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중호(칼럼니스트, 세종대·국립목포대 초빙교수)

모 대학에서 강의 중 생뚱맞은 질문을 받았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란 중국이 한국을 조공(朝貢) 잘 바치고 말 잘 듣는다는 뜻으로 한 말이냐”는 거였다.

어처구니 없지만, 이 답변을 위해서는 조공의 의미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나온 시기와 배경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조공이란 말이 나오면 우선 착취와 치욕을 연상하지만, 이는 일제강점기의 왜곡된 폄하교육의 영향이 크다. 당시 조공에는 사여(賜與)라는 더 큰 값어치의 답례가 따랐으므로 증답(贈答) 형식의 한 의례적인 외교절차였다.

이처럼 전근대 동아시아 질서에서 중국과의 국교와 무역관계를 트려면 조공외교가 보편적 절차였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당시는 그랬다. 그래서 스페인, 영국도 조공과 관무역(官貿易)을 했으며, 이는 물물교환 형태의 정부공인 교역으로 공무역(公貿易) 또는 조공무역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면 동방예의지국은 무엇인가? 고구려는 왕조 705년 동안 중국대륙과 자웅을 겨뤘다. 중국을 대국으로 섬긴건 서기 648년 신라가 당에 지원군을 청하면서부터로 보며, 제도화된 것은 이보다 훨씬 후인 조선시대이다. 그러나 동방예의지국은 이와 비교가 안 되는 기원전의 일이다.

공자의 손자 공빈이 BC 268년에 쓴 동이열전에 의하면, “옛날부터 동쪽에 나라가 있는데 동이라 한다. 지역은 조선 백두산에 접해 있고, 훌륭한 사람 단군을 9개 부족 구이가 받들어 임금이 되니, 요임금과 한 때의 일이다. (중략) 그 나라는 풍속이 순후해 다니는 이들이 길을 양보하고, 먹는 이들이 밥을 미루며, 남녀가 분별이 있어 자리를 함께 하지 않으니 이르기를 동방의 예의바른 군자의 나라(東方禮儀之君子國也)가 아닌가. 그래서 나의 할아버지 공자께서 동이에 살고 싶어 하셨다”는 기록이 보인다.

공자까지는 아니라도 근대 한국문제 전문가의 견해가 궁금할 수도 있다. 한반도 중립화 방안으로 유명한 한국문제 전문가며, 세계적인 석학 조지타운대학의 맥도널드 박사는 지난 1989년 세계일보에 게재한 특별기고문에서 “첨단문명을 꽃피우고 있는 유럽인들이 반라로 숲속을 누비며 살고 있을 때 한국은 이미 고도의 생활문화를 누렸다”고 하며 “경제대국 일본이 자랑스럽게 내놓는 문화치고 그 뿌리가 한국이 아닌 것이 없다”고도 했다.

또 “중국이 이론의 여지없이 최고의 문화를 누릴 때 한국을 이미 문화선진국이라고 했다”고 했다. 저명한 세계적인 석학의 말이고, 기원전 공빈이 “할아버지 공자께서 동이에 가 살고 싶다”고 했으니 한국은 예절의 나라 문화강국 동방예의지국이었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예부터 한국은 군자의 나라며 동방예의지국으로 추앙됐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너무 모른다. 한국인에 대한 일제의 왜곡된 식민교육이 성공한 탓일까? 외국은 선진국이라고 하면서 스스로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감히 선진국이라 못하는 것은 자각하는 문화수준을 뜻한다. 

선진국 유형도 경제·정치 등 다양할 것이나 문화선진국이 진정 선진국이다. 옛것은 오래돼 쓸모가 없는 것이나 전통은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필요한 것을 말한다. 자만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과장하는 것이지만 자존은 있는 것을 당당히 지키는 것이다.

우리의 빛나는 전통과 자부심 그리고 정체성을 살려 이미 존재했던 문화강국 동방예의지국을 하루빨리 복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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