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가 정몽규와 악수…면세점 유치 ‘신의 한수’포석
말 그대로 호텔신라의 성동격서였다. 지난 12일 호텔신라가 현대산업개발과 손잡고 HDC신라면세점을 신규 설립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경쟁사들은 허를 찔린 표정이었다. HDC신라면세점은 용산 아이파크몰을 면세점 예정 부지로 내세웠다.

서울 시내 신규 면세점 신청 데드라인은 6월1일로 불과 한달 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었다. 관세청은 서울 시내 세곳에 신규 면세점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었다. 요우커라고 불리는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서울 시내 면세점 수요가 확대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곳의 신규 면세점 가운데 한곳은 중소기업 몫이다. 결국 남은 두곳을 놓고 유통 대기업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모양새가 됐다.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물론이고 한화갤러리아와 신세계 백화점, 워커힐 호텔 면세점을 운영하는 SK네트웍스까지 뛰어들었다. 그리고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이 있었다.

호텔신라는 롯데백화점과 양강 구도를 이루며 국내 면세점 사업을 이끌어온 선도 기업이다.  그래서 이번 면세점 선정 경쟁에서 오히려 불리한 입장이었다. 유통업도 결국 입지다. 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면세점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경쟁자들은 저마다 보유 부동산을 재활용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켜서 포장하고 있었다.

현대백화점은 삼성동 무역센터점에 면세점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상대적으로 강남에 대형 면세점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롯데백화점도 동대문 롯데피트인과 김포공항 롯데몰을 내세우고 있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맞은편인 롯데의 입지는 누가봐도 매력적이었다. 상대적으로 호텔신라는 장충동 신라호텔 부지 이외엔 서울 시내에 별다른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이제와서 부동산을 취득하기도 어려웠다. 호텔신라가 면세점 부지를 확보하려고 부동산 취득에 나섰다는 소문만 돌아도 웃돈을 주고 거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게 뻔했다. 게다가 호텔신라는 이번 승부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호텔신라는 올해들어 면세점 사업권 확보 경쟁에서 연거푸 롯데한테 패배한 상황이었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벌어진 영토 확대 전쟁에서도 결국 롯데한테 밀렸다. 제주도 시내 신규 면세점 사업권을 두고 벌어진 경쟁에서도 롯데한테 졌다.

호텔신라한테 두번의 패배는 뼈아팠다. 인천공항 면세점은 호텔신라 국내 면세점 사업의 홈그라운드였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몇개 점포를 확보하느냐에 면세점 시장의 현재 주도권이 달려있었다. 제주 시내 면세점은 국내 면세점 사업의 미래 먹거리다. 원정 경기라고 할 수 있었다. 요즘 제주도는 요우커 천지다. 제주를 잡아야 미래 면세점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호텔신라는 홈경기와 어웨이 경기에서 모두 졌다.

호텔신라가 면세점 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도 문제였다. 호텔신라의 호텔 부문 실적은 약세다. 업황 자체가 나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반면에 면세점 부문은 수년째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호텔신라 매출에서 면세점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90%를 넘어선 상태다.

호텔신라 면세점에서 요우커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웃돈다. 면세점 사업이 정부의 인허가가 필요한 규제 사업이라는 게 허점이었다. 하고 싶다고 규모를 마음대로 늘릴 수 있는 비즈니스가 아니란 얘기다. 하필 이때 호텔신라는 면세점 사업권 경쟁에서 롯데한테 연거푸 밀리면서 규제 리스크가 커지고 말았다.

호텔신라가 현대산업개발과 손잡는 파격 행보를 보인 배경이다. 이번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부동산을 확보한 파트너가 절실했다. 호텔신라는 면세점 경영 능력에선 우위에 있었지만 입지 확보에서 감점을 받을 여지가 있었다.

결국 전략적 제휴를 통해 자신의 사업적 약점을 보강하는 쪽을 선택했다. 호텔신라는 이번 제휴로 서울 면세점 경쟁에서 결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관세청의 선정 배점 기준만 보면 관리 역량과 경영 능력에 대한 배점이 절반이 넘어서 입지까지 확보한 호텔신라가 유리해진 상황이다. 

무엇보다 이번 제휴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비즈니스 공간 창출 능력을 잘 보여줬다. 사업이란 보이지 않는 기회의 공간을 찾아내고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당초엔 호텔신라가 면세점 부지 인수 계획을 서둘러 발표할거란 관측도 있었다. 그건 빤히 보이는 사업 전략이었다. 그 정도 전략에 머물렀다가 서울 면세점 경쟁에서도 패배했다면 이부진 사장에 대한 시장의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현대산업개발이라는 의외의 파트너와 손잡고 자신의 약점을 보강하는데 성공하면서 설사 이번 경쟁에서 패하더라도 이부진 사장에 대한 신뢰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사업에서 실패는 병가지 상사다. 어떻게 이기고 졌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부진 사장은 지난해말 ‘화학은 이부진’이라는 삼성 후계 구도에 대한 예측을 깨고 삼성종합화학 지분을 한화에 매각했다. 사실상 호텔신라 사업에 올인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를 글로벌 3대 면세점 기업으로 키울 작정이다.

이부진 사장은 리틀 이건희로 불린다. 이부진 사장은 올해 45세다. 1987년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창업주에 이어 삼성그룹 회장이 됐을 때와 같은 나이다. 이제부터 진검승부다.

-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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