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극장가는 중년과 노년의 삶을 그린 한국영화가 지난주(9일) 동시 개봉해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 ‘화장’과 강제규 감독의 신작 ‘장수상회’다. 예전엔 ‘망측하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노년의 사랑이 어느 순간 대중문화의 주요 콘텐츠로 부상한 것.

대중문화 전문가들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55~75세의 신중년이 문화의 중심 세대로 자리매김하고, 이들의 경제적 파워가 날이 갈수록 세력을 키워 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중년과 노년의 사랑을 밀도 높게 그린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본다.

황혼 로맨스 ‘장수상회’
재개발을 앞둔 서울 강북 수유동. 동네 슈퍼마켓인 장수마트에서 일하는 무뚝뚝하고 괴팍한 성격의 70세 할아버지 성칠(박근형)은 재개발을 원하는 동네 사람들과 달리 혼자 반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 같은 할머니 임금님(윤여정)이 옆집으로 이사를 온다. 성칠은 금님의 꽃집에 자꾸 눈길이 간다. 그러면서 성칠의 내면에 점점 변화가 생긴다.

드디어 금님과 식사를 하기로 한 날. 성칠은 마트 사장 장수(조진웅)에게 데이트 매너를 배운다. 스테이크는 무조건 ‘미디움’, 와인은 원샷, 계산은 쿠폰 없이 일시불, 그리고 사인할 땐 힘차게 쓱쓱…. 성칠은 장수의 가르침대로 완벽하게 데이트를 마무리했다.

이 영화의 웃음 포인트는 두 남녀 어르신의 ‘밀당’ 데이트. 두 사람은 점점 친해지고, 마음은 깊어진다. 젊은이들의 만남과 별다를 게 없는 데이트 장면이지만 웃음을 전하는데, 어느 순간 반전이 있다. 마트 사장 장수가 할아버지를 배려하고 데이트를 돕는 건 성칠의 마음을 돌려 재개발에 인감 도장을 찍게 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금님도 장수와 아는 사이. 그런데 또 다른 반전이 숨어 있어 감동을 전한다. 초반부터 인물들이 ‘왜 저렇게까지 행동하나?’ 하는 의문의 장면들이 한순간 이해가 된다.

영화는 비록 몸은 늙었지만 10~20대 못지않은 설레는 사랑에 빠진 성칠과 금님의 모습을 통해 나이와 무관한 사랑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또한 영화 후반부에는 반전에 반전을 담은 드라마로 진한 감동 또한 선사한다.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마이웨이’ 등 스케일 큰 영화를 만들었던 강제규 감독이 저비용으로 로맨스와 감동 드라마를 잘 펼쳐냈다. 박근형, 윤여정의 연기 호흡이 인상적이라는 평가가 극장으로 발길을 이끈다.

중년의 인생과 욕망 ‘화장’
화장품 대기업 임원인 오정석(안성기) 상무는 뇌종양이 재발한 아내(김호정)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평범한 중년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회사 여직원 추은주(김규리)에게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끌린다. 전립선 비대증으로 소변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늙은 몸이지만 욕망은 그 누구보다 강렬하다.

4년간의 투병 끝에 아내가 죽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딸의 오열에 오 상무는 암이 재발했다는 말을 듣고 터트린 아내의 울음소리를 떠올린다. 장례식장은 문상객들로 가득차고, 부하직원들은 오 상무의 결재가 필요한 서류들을 가지고 온다.

신규 화장품 출시를 앞두고 광고 카피와 부분 모델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도 오 상무의 신경은 온통 한쪽에 집중된다. 까만 바지 정장을 입고 문상을 온 부하직원 추은주다. 오랜 간병 기간 오 상무의 연모의 대상이었던 그녀다.

영화 ‘화장’은 죽어가는 아내와 젊은 여자 사이에 놓인 중년남자의 인생과 욕망을 담았다. 국내 굴지의 화장품 회사 오정석 상무의 시선과 번민을 반영해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한 보편적 감정을 그린다.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화장’은 두 여자를 사랑하는 중년남성의 심리를 세련되게 표현한다. 시체를 불태우는 ‘화장(火葬)’과 얼굴을 곱게 꾸미는 ‘화장(化粧)’이라는 이중적 소재의 배합으로 젊은 여자의 아름다운 생명과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어 버리는 인간의 생과 사를 오롯이 한 그릇에 담아냈다.

특히 ‘화장’이 관객들 사이에 높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임 감독 특유의 지독한 사실주의에 기인한다. 안성기와 김호정의 ‘욕실신’은 영화가 가진 사실성을 압축해 보여주는 하이라이트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앞에 모든 것을 해탈한 오 상무의 삶과 고통 속에서 이성의 끈을 놓지 않는 한 여자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욕실신은 강렬한 인상을 주지만 지극히 평범하다.

삶과 죽음, 사랑과 번민 등을 임권택 감독만의 시선으로 연출했다. 죽음을 앞둔 아내와 젊고 아름다운 여직원 사이에서 흔들리는 중년 남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잘 그려냈다는 호평이다. 특히 아내 역의 김호정은 ‘삭발 투혼’까지 보이며 열연해 화제다. ‘국민배우’ 안성기가 주인공인 오 상무 역을 맡았으며 김호정과 김규리가 각각 아내와 젊은 여인 추은주 역으로 호흡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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