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트립 투 이탈리아> 중 한 장면.

본격적인 여름 흥행 블록버스터 영화의 침공을 앞둔 6월. 덕분에 성수기엔 보기 어려운 예술 영화 두편이 극장에 걸리게 됐는데, 의외로 쉽고 재미있으면서 오랜 생각거리를 남긴다.

2014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윈터슬립’
먼저 소개할 <윈터슬립>은 <5월의 구름>과 <우작>으로 터키영화의 적요(寂寥)와 사색의 깊이를 알려준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의 2014년 칸 영화제 대상작이다. 단출한 인물과 배경만 갖고 일상사의 단면에서 철학의 경지를 끌어내는 감독의 역량은 무려 196분짜리 영화 <윈터슬립>에도 잘 유지되고 있다.

<스타워즈> 1편의 배경으로 등장했을만큼 독특한 풍광을 자랑하는 터키를 대표하는 관광지 카파도키아의 동굴 호텔을 주 배경으로, 전직 배우이자 지방 신문 칼럼니스트인 부호 아이딘(할룩 빌기너)과 젊고 아름다운 아내 니할(멜리사 쇠젠), 이혼하고 오빠 집에 얹혀사는 아이딘의 여동생 네즐라(드멧 아크백), 아이딘의 집에 세 사는 함디네 가족과의 대립 관계를 통해 가치관, 양심의 충돌 등을 장황하게 이야기한다.

“악에 저항하지 않음으로써, 악인이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가능한가.” “양심이란 겁쟁이들이 강자를 겁주기 위한 것.”이라는 식의 대사가 쉼없이 쏟아지는 연극같은 영화이지만, 비와 폭설에 잠긴 이국적이고 압도적인 카파도키아 풍광, 그 풍광 속에 우두커니 서있는 아이딘의 외로운 모습은 바른 길을 찾고자하는 인간의 노력을 서정적으로 전한다. 

절친과 떠나는 여행기 ‘트립 투 이탈리아’
<트립 투 이탈리아>는 제목 그대로 자동차를 타고 이탈리아를 북에서 남으로 6일간 여행하는 영화다. 피에몬테-리구리아-토스카니-로마-폼페이-아말피-카프리섬 등 이름만 들어도 황홀해지는 지역을 그것도 옵저버 매거진의 제안과 지원을 받아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을 유람하는 럭셔리 여행이라니, 누구든 이런 여행을 꿈 꾸지 않겠는가. 그러나 여행자가 코미디에 능한 중년 배우 스티브 쿠건과 성대 모사의 달인 롭 브라이든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스로를 연기한 두 배우는 자국 시인 퍼시 셸리와 조지 고든 바이런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시를 낭송하고 증명 사진을 찍고, 고급 레스토랑 음식에 감탄한다. 그러나 잡지에 기고할 글감 마련보다 그들이 진정으로 즐기는 것은 아름답고 젊은 여성이 거들떠보지 않는 아저씨가 됐음을 자조하는 것과 영화 대사 경쟁이다.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피터 샐러즈, 험프리 보가트 등이 출연한 유럽과 할리웃 고전 영화 대사 흉내가 쉼없이 이어져 영화광을 황홀경에 빠뜨린다. 즉 문학과 영화 지식 입담이 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두 배우가 상황만 던져준 감독의 연출에 즉흥적으로, 적재적소에 펼쳐놓는 폭넓은 지식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TV 여행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서 얻을 수 있는 여행 정보나 풍경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유명 셰프 요리나 그레타 가르보가 묵었다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멋진 호텔도 수다의 소재일 뿐 제대로 오래 보여주질 않기 때문이다. 신기한 건 자조와 자만심의 입씨름이 전부인 것같으면서도 각자의 삶과 가족 관계,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과의 짧은 인연을 사색하고, 죽음의 성찰을 담아낸다는 점이다. 다양한 내용과 장르의 영화를 선보여온 영국 감독 마이클 윈터보텀의 저력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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