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주의 기업 인사이트]록앤올 ‘600억 대박’

“길이 없다.” 2010년 5월 박종환과 김원태와 신명진이 스마트폰용 내비게이션을 개발하겠다고 나섰을 때 이구동성으로 했던 말이었다.

시장엔 이미 300개가 넘는 내비게이션 회사들이 난립해 있었다. 모두가 “내비게이션으론 길을 찾을 수 없다”며 말렸다. 박종환과 김원태와 신명진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각자의 전재산을 털어넣어서 록앤올 LocNall 을 창업했다. 위치를 뜻하는 로케이션 LOCATION 이 자신들의 모든 것이라는 의미였다.

사실 록앤올의 창업3인방이 길을 찾는데는 도사였다. 김원태는 부산대학교 대학원 전자계산학과에서 지리정보를 전공했다. 학교에서부터 위치기반서비스 Location Based Service 만 들이팠단 얘기다. 김원태와는 부산대학교 91학번 동기엔 박종환과 두 사람의 후배인 신명진도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은 포인트아이라는 벤처 회사에서 함께 근무했다.

한때 포인트아이는 대한민국 위치기반서비스를 선도했던 회사다. 2004년을 전후해서 피처폰 시장을 휩쓸었던 케이웨이즈라는 모바일 내비게이션 서비스도 포인트아이의 원천기술로 만들어졌다. 세 사람은 포인트아이까지 줄잡아 15년 동안 내비게이션이란 한 길만 팠다. 이쯤되니 길 찾는데는 도사가 됐다.

록앤올 창업자들한테 위치라는 건 어쩌면 단순한 사업 아이템이 아니었다. 포인트아이를 다니던 시절 박종환과 김원태는 찢어지게 가난했다. 부산에서 상경한 무일푼 청년들은 창신동 쪽방촌을 전전하며 살았다. 그나마 조금 나은 곳으로 이사한 게 화곡동이었다. 부산 촌놈들이라 서울 지리에 너무 어두웠다는 게 화근이었다. 오피스텔 계약을 해놓고보니 하필 화곡동 환락가였다. 위치 정보가 없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아무리 지도책을 펴놓고 봐도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군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위치는 생존의 문제란 걸 그때 알았다.

록앤올이 내비게이션 앱 개발이란 외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위치기반서비스를 이용한 스마트폰용 내비게이션은 창업3인방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길이었다. 뜰 것 같고 될 것 같지만 해본 적도 없는 길 대신 기술경쟁력이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잘 아는 길을 선택했다.

길은 있었다. 다만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창업 7개월만에 자본금이 모두 소진됐다. 당연히 투자 유치를 하러 다녔다. 난항이었다. “그쪽으론 길이 없다”고들 했다. 김기사를 처음 선보였던 2011년 초 록앤올은 거의 무일푼 상황이었다. 기술보증보험을 통해 자금을 융통하던 처지로 전락했다.

게다가 김기사가 가려는 길엔 강력한 경쟁상대들이 앞서가고 있었다. SKT와 KT의 T맵과 올레내비라는 자체 개발 내비게이션들이었다. 특히 T맵은 편리한 이용자 환경을 앞세워서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시장을 선점한 상태였다. T맵은 유료였다. 역설적으로 유료여서 더 막강했다. 일정 요금제 이상을 쓰는 SKT 이용자만 무료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T맵을 무료로 쓸 수 있다는 게 SKT를 쓰는 큰 혜택이었다. 그걸 스스로 포기하고 김기사를 쓰면 이용자 입장에선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당연히 SKT 이용자는 T맵에 록인될 수밖에 없었다.

록앤올은 길 위에서 전진도 후진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엔젤 투자자가 나타났다. 한국투자파트너스였다. 어느 누구도 무명의 내비게이션 서비스에 관심을 두지 않을 때 김기사에 처음 투자를 했다. 사실 한국투자파트너스와 록앤올 사이를 이어준 사람이 있었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였다. 당시엔 카카오의 대표였다. 다음카카오와 록앤올 사이는 하루 이틀 된 인연이 아니란 말이다.

록앤올은 한국투자파트너스의 투자금을 바탕으로 김기사를 혁신시켰다. 2013년 3월 28일 발표한 김기사2.0은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누가봐도 편리했다. 김기사2.0 이후 이용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여기엔 이동통신사 가입자들의 기기 변경과 번호 이동과 통신사 변경도 중요한 변수가 됐다. SKT 고객이었지만 기기 변경을 하려고 KT나 LG U+로 갈아탄 고객은 더 이상 T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대신 김기사란 대안이 있었다.

스마트폰 이전의 내비게이션들은 최단 경로 경쟁을 벌였다. 어느 내비게이션이 가장 짧은 길을 알려주느냐였다. 스마트폰 이후엔 내비게이션의 경쟁 양상이 달라졌다. 최적 경로 경쟁이 벌어졌다. 교통 상황은 언제든 변한다. 안 막히던 길이 막힐 수도 있다. 이제까진 실시간 교통 상황을 길찾기에 적용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기껏 경찰청이나 서울시의 교통정보를 전송 받아서 내비게이션에 적용시키는 정도였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일단 이용자가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통해 길을 찾아간다. 이때 어느날 어느 시각에 어떤 길이 막혔고 어느 정도 속도로 달렸는지가 모두 저장된다. 록앤올은 이 정보를 하나 하나 모았다. 김기사2.0이 인기를 끌면서 길찾기 정보들이 모이는 분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어느새 빅데이터가 됐다. 보통 한 달 동안 실질적인 길찾기 정보가 50만건 이상이면 패턴 분석이 가능해진다. 록앤올은 이런 빅데이터를 세세하게 분석했다. 교통 상황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막혔고 풀렸는지가 무한 저장됐다.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김기사는 더 똑똑해졌단 뜻이다. 시간이 갈수록 김기사는 더 빠른 길을 더 빨리 찾을 줄 알게 됐다.

2015년 현재 김기사의 가입자는 1000만명에 달한다. 월평균 이용자는 200만명이다. 월평균 길찾기 건수는 1억건이 넘는다. 김기사가 똑똑해질수록 사용자는 더 폭증했다. 그럴수록 김기사는 더 똑똑해졌다.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록앤올을 자기만의 길을 찾았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찾을 길을 끝까지 완주했다. 결국 반환점을 돌았다.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김기사한텐 한 가지 한계가 있었다. 광고 수익에 기반한 무료 어플리케이션이란 점이었다. 수익을 노리고 무한정 광고를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광고 시장이 한정적인 한국에서 광고 기반 무료 앱이 지닌 공통된 약점이다.

2015년 4월 19일이었다. 다음카카오가 록앤올을 인수할수도 있다는 소식이 코스닥 시장에 처음 퍼진 날이었다. 당시엔 다음카카오와 록앤올 모두 부인했다. 일정 부분 사실이었다. 아직은 얘기만 나온 단계였기 때문이다. 다음카카오가 출시한 카카오택시와 김기사가 연동되면서 나온 얘기였다. 카카오택시를 설치한 택시 기사들은 김기사를 이용해서 손님이 있는 위치로 이동하고 다시 손님이 원하는 목적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매우 만족스럽다는 평가가 나왔다.

결국 5월로 접어들면서 다음카카오와 록앤올의 인수합병 협상이 본격화됐다. 이석우 대표와의 인연도 적잖이 작용했다. 무엇보다 다음카카오와 록앤올은 서로가 필요했다. 다음카카오는 출범 초기부터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을 추구하겠다고 사업 비전을 밝혔다.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가 O2O였다. 온라인 투 오프라인은 IT업계의 화두였다.

모든 것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화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온라인의 기술들이 오프라인의 서비스들을 묶어내는 시대로 다시 이동하고 있었다. 위치야 말로 가장 대표적인 오프라인 정보다. 이걸 온라인에서 정리해서 오프라인 서비스에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택시나 버스나 지하철 같은 교통 정보야 말로 위치 정보를 이용해서 상용화하기에 적절했다. 록앤올처름 위치라는 사업에 올인해온 기업이 지닌 빅데이터와 노하우야말로 다음카카오가 필요로하는 자산이었다.

무엇보다 김기사 같은 내비게이션은 장차 O2O의 플랫폼이 될 가능성이 충분했다. 오프라인의 식당과 병원과 각종 행사와 관광지와 캠핑지와 숙박시설을 내비게이션 하나로 다 연결해버릴 수 있었다. 실제로 록앤올도 이런 플랫폼화를 꾸준히 추구해왔다. 굿닥과 온오프믹스와 라스트캠핑커뮤니케이션 같은 서비스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다만 김기사 혼자서 플랫폼 사업자가 되기엔 자본도 영향력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다음카카오와의 합병이 답이었다. 다음카카오는 다음이라는 포털과 카카오라는 메신저로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플랫폼 사업자로 자리잡은 상태다. 여기에 김기사로 O2O에서도 모든 걸 이어주는 플랫폼을 갖게 되면 큰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었다. 록앤올의 성장을 위해서도 다음카카오는 적절한 동반자였단 얘기다.

길이 없다던 길은 결국 O2O를 지배하는 플랫폼으로까지 이어졌다. 쪽방촌을 전전했던 박종환과 김원태와 신명진은 626억원이라는 대박을 터뜨린 벤처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길은 성공으로까지 이어졌다. 길이 없는 게 아니다. 언제나 그 길을 가지 않을 뿐이다.

-글 : 신기주(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사라진 실패」 의 저자)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