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청계천, 황학동, 성수동, 문래동….
서울에 살지 않더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지명들이다. 이 동네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 속칭 마치코바(町工場)라 불리던 동네공장들이 밀집된 지역이란 점이다. 주로 봉제나 철공소 같은 소규모 공장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소규모 동네공장 집적지가 자취를 감추거나 쇠락해 가고 있다. 도심이 재개발되거나 세월에 밀려났기 때문이다.

40년도 더 된 낡은 기억이지만 당시 창신동과 청계천 뒷골목이 눈에 선하다. 복닥복닥 늘어선 봉제공장과 철공소에서 미싱을 돌리고 부품을 깎던 모습들이 그것이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 시절 그 골목에서 만들어진 봉제공장의 옷들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수출대국으로 이끌었다. 철공소의 작은 부품들은 대기업들을 글로벌기업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대기업 글로벌 성장 원동력
선반, 밀링, 도금 등 금속가공업체들이 1000개가 넘게 몰려있는 동네가 있다. 이곳에서는 업체대표와 기술자가 동일인인 경우가 많다. 아울러 수십년간 고집스럽게 한분야에서 같은 일에 종사해 온 장인들이기도 하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 동네의 장인들은 실제로 군사용 훈련 미사일도 깎는다. 세상없는 그 어떤 시제품도 주문하면 만들어 낼 수 있다. 고도로 숙련된 기술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얘기다. 이곳은 다름 아닌 최근 대통령도 방문했던 서울의 문래동이다. 

요즘은 이들을 마치코바라는 일본말 대신 소공인(小工人)이라고 부른다. 소공인이란 근로자 10명 미만의 제조업자들이다. 우리나라 제조업체의 80%가 여기에 해당한다. 숫자로는 대략 29만5000개에 달하고, 90만명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전국에 소공인 집적지만해도 340개가 넘는다. 산업별로도 식품, 기계·장비 등 19개 업종에 분포돼 있어 제조업의 근간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소공인들이 처한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창업세대들의 고령화와 가업승계 단절이 현실화되고 있다. 한 분야에만 집중하다 보니 변화와 혁신에 둔감해져 있다. 낡은 제조방식은 생산의 한계를 가져오거나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고숙련 기술인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대우가 낮은 점도 기술 중심의 명품장인 탄생을 저해한다. 게다가 도심 재개발이 확대되면서 소공인 집적지가 대안 없이 사라지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장인기업 없인 미래도 없다
소공인 같은 고숙련 장인기업이 사라지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대학교수도 못만드는 제품을 만드는 장인기업이 있어야 국가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기업보다 소공인이 밀집한 동네공장에서 경기가 먼저 살아나야 한다. 그래야 지역중심의 일자리창출은 물론 중산층이 복원될 수 있다.

소공인 육성은 단순히 영세중소기업을 지원하는게 아니라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다. 소공인의 숙련된 기술을 바탕으로 전후방산업과의 연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물, 금형 등 뿌리산업이 튼튼해야 자동차나 전자산업의 경쟁력이 강해지는 이치이다.

또한 소공인 집적지 재생을 통해 도심을 재창조할 수도 있다. 공예 소공인들이 모여 만든 북촌의 공방거리는 공예산업 발전은 물론 외국인들에게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쇠락을 거듭하던 성수동이 명품 수제화의 부활과 함께 문화명소로 거듭나고 있다는 점도 그 예가 될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오래 전부터 소공인 육성 법제화와 집적지 재창조, 명장(名匠) 지정 등을 정책대안으로 제시해 왔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 이들을 담아 낸 법이 지난달부터 시행됐다. 바로 ‘도심형소공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다.

이로써 모노즈쿠리의 일본, 마이스터제의 독일, 장인정신의 이탈리아 등 소규모 제조업이 강한 국가대열에 우리나라도 동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제는 법에 기반한 제도들을 현장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소공인의 고숙련 기술과 ICT를 융합한 디지털 장인기업이 탄생하고, 이들이 제2의 한국제조업 부흥을 이끌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글은 한국경제 6월5일자 오피니언면에서도 함께 게재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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