기로 마음먹은 시기였다.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온다는데, 나는 그때 기회가 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창업주 김광중 회장은 조미김 사업을 밀어붙였고, 1982년 5월 한국사람 입맛에 맞는 조미김을 개발해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대한민국 밥상과 도시락 반찬에 변화가 왔다. 김치와 어묵, 멸치볶음이 전부였던 아이들 도시락 반찬에 조미김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인기에 힘입어 공장 증설을 통해 폭발적인 신장과 발전을 맞았다.

1988년에는 ‘즉석 조미김 미니 구이기계’를 개발해 즉석에서 김을 구워 판매하는 전략을 펼쳤다. 특허를 내면 수익이 커지지만 여러 기계회사에 발주를 해서 아무라도 만들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후 20년간 그 기계는 수만대가 만들어졌고 세계시장에 공급돼 한국 김 수출에 큰 기여를 하게 됐다.

김 군에서 김 사장으로
김 전문 기업으로서 미래를 만든다는 경영철학과 함께 명가김의 2대 승계도 완벽하게 진행됐다.

“저는 그 시절 김군으로 불렸습니다. ‘김군, 이리 와서 짐 좀 옮겨라’ 이렇게요.” 현재 명가김을 끌어가는 김덕술 대표는 1987년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현장에서 일을 배운 20년 경력의 베테랑 일꾼이다. 아버지는 승계자의 경영 능력을 위해 10년간의 실습과 10년의 실전연수는 물론 전문경영인의 전문 지도를 일찍부터 안배해온 터였다.

“첫날부터 가락동 도매시장에 새벽 5시 출근을 하며 영업 현장을 익혔습니다. 마치 프로선수처럼 실전 경험을 쌓아갔죠. 단계적으로 기획실장, 이사, 전무까지요. 아버님께서 프로테스트를 거쳐 적절한 시기에 승계를 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창업주와 경영수업 스승이신 부회장님 모두 김 분야의 전문가들이시잖아요.”

정도 경영으로 수출물량 확대
삼해상사가 조미김으로 급성장기를 맞이한 얼마 후 대부분의 식품업체들과 경쟁으로 김 시장은 춘추전국시대를 연상시켰다.

1987년부터 덩치 큰 대기업과의 경쟁으로 큰 위기에 봉착한 회사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사원이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았다. 이때 김덕술 사원 역시 최전선에서 제 몫을 지키며 문제 해결을 위해 의견을 피력해나갔다.

삼해상사의 명가김이 해외수출로 눈을 돌린 것 역시 김덕술 대표의 활약이 컸다. 김덕술 대표는 겸손한 사람이다. 아버님과 선배들이 없었다면 그 같은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 수 없었다고 공을 돌린다.

삼해상사의 사훈은 ‘정도(正道)’이다. 돈을 더 벌 수 있지만 덤핑이나 가격 경쟁으로 소비자에게 피해주는 일을 멀리하는 명가김의 단정함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내수 점유율이 2007년 18%에서 2013년 15.2%로 하락한 반면, 전체 매출의 절반이 수출로 나가고 있습니다.” 정도를 지키면 신용은 저절로 따라온다. 삼해상사의 신용은 대를 이어 내려오는 성장엔진으로 통한다.

2005년 김덕술 대표 취임을 전후로 1987년 직원 170명에 매출 110억원에서 2007년 직원 265명에 매출 400억원, 2013년 인원 309명에 매출 660억원으로 성장하고 있다.

현재 삼해상사에서 10년 이상 근속하는 근로자의 수가 64명이다. 성공적인 고용승계로 삼해상사는 물론 고용창출로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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