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재근(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12년 전 더운 오후, 필자가 보증기관에서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사무실 한편에서 상담을 받던 젊은 여성이 울기 시작했고, 상담하던 팀장은 숙연하게 휴지를 두어장 뽑아 건네줬다. 나중에 들은 사연은 이렇다. 그분은 대학 때 아버지가 운영하던 법인기업의 이사로 등재되면서 연대보증을 섰다.

이후 초등학교 교사가 됐으나, 회사가 어려워졌고, 보증기관의 급여압류 통지를 받았다. 다행히 급여압류 대신 장기 분할상환을 약정했지만, 답답하고 서러운 마음에 눈물까지 보인 것이다. 갚아야 할 액수는 6억 원.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인정과 관계를 중시하는 정서는 우리 경제의 산업화 과정 전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에 정확한 평가보다 채권확보에 급급한 여신 관행이 연대보증의 폐해를 확산시켰다. 지난 몇년간 기업가 정신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연대보증의 폐해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계속됐다. 과도한 규제이며, 기업가 정신을 발목 잡는다는 주장이다.

최근 의미 있는 변화가 나오고 있다. 얼마 전 금융위원장은 보증금액 기준 25%에 달하는 우수 벤처기업에 연대보증면제 혜택을 부여하겠다고 해다. 재정여건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추진하되, 연대보증면제 정책의 체감도는 높여가겠다는 의지이다.

후진적 여신관행의 폐해 확대
동시에 우려도 있다. 연대보증면제가 일부 기업인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면 사회적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면제 대상기업을 잘 선별하지 못하거나,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지 못하면 세금만 날리게 될 수 있다. 필자가 만나본 몇몇 기업인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것은 잠재적인 이득보다 손해를 더 걱정하는 ‘손실혐오’와 다르다. 반대로, 어설픈 대응에 따르는 비용을 걱정하는 것이다. 어렵게 시작된 연대보증면제 정책이 본연의 기능을 다하기 전에 복병을 만나 좌초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는 이유이다.

<실패의 사회학>이란 책에서 메건 맥아들은 ‘좋은 실패’란 쓸모없는 것이 사라지고, 모두의 가치가 더해지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 과정은 슘페터가 이야기한 ‘창조적 파괴’와 같다. 애플이 손에 들고 다니는 컴퓨터 ‘뉴턴’을 만들어 대실패를 경험했지만, 아이폰의 기반을 다진 것과 같은 이치다. 연대보증면제는 연대보증의 폐해를 기업가 정신 고양으로 전환해 ‘좋은 실패’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있다.

투자수요 창출·경쟁력 강화 연계
우선, 투자수요 창출과 연계해야 한다. 투자와 연대보증면제의 차이는 분명하다. 투자는 이익과 위험을 공유하지만, 연대보증면제는 위험만 공유한다. 연대보증면제만으로는 성장자금의 지속 확대에 한계가 있다. 벤처투자 공급은 충분하므로 투자수요 창출에 집중해야 한다.

뜻밖에도 많은 벤처기업이 투자를 꺼린다. 경영간섭과 이익배분 때문이다. 여기서, 연대보증면제를 투자유인책으로 고려해볼 만하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메자닌 기법과 연계를 제안한다. 현재 기술보증기금의 ‘투자 옵션부 보증’이나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이익공유형 대출’과 같은 메자닌 방식을 연대보증면제의 조건으로 연계한다면 우수 벤처·중소기업의 투자수요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엄정한 선별이 이뤄져야 한다. 벤처·중소기업에 대한 연대보증면제는 연구개발(R&D) 보조금 또는 벤처투자와 목적이 유사하다. R&D 보조금은 전문성과 공정성을 가진 심사위원들의 심층평가와 전문기관의 밀착 사후관리가 원칙이다. 벤처투자 역시 길게는 수개월의 심사를 거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패에 따른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연대보증면제의 경우, 현행 신청접수 후 수일 이내 지원해야 하는 시스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연대보증면제라는 자금지원에 한정하지 않고, 교육·해외판로·컨설팅 등 경쟁력 강화 패키지가 수반돼야 한다. 연대보증면제에도 불구하고 기업경쟁력이 탄력적으로 증가하지 않으면 실효성이 반감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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